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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날씨는 맑음
평소에 주로 오가는 버스 정류장은 우리집에서 5-8분정도의 거리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은 내가 이사왔을 당시엔, 망해가는 빵집이었고 그 뒤엔 신당동 스타일의 떡볶이집이 생겼더랬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 '정류장 앞 상가'에 대한 것이다. 빵이나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베이킹 배운 뒤론 더더욱 꺼리게 되어 빵집은 미처 내가 가볼 틈도 없이 운명을 다했다. 하지만 떡볶이. 그것도 전골 떡볶이만은 내가 광팬이라 거의 3,4일에 한번 꼴로 가서 포장해오는 바람에-_- 머리 희끗한 할주머니(할머니와 아주머니의 중간)께서 내가 오면 항상 서비스를 더 주셨다. ^^; 그런데 내 정성이 부족했는지 반년쯤 지나니까 망해버림(...) 그래 애초에 이 동네에 이런 떡볶이집이 오래 갈리가 없지...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본가에 다녀왔다. 보통 명절이나 주말에나 시간을 내서 찾는 편이라 평일에 이 고장을 찾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일 것이다. 아주 한적한 혹은 다소 들떠있는 느낌의 거리만 보다가 일상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니 기분이 이상했다.. 어떤 골목을 보면 내가 매일 걷고 달리던 그 모습과 쏙 빼닮았는데, 또 어떤 건물은 사라지고 새로 생기기도 해서,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휴가를 내고 온터라 시간이 넉넉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중학교 근처로 걸어가봤는데 아직까지 내가 다녔던 학원건물이며 그 앞의 분식집이 그대로 있었다. 학원명은 이미 바뀐 상태라 조금 실망을 하고 분식집에서 식사를 할까 하고 설핏 봤더니 세상에..초등학교 때 그분이 아직도 장사를 하고 계시더라... 비평준화지역이라 중..
연애란 이 사람한테 받은 걸 저 사람한테 주는 이어달리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전에 사람한테 주지 못한 걸 이번 사람한테 주고 전에 사람한테 당한 걸 죄 없는 이번 사람한테 푸는 이상한 게임이다. 불공정하고 이치에 안 맞긴 하지만 이 특이한 이어달리기의 경향이 대체로 그렇다. 며칠 전 친구를 만났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부른 것이라 어리둥절해하며 나갔더니 술친구가 필요하단다. 토요일 저녁. 그 많은 친구 중에 하필 그동안 연락이 끊겼던 나와 술을 마시고 싶어 한 이유를 처음엔 몰랐었다. 굳이 의례적이라고 할것까진 없었지만 어쨌든 서로의 안부를 물은 다음 그 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길 하면서 눈물을 왈칵 쏟는다. 많이 좋아하는구나...싶었다. 문..
마르크 샤갈, 비테프스크 위의 누드 Nude over vitebsk,1933 '선생님. 너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어른들은 어떻게 해요' ..라고 어느날 기운 없는 목소리의 학생이 물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비슷한 꿈을 꾸고 있었다. 꿈에서 나는 어느 국밥집에 앉아있었다. 좁다랗고 추레한 의자와 나무탁자. 압도될만한 크기의 가마솥. 처음 보는 곳.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여기저기 놓인 가마솥 때문에 사방에서는 엄청난 양의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내 앞에 놓인 커다란 그릇에 내 눈 앞 역시 뿌옇게 가려졌다. 그리고 맞은편 좌석의 남자가 몸을 돌렸을 때, 나는 그 남자가 바로 '그'임을 알아차렸지만 난 일어나서 그를 부를 수도, 뚜렷하게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간신히 숨을..
둥실한 달이 떠오른 지 한참 지나고, 빛과 어둠이 묘하게 교차하는 밤. 티비에서 통속극들이 흘러나오는 시간. 한창 출출해질 이즈음 집집마다 치킨이나 피자처럼 즐겨먹는 음식이 있겠지만, 우리집은 마치 매일 이루어지는 성실한 의식처럼 한밤에만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잔치국수. 아빠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거의 늦게 오는 일이 없는 편이셔서, 저녁시간엔 다같이 모여서 책을 보거나 수다를 떨었고 그도 아니면 앉은뱅이 상을 펴놓고 낮에 한 숙제를 검사받곤 했다. 책상이나 식탁이 있었음에도, 아빠가 공부를 봐주거나 야식을 먹을 때는 언제나 동그란 모양에 물결무늬가 새겨져 있는 앉은뱅이 상이 등장했다. 상에 마주앉아 아빠가 물어보는 구구단이며 영어단어들을 머리를 쥐어짜가며 읇조리고 있으면 나를 해방시켜..
