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시시콜콜한 이야기 (1855)
언제나 날씨는 맑음
그가 전화를 해주었으면, 하고 기다릴 때가 있다. 나의 코끼리 이야기를 이해해주고 귀 기울이는 사람은 그밖에 없으니까. 나는 수화기를 붙잡고 코끼리 얘기만 갖고도 한 시간쯤은 수다를 떨 수 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래도 보이는 게 있다. 이따금씩 집이 꿈틀, 움직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아, 코끼리가 왔구나, 짐짓 생각하는 것이다. 방금 곁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질 땐 그냥 무덤덤하더라.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이토록 설움이 북받치는 것이지. 나무를 베는 일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주 계획직인 일입니다. 우리들은 돌아오는 겨울이나 새 봄에 죽어야 할 나무들을 골라 동력 톱으로 껍질을 벗겨놓습니다. 미리 표시를 해두는 거지요. 멀리서 보면 표시를 해둔 나..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하루키의 글 중 하나.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하루키의 글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동화적인 앞부분이 아닌, 씁쓸함이 느껴지는 후반부이다. 처음 이 글을 책으로 읽었을 때는 도입부분을 참 좋아했던 것 같은데... 100%의 완벽함이란 있을 수 없는 사람에게, 100%의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느낌만으로도 온전히 나를 충족시키는 그 혹은 그녀. 나 같은 경우는 좀 역설적이긴 하지만, '가끔은 바보가 되는 사람'이 100%의 남자아이일 것 같다.내가 그러하니까. 누군가가 나에게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어,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습니까"로 끝나는 말을 건낸다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하라주쿠의 뒤안길에서 나는 1..
아트앤스터디에서 인강을 듣기 시작한지 몇개월이 지났다. 회사를 다니면서 채워지는 과정 없이 스스로를 소비하는 것 같아 꽤 지쳐있었는데, 돌파구를 찾은 느낌이다. 이제 vip회원권을 끊어서 오프라인 강의들도 들을 생각이다. 매일 퇴근 후에 운동하고 강의 듣는 생활이 반복되니 생산적인 느낌이 들고 즐겁다 ^^ 종강될 때마다 필기한 것들을 이글루스에 올릴까한다. 아무래도 노트에 쓴 걸 다시 한번 정리해서 복습할 필요도 있고 온라인에 정리해 두면 나중에 이용하기도 좀더 수월할테니 :) 인강이다보니 좀 단절된 느낌도 없잖아서 아쉽기도하다. 같이 들으면서 토론하거나 스터디까진 아니더라도 의견을 나눌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아트앤스터디 홈페이지 안에서 수강생들간의 채팅방이나 쪽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도 괜..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창밖을 보다가 우연히 한 할머니께서 신호등을 건너시는 것을 보았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신호등은 노인분들이 건너시기에는 너무 빨리 바뀌는데다가 요즘에는 몇초 지나지도 않아 알림등이 급속히 내려가 더 조급함을 유발시킨다. 어찌나 위태로워 보이시던지 숨가쁜 걸음으로 겨우겨우 길을 건너실즈음에야 내가 다 한숨을 내쉴 지경이었다. 그 다음에는 도로공사장이었는데 공사중이라 턱이 조금 높았다. 젊은 사람이라면 쉽게 올라가버릴 별 신경도 쓰이지 않을 길이었는데 정말 힘겹게..이리저리 낮은 곳을 찾다 힘겹게 올라가셨다. 아장아장 왠지 아기같은 .. 그러나 왜 그 모습이 그리도 처량해보이는지 괜히 우리 할머니도 저렇게 힘이 없어지셨을까봐 마음 한켠이 짠했다. 나도 나의 부모님도..그리고 내 주변의 ..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 아주아주 커다란 운동장을 가진 학교로 전학을 간적이 있었다. 그 커다랐던 운동장에는 길쭉길쭉한 나무들이 또 그렇게 끝도 없이 서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 그 작은 키에 높다랗게 보이던 그 나무들이 얼마나 커보였는지 여름에는 그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이 좋아서 가을에는 나무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질때 그것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어느 친구의 말에 하염없이 하염없이 우리모두 그 아래에 서있었더랬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가을이 되어 커다란 잎들이 하나하나 쌓여갈 때 짙게 학교 전체를 감싸던 그 나무향들이다. 정말 말그대로 暗香(암향)이라 할만하다... 아침에는 흔히들 그렇듯이 청소를 했었는데 워낙 나무가 많았던 학교의 특성 상 그 나뭇잎들을 줍고 한데모아 후에 땅의 밑..
