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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었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 본문

스쳐가는 생각

사랑했었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

DidISay 2012. 1. 22. 02:45

 
옆모습/ 안 도 현
 
 
나무는 나무하고 서로 마주보지 않으며
등 돌리고 밤새 우는 법도 없다
나무는 사랑하면 그냥,
옆모습만 보여 준다
옆모습이란 말, 얼마나 좋아
옆모습, 옆모습, 자꾸 말하다 보면
옆구리가 시큰거리잖아
앞모습과 뒷모습이
그렇게 반반씩
들어앉아 있는 거
당신하고
하고는
옆모습을 단 하루라도
오랫동안 바라보자
사나흘이라도 바라보자
 

 

오늘 안도현님의 인터뷰 영상을 봤다.

 

 

- 안도현님의 시 중에는

 

사랑했었다는 말을 하지않겠다..는 말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약간 두려워하는듯한?..

 

왜그러신거에요?..

 

저는 할 것 같은데..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건가요?

 

 

 

 

- 사랑한다는 말 속에는 뭐라고 할까요

 

은유가 없는 것 같아요

 

은유가 없으니 그리움도 없고 울림도 없고..

 

깊은 울림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말은 좋아하지만

 

내가 많이하고 남이 많이하는 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않아도 표현할 방법은 많거든요

 

어릴적 좋아하던 짝꿍에게

 

아무 말 없이 손에 가만히 사탕하나 쥐어주는 것

 

그런게 사랑인 것 같아요.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 안도현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자전거가 되리


한 평생 왼쪽과 오른쪽

어느 한쪽으로 기우뚱거리지 않고
말랑말랑한 맨발로 땅을 만져보리


구부러진 길은 반듯하게 펴고,

반듯한 길은 구부리기도 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모퉁이,

움푹 파인 구덩이,

모난 돌멩이들
내 두 바퀴에 감아 기억하리


가위가 광목천 가르듯이 바람을 가르겠지만
바람을 찢어발기진 않으리


나 어느날은 구름이 머문 곳의

주소를 물으러 가고


또 어느날은 잃어버린

달의 반지를 찾으러 가기도 하리


페달을 밟는 발바닥은 촉촉해지고

발목은 굵어지고
종아리는 딴딴해지리


게을러지고 싶으면

체인을 몰래 스르르 풀고
페달을 헛돌게도 하리


굴러가는 시간보다 담벼락에 어깨를 기대고
바큇살로 햇살이나 하릴없이 돌리는 날이 많을수록 좋으리


그러다가 천천히 언덕 위

옛 애인의 집도 찾아가리


언덕이 가팔라 삼십년이 더 걸렸다고

농을 쳐도 그녀는 웃으리


돌아가는 내리막길에서는

뒷짐 지고 휘파람을 휘휘 불리


죽어도 사랑했었다는 말은 하지 않으리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가장 경제적이고 짧은 글자들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시라고 생각한다는 그....

 

문학개론 시간에 수없이 많이 들은 말이지만

 

그의 입 속에서 그의 언어로 나왔을 때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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