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염소뿔이 녹는 날 본문
오늘은 대서大暑. 중복이다.
너무 더워서 염소뿔도 녹는다는 그런 날씨.
비가 와서 햇빛이 강하진 않았지만 습기로 가득 찬.
덕분에 아침부터 아이스크림 삼매경.
복날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오빠가 닭이라도 먹었냐고 카톡을 해서 뒤늦게 깨달았다.
아니 그냥 평범하게 밥 먹었는데. 라고 보냈더니
자기 혼자 먹을 수 없다면서 퇴근 하고 이렇게 치킨 사들고 오심 ㅎ
저 멀리서 치킨봉지를 들고 기다리는 자태를 보고 너무 좋아서
방정맞게시리 펜슬스커트에 하이힐 신고 폴짝폴짝 달려갔다 !!
지난번에 오빠랑 동네탐방하다, 우연히 알게 된 동네치킨집인데 맛있다! ♡
샐러드랑 감자튀김까지 다해서 12000원!
크리스피 순살도 가격동일.
집안에서 먹다가 답답해서 공원으로 나왔다.
음악 틀어놓고 나란히 들으니 참 좋다.
하늘엔 별 몇개가 반짝반짝.
별이 아니라 인공적인 무엇이라고 해도, 저 멀고 새까만 하늘에
반짝이고 빛나는 무언가가 이곳을 향해 빛을 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위안이 된다.
나는 네 존재에 대해 모르지만. 그래도 이 밤. 날 지켜봐주고 있다는 것만으로.
학교 다닐 때 둘이 치킨 시켜서 공학관 벤치에서 먹곤 했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막막 또 즐거워진 ㅎㅎ
당시에 우리집이 공대건물이랑 가깝다는 이유로 매번 거기서 먹었는데
아마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면 오밤중에 공대애들이 야식시켜먹는 것으로 알았을지도(...)
오빠가 콜라 마시는걸 보다가 눈감고 손 내밀라고 하니까
무슨 선물 주는 줄 알고 ㅎㅎ 다소곳하게 내밀길래-_-
빨간펜으로 '2013 더위방지의 조건은 팥빙수 선물' 이렇게 써서 네모난 테를 둘러줌.
그리고 '복날부적'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더니
아아 무슨 부적이 조건이 있냐면서, 달달구리 조공 많이 사다 바쳐야겠네 라고 투덜투덜
그 모습이 어쩐지 웃겨서 또 깔깔거리고 싱겁게 웃었다.
자자. 고기도 잘 챙겨먹었고 부족한 시간이지만 수다도 실컷 떨었으니
힘내서 여름이 끝날 때까지 달려보자 :D
오빠가 그동안 매달리던 회사일 잘 풀린 것 축하.
우리둘다 올해 크게 아픈일, 안좋은 일 없이 반년을 지난 것도 축하.
소소한 음식이지만 함께 먹을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도 감사하다.
힘들 때면 읽어보라고 오빠에게 적어준 글.
오늘의 울음이. 언젠가 180배의 웃음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김연수「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할아버지가 가리키는 부분에는 ‘인간의 수명이 70살이라고 할 때, 우리는’이라는 제목의 짤막한 글이 있었어.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지.
1. 38300리터의 소변을 본다.
2. 127500번 꿈을 꾼다.
3. 2700000000번 심장이 뛴다.
4. 3000번 운다.
5. 400개의 난자를 생산한다.
6. 400000000000개의 정자를 생산한다.
7. 540000번 웃는다.
8. 50톤의 음식을 먹는다.
9. 333000000번 눈을 깜빡인다.
10. 49200리터의 물을 마신다.
11. 563킬로미터의 머리카락이 자란다.
12. 37미터의 손톱이 자란다.
13. 331000000리터의 피를 심장에서 뿜어낸다.
할아버지는 4번과 7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손수 종이에다 계산을 했어. 이번에는 곱하기 문제가 아니라 나누기 문제였어.
540000÷3000=180
“하루에 사십이해일천이백만경 번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내는 인간들로 가득 찬 이 지구에서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이 180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인간만이 같은 종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만이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180이라는 이 숫자는 이런 뜻이다. 앞으로 네게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테고, 그중에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일어나기도 할 텐데, 그럼에도 너라는 종(種)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한 번 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이 사실을 절대 잊어버리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하고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할아버지가 말했어.
“그러니 네가 유명한 작가가 된다면 우리 인간이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겨우 한 번 울 수 있게 만들어진 동물이라는 사실에 대해 써야만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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