어렷을 적 나의 기억은 이제는 흐릿한 하나의 단상으로 남아있다. 특히 5살이전의 기억들은..더더욱 그렇다. 조금씩 생각나는 것들은... 좋아하지도 않는 가지를 할머니가 가꾸신 화단에서 그저 재미로 똑똑 따다가 혼났던 기억... (지금은 잘먹는다 ^^) 외가에 놀러갈 때마다 할머니가 쥐어주시던 펜과 종이로 열심히 공주며 동물이며 별들을 그렸던 손가락들.. 한동안 힘겹게 배우던 젓가락질 연습... 혀짧은 소리로 지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귀가 발개져서 총각이었던 삼촌들과 싸우며 놀리며 그렇게 지냈던 날들.. 분에 못이겨 울던 날 번쩍 들고 나간 삼촌에게 듣던 무섭고 이상스럽던 동화들...반짝 거리던 가로등의 불빛들.. 유일하게 살았던 아파트가 아닌 주택가에서 뜰쪽에 있던 강아지가 무서워서 옥상에 올라갈때면 계단..
낭만적 사랑에서는 서로의 차이점이나 갈등의 요인들이 간과되고 축소된다. 낭만적 사랑의 관점에서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 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차이점이나 갈등이 있다 해도 소소한 것이거나 소소한 것이어야 한다. 그 결과는? 갈등이 커질수록 상대방이 진정한 영혼의 짝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며 결국 관계는 깨지게 된다. 합류적 사랑이란, 기든스에 의하면 "자기 자신을 타자에게 열어 보이는 것"이다. 즉, 서로 다른 정체성을 인정하고 사랑의 유대를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정체성을 이루어 가는 것이 합류적 사랑이다. 동물원은 '주체'와 '타자'와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사랑했던 우리. 나의 너, 너의 나,나의 나, 너의 너. 항상 그렇게 넷이서 만났지. 사랑했던 우리. 서로의 눈빛에 비춰진 서..
일찍 시작하는 과외 때문에 아침만 먹고 나와버려서 내가 좋아하는 갈릭허브스틱을 살 겸 기분좋은 제과점에 잠깐 들렀다. 기분좋은 제과점...은 내가 붙여준 이름이다. 몇주전쯤에 역시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려고 들어간 빵집이었는데 계산대에서 지갑을 두고온걸 깨달았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나오려고하는데 아주머니가 뜻밖에 나중에 돈을 갖다달라며 그냥 주셨다..;; 2천원이 큰돈은 아니지만 단골도 아니고 처음보는 사람에게 선뜻 그렇게 믿음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알고있기에... 나에겐 사실 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다시 가게된 그곳에서 늦어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다른빵을 사면서 돈을 드렸더니 함박 웃음을 지으시면서 작은 치즈케이크를 커다란 케이크로 바꿔주셨다 >_
옆모습/ 안 도 현 나무는 나무하고 서로 마주보지 않으며 등 돌리고 밤새 우는 법도 없다 나무는 사랑하면 그냥, 옆모습만 보여 준다 옆모습이란 말, 얼마나 좋아 옆모습, 옆모습, 자꾸 말하다 보면 옆구리가 시큰거리잖아 앞모습과 뒷모습이 그렇게 반반씩 들어앉아 있는 거 당신하고 나하고는 옆모습을 단 하루라도 오랫동안 바라보자 사나흘이라도 바라보자 오늘 안도현님의 인터뷰 영상을 봤다. - 안도현님의 시 중에는 사랑했었다는 말을 하지않겠다..는 말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약간 두려워하는듯한?.. 왜그러신거에요?.. 저는 할 것 같은데..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건가요? - 사랑한다는 말 속에는 뭐라고 할까요 은유가 없는 것 같아요 은유가 없으니 그리움도 없고 울림도 없고.. 깊은 울림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랑이라..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하늘이지만 그래도 밤에 잠깐 내린 비덕분인지 선선해진 날씨에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과외를 마치고 길을 걷는데 할머니 두분이 길거리에서 얘기를 나누고 계신다. 한분은 색색의 머리끈과 핀을 앞에 두고 한분은 양배추와 가지와 옥수수를 앞에 두고 그렇게 차들이 앞을 향해 쌩썡 질주하는 길가에 앉아계셨다. 두분 앞에 놓인 것은 다르지만 펼쳐놓은 색바랜 갈색 천들과 이마와 빰에 깊게 드리워진 짙은 주름살과 삶의 흔적들은 무척이나 닮아보였다. 그 얼굴 곳곳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을까.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그분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싶은 충동에 젖어 들었다. 어린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나비와 꽃모양의 머리끈과 먹기싫어해서 항상 혼이 나던 가지.. 그리고 그분들의 손에 패인..
