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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돼지의 왕(The King of Pigs.2011)

DidISay 2012. 6. 2. 20:36

 



'돼지의 왕'은 영화 '파수꾼'처럼 교실 내 권력구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애니메이션 고유의 표현력으로 매우 강한 흡입력을 내뿜는 작품이다.

성인 애니메이션답게 학교현실을 냉혹하게 비틀고 재배치시켜서, 
돈과 힘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구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국내 독립 애니메이션, 게다가 연상호 감독의 첫장편데뷔작인데도,
과감한 전개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결국 칸 초청받은 ㅎ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라 정작 영화의 주된 인물로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이 작품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영화 개봉시기를 놓쳐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특별상영을 할 때 보고왔었는데
오프닝과 엔딩이 한동안 잔영으로 남을만큼 강렬한 작품이었다.

 

 

'돼지의 왕'의 오프닝은  애니메이션이라기 보다는 범죄영화에 더 가까워 보인다.
'바시르와 왈츠를' 이후 이런 인상적인 오프닝은 오랜만이라 신선한 경험이었다.



죽은 아내의 시신를 클로즈업하며 시작되는 충격적인 영상은
이 작품의 암울한 분위기를 주도할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해서
극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도입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판소리에서 사용되는 장면의 확대처럼, 주요장면은 자세하게 묘사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가적인 장면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암시를 통해 던져준다.
이런 과장과 비약의 줄타기 덕분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인공들의 현재와 중학교 떄의 일부모습 뿐이다.

때문에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는 평도 나오긴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늘어지지 않고 할 말만 촘촘하게 꾸려놓은 느낌이라 더 좋았다.



놀고 먹어도 잘먹고 잘 싸는 그 놈들은 애완견 같은 놈들이야 개같은 놈들이라고
그놈의 먹이가 되는 우리들은 돼지들이고.
우리는 죽어서 팔다리가 찢겨 나가야 가치가 생긴단 말야
경민아. 돼지가 그 정도 가치밖에 없는 동물이냐?
경민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이 작품은 교실 내의 권력구조를 철저하게 두 부류로 양분한다.

사냥와 같은 관리책임자.
단순히 싸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에 공부잘하는 우등생.
선생님들과 같은 더 큰 권력자는 이들의 힘이자 방패막이가 된다.



그리고 개의 먹이..말 그대로 밥이 되는 돼지들.
대체로 공부를 못하거나 가난하며 힘이 없는 계층들.

여유가 없고 지킬 것이 많지 않으니, 모반을 논의할 여유도 없으며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해서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나 유대감도 적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생각나게 하는 이 권력관계는
흥미롭게도 가난하지만 주먹으로 권력을 얻었던 엄석대와는 달리,
어른들의 세계를 그대로 빼닮은 양, 돈과 능력을 두 손에 쥔 자가 우위에 서 있다.

그리고 이들은 철저한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의
 명분을 내세우며 철저하게 돼지들을 관리하며 통제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그다지 넓지 않는데,

1. 철저하게 괴롭힘 당하는 자

2. 방관자
3. 권력에 기생하는 자
4. 권력에 저항하는 자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1이 될까 두려워 2를 선택하고 만다.
그리고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도 저항해도 바뀌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비굴한 웃음으로 가면을 쓰며 생활한다.

 

그것은 철저한 계급주의 사회였고
그 계급에서 우리의 위치는 그다지 높지 못했다.

나는 경민이 지금 짓고 있는 저 어색한 웃음을 저주했다.
태연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걸 보여주기 위해
지금 올라가 있는 저 입꼬리를 저주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은 실감나는 대사이다.
은교를 읽을 때 가장 거슬렸던 것이 작위적인 여고생의 대사였는데,
이 애니메이션의 툭툭 튀어나오는 대사들은 귀에 착착 감겨온다.
꽤 긴 대사들도 아주 직설적이라 흡입력이 강한.



가장 슬펐던 대사는 종석이 누나가 워크맨을 훔친 것을 발견한 장면.

누나 뭐하러 그래? 뭐하러 그따위거 훔치냐고

너 지금 몰라서 묻냐 몰라서 물어? 그럼 엄마 보고 사달라고 할까?


씨발 그따위게 왜 필요한데? 안들으면 좀 어떻다고?


흥 이런게 쌓이는거야 사람들이 하나하나 당연하게 즐기는거 포기하는게 다 쌓여서 병신같은 사람이 되는거라고. 
누구는 부모 잘 만나서 하고 싶은거 다 즐기고 난 왜 하고 싶은거 다 참아가면서 워크맨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르고. 남들 다 입는 옷도 못입고 나중에는 어떻게 할건데? 대학도 안가고 남들 다 가는 대학도 못가고 대강 비슷하게 맞는 사람 만나서 애 낳고  그 애는 또 어떻게 자라게 할건데? 그럴바에는 왜 자꾸 애새끼는 낳아서 이러냐고? 난 안그럴거야. 난 워크맨 훔쳐서라도 배워야겠어. 이거 어떻게 작동하는건지 얼마나 좋은건지 배워야겠다고!