영화 도둑들을 보면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다시 보는 전지현의 재기발랄한 모습이었다. 내가 이 여배우를 좋아하게 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엽기적인 그녀' 이후부터였는데, 작품활동이 시원치 않아지면서 그녀가 '한물간' 취급받을 때도 난 그녀를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한살두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좀더 가속화되었다. 대부분의 배우에 대한 건조한 감정에 비해, 왜 그녀에 대한 애정만은 그리 쉬 죽지 않는지 스스로도 궁금하곤 했는데, 어느날 재방송으로 '엽기적인 그녀'를 보다가 문득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 감정의 원천은 전지현의 유별난 매력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녀가 연기한 '엽기적인 그녀'에 대한 끌림이었다. 청춘.하면 떠오르는 영화를 국내에서 뽑는다면 난 '발레교습소'와 '엽기적인 ..
얼마전 먼 거리를 가야 할 일이 생겨서, 항상 그렇듯이 이어폰을 꽂고 버스 의자 깊숙이 앉아 있었다. 버스 안은 조용한 편이었고, 유난히 친절한 기사아저씨의 안내멘트 외엔 나지막하게 흐르는 음악 소리가 전부였다. 이 기사 아저씨는 유달리 친절하셔서,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괜시리 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버스승객들 중에 취객이나 불친절한 사람들도 많을테고, 계속 한 자리에 앉아 운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텐데 버스가 코너를 돌거나, 몸이 불편해 보이시는 분이 앉을만한 낮은 자리가 없을 때 내리고 탈 때 모두 '천천히 하세요.' '조심하세요' 등의 멘트를 계속해서 말해주셨다. 꽤 긴 시간동안 버스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좋았던건, 이 분의 감탄이 나오는 친절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호대기를 하..
지금도 아주 많은 나이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빈틈이 없고 계획이 꽉 짜인 일상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연이은 시험때조차 새벽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말끔한 모습으로 등교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 아침에 일어나면 정해진 식단에 정해진 운동을 했고, 일주일. 한달 단위의 크고 작은 일정들은 대부분 미리 정해져 있었다. 너와 만나기 전에는. 있잖아. 미리 고백하자면, 너의 첫 인상은 그렇게 좋지 않았어 넌 지나치게 자신만만해 보이고, 때론 너무나 거침없어 보였거든. 그래 그 당당함 속에서 얼핏 비치는 부드러운 모습들이 너와의 관계를 이어가게 해줬지만, 너와 내가 오래 사귈수 있을지. 혹은 사귀기 시작할지의 여부는 꽤 오랜 시간 곰곰히 고민할 정도로 ..
잠을 자기 전 확인할 것이 있어서, 아주 오랜만에 한메일에 들어갔다가 뜻밖의 것을 확인했다. 그건 바로 20대 초반의 내가 보낸 메세지..였다.짧막한 글과 함께 약속을 알리는 알람메일. 그 메일에 의하면 난 내년 11월 혜화역에 가야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 다시 살아난건 순전히 이 이메일 때문이었다. 아마 이 때에도 11월 초에 첫눈이 내렸을 것이다. 그때의 눈이 어땠는지 기억하니? 언젠가 "그래.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라는 나의 의례적인 말에, "그럼 무슨 요일날 볼래?" 라고 되물어 날 당황시켰던 게 만남의 시작이었을거야. 그전까지 우린 그저 적당히 인사나 나누는 친구였지. 겨울로 성큼성큼 다가가던 어느 날 네가 전화 했었잖아. 네가 했던 작은 부탁에 대한 답례를 하겠다며 선물을 고르라고 ..
대담 대상자: 레이먼드 카버 대담자:모나 심프슨, 루이스 비즈비 번역:성경준(서울대 석사 영문학) 출처: 외국문학 1989년 가을호(제20호), 1989.9, 오늘의 세계문학 5. 206-237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는 1938년 5월 25일 오리곤 주 클라츠카니에서 제재소 직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 아카타에 있는 훔볼트 주립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았고, 1963년과64년에 아이오아 대학에서 연구했다. 최근에 단편소설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카버의 주요작품으로는 (1976),(1981),그리고 (1983)등이 있다. 또한 그는 (1984)의 저자이기도 하며, 최근에는 (1985)과 (1986)이라는 두권의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밀드..
지난주만 해도 거리의 잎들이 모두 파랬는데, 좀 추워졌다 싶으니 서서히 단풍이며 은행잎이 물들기 시작한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시나브로.라는 말을 평소에 거의 사용할 일이 없는데 줄 지어 늘어선 은행나무들을 보고 생각이 났다. 시나브로 물드는구나. 친구가 요즘 일이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해서, 무언가 위로의 대답을 하려는 순간, 문득 아르바이트를 할 때 타고 다녔던 버스 생각이 났다. 학교 다닐 때 과외 장소가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라 항상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선유도 공원을 지나서 가는 경로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나 은행잎이 한잎한잎 떨어지기 시작할 때면 차창 밖에 너무 예뻐서 그대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몇 번이나 들곤 했다. 아이들의 시험기간이나 내 시험기간은 언제나 벚꽃의 시기와 겹쳐..