햇살이 너무 좋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날씨라 오랫만에 광합성을 해볼까하고 과외가 끝나고 버스 중간에 내려서 길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어제 비평론이며 이런저런 과제에 치여서 조금 지쳐있던 마음이 스르륵 풀어져가는걸 느끼면서 눈을 감고 앉아서 바람을 느끼고 벤치에 앉아서 호수를 보기도 하면서 잠깐의 휴식을 즐겼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가 걸려왔다. 누군가 싶었는데 내가 고등학교 3학년때,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섭섭한 마음 반 안타까운 마음 반 축복하는 마음 반... 이렇게 조금은 복잡한 심정으로 결혼식을 지켜봤던 친언니같은 지인이었다. 오랫만에 전화라 너무나 반가웠는데 첫아이가 곧 태어난단다... 조금 늦은 출산이라 너무나 기뻐하고 있다고 친정과 시댁 모두 경사로운 일이라고 들떠있다고 했다. 내 기분도..
세월이 흐르고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각종 잡다하고 끝이 없어보이는 일상 속의 과제를 해내고.. 나도 어느덧 사람이 살아간다...란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많은 일 중 몇가지를 거쳐오고 있다. ... 그중 나에게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친구, 가족, 동료, 선후배, 은사, 제자 등의 여러가지 이름표를 달고 있는 그것은 내 마음을 기쁘게 하기도 하고.. 한때는 나의 속을 너무나 가슴아프게 휘져어 놓기도 한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운게 대인관계일 것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점점 삶의 종착지를 향해 한발을 내딛어 갈 수록 나와 한평생을 살아갈 누군가를 찾아낸다는 것이..
사람을 만날 때 초반에는 서먹서먹함을 없애고 빨리 친해지고 상대방을 더 많이 알기 위해 노력한다. 더 좋은 인상으로 다가가기 위해 웃는 표정과 가끔 선물을 준비하기도 하고 말도 조심조심한다. 그런데 결혼 5년,10년 2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은 가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나마저 불안하게 한다. 사람의 기억력은 너무나 이기적이라 자신이 가까워지고 싶어서 애써 다가간 그 거리감을 이제는 신비감이 없고 너무 지루하다는 이야기들로 채워나가기 시작하니까... 저 시를 읽고 너무나 슬퍼졌다. 항상 처음같을 수는 없는걸까. 정말 그게 너무나 어려운걸까... 50년을 함께 살았는데 아직도 신비감이 느껴진다면 그것도 어찌보면 무섭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어느정도 선에서 사생활을 갖는 것도 아주 중요한 ..
장식론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젊음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이다. '씻은무" 같다든가 '튀는 생선' 같다든가 그렇게 젊은날은 젊음 하나만도 빛나는 장식이 아니었겠는가 때로 거리를 걷다보면 쇼윈도우에 비치는 내 초라한 모습에 사뭇 놀란다. 어디에 그 빛나는 장식들을 잃고 왔을까? 이 삐에로 같은 생활의 의상들은 무엇일까? 안개같은 피곤으로 문을 연다. 피하듯 숨어보는 거리의 꽃집 젊음은 거기에도 만발하여 있고 꽃은 그대로 눈부신 장식이었다. 꽃을 더듬는 내 흰손이 물기없이 마른 한장의 낙엽처럼 슬쓸해져 돌아와 몰래 진보라 고운 자수정 반지 하나 끼워 달래어 본다. 그림: 강영균 글: 홍윤숙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다가 결혼후 7년간을 처녀로 살았고 너무나 단조로울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진부한 ..