 

뭐 저런 이유로 다들 애를 안낳고 결혼을 미루고 있지(...)
가끔 최저생계비 얘기 나오면 정말 밥과 김치만 먹고 살라는 건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는데,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이제 부나 가난의 대물림은 너무 고착화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식세대에서는 상황이 변할거라는 희망 자체를 안하니
이런 고통을 굳이 새 생명에게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애니메이션에서도 우스웠던 것이 돼지라고 다 같은 돼지가 아니며,
개라고 다 같은 개가 아니다. 그안에서도 촘촘한 계급이 형성되어 있어서
절대 그 윗선을 넘보지 못한다.




부도에 대한 절망으로 아내까지 살해하고 좌절해버린 경민이 찾아간 곳은
자신의 트라우마인 중학교 시절과 관련된 친구 종석이다.

속에는 분노가 내재되어 있지만 꾹꾹 이를 숨기는 종석.
지독한 괴롭힘을 당하지만 언제나 미소지는 경민.
그리고 이들과는 달리 돼지들의 상황을 변화시킬 왕이 되리라 믿었던 철이.
이들이 촘촘하게 짜내는 사회의 모습은 절망적이기만 하다.

어른이 된  종석과 경민의 나래이션을 통해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구조를 띈
이 작품은 우습게도 '개'의 입장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숨막히는 공간에서 정작 가해자들은 아무런 트라우마 없이 살아가고 있고,
돼지들만 15년이 지난 뒤에도 온갖 내상으로 허덕이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약자들만의 집단에서 나타나는 패배의식, 불안함.
그 약자들 안에서 혁명을 꿈꾸는 아웃사이더.
새로운 힘이 등장하면 그쪽으로 박쥐처럼 붙는 인간.
언제나 약자였기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힘에 의지해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해결하려는 시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저 피해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방관자들까지


문제는 이들의 태도가 15년이 지난 어른이 되어서까지 변하지 않았다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나 경향은 어지간해서는 바뀌기 힘든 것이다.
30대가 훌쩍 넘어선 나이에 기껏 변할 수 있는 것은 칼 댄 얼굴정도이고,
속은 날것 그대로 남을 뿐이다.

사람의 습관이란 정말 무서운 것으로, 매번 수동적인 약자였던 사람들은
제 아무리 주도권을 내가 쥔다!며 주먹을 움켜쥐어봐도,
결정적인 찰나에 그 주먹의 힘은 모두 빠져버리고 만다.

경민은 학창시절부터 결단력이나 주체성이 별로 없는 사람으로,
힘이 있는 쪽이라면 어느쪽에든 붙을 수 있는 성격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선택의 순간이 오면 회피와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고 만다.
이렇게 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없는데 사업이 망하는건 당연한 일-_-;;
비겁하게도 절망적인 순간에 약자인 아내에게 모든 분노를 풀어버린다.

종석은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분노, 가난으로 인한 절망 등을
모두 표현하지 않고 꾹꾹 눌러참지만 혁명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다.
때문에 철이가 왕이 아닌 다른 길을 취하려 하자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결국 그는 철이를 대신해 괴물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개들 아래에서 존재하며 이로인한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여자친구에 대한 폭력으로 발현된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그렇게도 증오하던 폭력을
더 약한 주변의 존재에게 거침없이 내보이는 장면은 꽤 섬뜩하다.


그리고 우리의 철이.
냉혹한 자본주의의 현실을 깨닫자
괴물과 왕을 포기하고 타협하려다가 제거된 인물.

사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옥 같은 대사는 대부분 철이의 입에서 나온다.

  사람들이 칼을 만들었을 때 생각지도 못한 것이 만들어졌어. 그건 바로 악이다. 저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처럼 몸의 일부를 놓지 않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건 바로 악이야. 그럼 우리가 힘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착하게 살면 될까?아니야 힘을 가지려면 우린 악해져야 해. 계속 병신처럼 살고싶지 않으면 괴물이 되야해. 알겠냐?


  돼지는 말야, 살면서 자기 살을 찌우는게 유일한 행복이라고 생각할거야. 그들이 주는 먹이를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먹을까? 하루종일 그 생각만 한단말야. 그래서 자기를 더 살찌우는게 자기를 더 행복하게 만들거라 생각해.
  하지만.. 하지만 말야 그 살들은 자기 자신의 것이 아냐 그들의 먹이로서 그들의 먹이로서 그 살이 존재한다는 것 조차 모른단 말야 돼지가 될 수는 없어.  
  그 새끼들 시간 지나면 지금 일을 어떻게 생각할까? 추억이라고 생각할까? 아름다운 추억? 아니 절대 그렇게 만들지 않겠어.

이 작품은 처음의 분위기 그대로 매우 염세적으로 흘러가는데,
철이는 영웅이 아닌 괴물을 꿈꾸다, 왕이 필요했던 사람들에 의해 희생 당했고,
그리고 남은 인물들은 괴물도 개도 아닌 어정쩡한 돼지로 다시 고착되어 버렸다.

폭력을 더 강한 폭력으로 풀려던 이들의 노력은 모두 허사로 돌아갔으며,
세상은 변한 것이 없이 흘러간다.


결국 돼지의 왕도 돼지였으며, 현재의 개도 더 큰 개에게 착취당할 뿐이다.
이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은 시스템 내의 혁명이 아닌,
사회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 뿐.


그러나 지금 우리의 위치는.

이곳은 얼음처럼 차가운 아스팔트와 그보다 더 차가운 육신이 뒹구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