샤갈은 한국 사람들이 잘 알고있고 많이 좋아하는 화가 중 하나이다. 나 역시 그의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그 이유는 그가 사용하는 아름다운 색채 그리고 부인 벨라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감수성은 애정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화가들의 여성편력은 종종 심심찮게 회자되곤하지만 샤갈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은 일반적으로 부인과 관련되어있고, 벨라가 죽은 후 극심한 슬픔에 젖어있다는 이야기도 전해내려온다. ... 우린 작고 큰 이별을 한다. 내 기억에 아프게 느껴졌던 첫번째 이별은 외할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였는데 죽음의 의미를 명확히 알지 못했던 그때에도 종종 사탕이며 리본을 손에 쥐어주시며 큰손녀라고 귀여워하시던 할아버지를 볼수없다는 것과 주위 사람들의 울음과 그 침체된 분위기에 질..
"이데올로기가 호명하면 개인들은 주체로 변형된다 즉 부르는 소리가 자신을 대상으로 하고있음을 인지하고 스스로 그 부르는 소리의 객체가 된다.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마치 이데올로기의 주인이 된 것처럼 행세하도록 초대한다. 이데올로기가 불러서 우리가 대답하는 과정은 무의식적인 과정이다 개인주체들은 스스로 복종이 아닌 자유로운 참여, 즉 실천을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http://dory.mncast.com/mncHMovie.swf?movieID=10013178220061122231402&skinNum=1 매스컴이나 국가, 집단의 의식화가 무섭다는 것은 알고있지만 화려한 영상을 보면서 계속 이건 아니잖아;;;를 중얼거렸다. 대기업의 내부의식화 산업 소위 단결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것들. 안토니오 그람시는 ..
2011년 초에 찍어뒀던 것들. 지금은 1년이 지나서 또 저만큼 쌓였다. 바쁠 때는 한달 넘게 책 보고 음악 듣는 것 외엔 아무 것도 못해서 ㅜㅜ 요즘처럼 한가할 때 많이 봐둬야 한다 :)
오랫동안 사용했던 싸이월드를 버리고 드디어 새 블로그로 옮겨왔다. 그동안 써놓은 일기를 포함한 글들이 너무 많아서 옮길 엄두가 안나서 미루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냥 과감히 옮겼다. 모든 자료를 다 가져오진 못할 것 같고, 극히 일부의 자료들만 옮기고 그냥 시작할 생각이다. 덕분에 몇년 전의 글들이..여름이나 봄에 쓴 글들이 모두 올해 겨울 날짜로 등록되는 참사가 일어날듯;; 이전과는 좀 다른 형태의 블로그로 만들어갈까 싶은데 구체적인 것은 천천히 생각해보자. 일단은 예전처럼 공부하고 있는 내용들 정리, 일기장, 보고들은 것들에 대한 감상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싶다. ^-^
쪽저고리와 잇저고리 쪽을손가 쪽저고리 잇틀손가 잇저고리 사슬동정 놆이달고 백자고름 섪이달고 횃대 끝에 걸어놓고 시애각시 어디갔나 치마꼬리 달랑달랑 물긷든거 불쌍해라 앞다리가 가뜬가뜬 방찧든거 불쌍해라. 〈저로기 노래〉라고 하는 우리 민요이다. 저고리를 횃대 끝에 걸어놓고 죽은 시애각시를 생각하면서 부른 것인데, 여기 나오는 쪽저고리 잇저고리가 어떤 옷인지 알아보고 싶어 옮겨 보았다. 쪽저고리는 쪽물을 들여 만든 쪽빛깔, 다시 말해 하늘색 저고리고 잇저고리는 잇꽃물을 들여 만든 붉은 자주색 저고리다. 요즘은 잇꽃을 모두 홍화라고 하는데 기왕이면 우리 이름 잇꽃으로 했으면 좋지 않을까. '놆이'란 높이의 옛말이고 '섪이'는 조금 아랫쪽을 가리키는 옛말이다. 이 곳 안동지방 말에는 우리말의 본디 모습을 보여 ..
멋진 ‘어른여자’가 되는 법 새해 들어 무려 서른 아홉살이나 먹게 된 내가 요새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를 가지고 있는 화두는 ‘나이를 잘 먹어가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해야 ‘아줌마’로 전락하지 않고 ‘여자’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건지? 어떻게 하면 젊게 살면서도 꼴불견이 아닐 수가 있지? 그래서 나의 ‘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여자들’에 대한 연구와 관찰은 지금도 상시 풀 가동 중이다. 친절히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음과 같이 먼저 ‘나이를 멋있게 먹은 여자들’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었다. 첫째 스스로에게 어리광부리지 않는 여자 둘째, 지나치게 까탈스럽게 굴지 않는 여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지나치게 나서거나 나대지 않는 여자 이젠 내가 위의 이야기들을 더 자세히 풀어볼 차례다. 모든 단점이나 결점은..
얼마 전 우연히 굉장히 충격적인 기사를 보았다. 日특급열차안 성폭행 충격 20대 여성 울며 호소해도 승객들 외면 기사의 요지는 표제에 나와있듯이 일본의 열차 안에서 한 남성이 20대 여성을 위협해서 열차 안 화장실로 끌고가 성폭행을 했는데, 열차 안에 승객이 40명정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위협에 아무도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열차 내에 신고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고, 여성을 화장실까지 끌고가는 동안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음에도 40명 모두 신고하거나 막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이 기사를 읽고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 사건에 대한 일본인들의 댓글 중 이지메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수 있어서 내 눈길을 끌었다. 그 댓글 중에는 자신이 왕따를 당했을 때도 교실의 그 수많은 아..
타인과 나 혹은 내 자신의 감정과 이성간의 바람직하고 적당한 거리라는 것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간격일까. 내가 확보해야하는 적당한 거리는 ~cm야 라고 명문화하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각자 상대방과 상황에 따라 편안하게 느끼는 거리가 다르다. 사람의 경계는 피부가 아니라고 한다. 거품처럼 개인을 둘러싼 경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침해되었을 때 깨닫는 경계가 있다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엘리베이터에나 에스컬레이터에서 낯선 사람과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게 되면 그 대상이 남자든 여자든 매우 불편함을 느끼는 편인데 이는 아마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해서라기 보다는 내가 확보해야 하는 개인공간을 침범당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인간관계의 거리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1. 친밀한 거..
요새 날이 더우니 잠을 새벽까지 못자서 집에서 에어컨이나 틀고 드라마를 보는 생활이 종종 내 방에서 재현되곤 한다. 보통 드라마를 잘 안보는 편인데 첫번째는 일단 티비가 없으니 시간내서 챙겨보는 일이 드물고 둘째는 특히 한국드라마를 볼 때 의도치 않게 혹은 의도적으로 그 속에 녹아져있는 문화,사회적인 터부나 편견들이 불편하고 세번째는 1,2의 이유로 굳이 시간을 투자해서 보자면 훨씬 더 좋은 영화 등의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그러하다. 아무튼 저런 이유들을 다 이겨내고 간혹 보는게 식객인데 만화와 영화로 한차례씩 봤던 거라 드문드문 보아도 별 무리없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긴 중간에 건너뛰어도 몇편의 방송분이나 음악들, 인물들의 음성들을 보면 그다지 지장없이 그 끝이며 전개과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
늙은 도둑놈처럼 시커멓게 생긴 보리밭가에서 떠나지 않고 서 있는 살구나무에 꽃잎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자고 나면 살구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누가 꽃잎을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는 그가 누구인지 꽃잎을 자꾸자꾸 이어 붙여 어쩌겠다는 것인지 나는 매일 살구나무 가까이 다가갔으나 꽃잎과 꽃잎 사이 아무도 모르게 봄날이 가고 있었다 나는 호드득 지는 살구꽃을 손으로 받아들다가 또 입으로 받아먹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어느 날 들판 한가운데 살구나무에다 돛을 만들어 달고 떠나려는 한 척의 커다란 범선을 보았다 살구꽃을 피우던 그가 거기 타고 있을 것 같았다 멀리까지 보리밭이 파도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서 가서 저 배를 밀어 주어야 하나 저 배 위에 나도 훌쩍 몸을 실어야 하나 살구꽃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