이두표, 산 것과 주운 것-유모차 두대, 2011 내가 매일 오가는 동네 한 귀퉁이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그 공원은 동네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구석구석 골목골목을 탐험해보지 않으면 찾기 어려울만한. 아주 작고 옹색한. 하지만 어딘지 정감이 느껴지는 놀이터와 쉼터 사이 그 중간쯤에 위치한 장소이다. 가끔 일상에서 눈길을 끄는 소소한 일들이 이 공원을 지나갈 때 목격되기 때문에 난 이곳을 좋아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야기하려고 하는 며칠 전의 일도 이 곳에서 일어났다. 낮에 이 공원을 지날 때 항상 눈여겨봤던 것은, 고부사이인지 모녀사이인지 알 수 없는 두 여인의 모습이었다.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골목을 아주 천천히 걷거나, 공원에 라디오를 틀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는 모습으로 두 분은 종종..
커플은 원래 서로 닮는다던데, 나와 남자친구는 외모상으로는 다른 점이 많다. 공통점을 찾으면, 피부가 하얀 편이고 키가 크다는 것 정도. 나머지의 생김생김이나 전체적인 인상은 많이 다르다. 그의 눈은 홑꺼풀에 슬쩍 처진 눈매이며, 내 눈은 쌍꺼풀이 있고 눈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그의 피부는 분홍색이 잘 어울리는 쿨톤, 나는 오렌지 빛이 잘 어울리는 웜톤이다. 그의 어깨는 넓고 네모난 각이 진 편이고, 내 어깨는 좁고 둥글다. 그가 순하고 느긋한 충청도 남자라면, 난 서늘하고 도회적인 인상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우리가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비슷해서가 아닌가 싶다. 만약 남자친구가 인간으로서 매력적인 사람이 아닌, 단순히 이성이 주는 두근거림만..
우리집엔 책을 꽂아두는 공간. 거창하게 말하면 서재 진실을 말하면 책꽂이 몇 개의 묶음이 세 곳 존재했다. 아버지의 책꽂이는 거실 한쪽 벽에 천장까지 닿을듯한 높다란 책꽂이였다. 주말이면 항상 사라지던 긴 낚시대와 직접 만드신 괴목탁자가 그 곁을 지켜서, 나무향과 바다 냄새를 동시에 풍기며 책들은 존재감을 뽐냈다. 어머니의 서재는 방 한쪽의 베란다를 개조해서 만든 공간에 나와 내동생의 작은 손수건이나 천가방 등이 탄생하곤 했던 미싱들과 함께 있었다. 어렸을 때는 커다랗고 매우 고풍스러운 모양의. 발로 밟아 움직이던 그 미싱은 어느새 미끈하고 새하얀 브라더 미싱으로 바뀌었지만 햇살이 투명하리만치 좋은 날이면 여전히 천조각들과 실밥들이 책과 공기 사이를 천천히 부유하곤 했다. 나의 서재는 거실쪽 베란다를 차..
고백하건데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 글은 고양이 기피주의자의, 고양이에 대한 글. 그러니까 조금은 이상한 글일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난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에 속했지만, 그중에서도 고양이는 곁에 있으면 질겁을 하고 피할 정도로 거부감이 심했다. 그 이유가 이모댁에서 고양이에게 옮겨온 피부병 때문에 한달 넘게 고생을 했던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앨런 포의 '검은고양이'에서 느꼈던 음산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양이만 보면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할퀼 것 같은 앙칼진 느낌 때문에 절대로 다가가지 않았다. 가끔 새끼고양이는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가 '그럼 한번 키워볼래' 라고 묻는다면, 얌전히 고개를 좌우로 내젓곤 했었다. 때문에 언제나 내가 사랑한 것은 물고기와 식물들처..
도서관에서 조세희 씨의 '침묵의 뿌리'를 읽다가 너무 감동을 받아서, 열화당에 전화를 했더니 출판사에도 재고가 없는 품절된 도서라고 했다. 조세희 선생님이 재출간하실 의사가 없다고 하셔서 다시 나올 예정이 없는.. 중고매물도 찾아보기 힘들어 결국 개인 판매자에게 원가의 두배가 넘는 가격을 주고 어렵게 어렵게 주문을 했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꼭 소장하고 싶은 책이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나 역시 서문을 한동안 계속해서. 거듭. 읽고 있었다. 도저히 그 글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 책과 함께 읽어보면 좋은 글로 언급된 것이 이 기사였는데, 제목이 기억이 안나서 한참 헤매다가 찾아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구나... (붉은색은 프..
'소리 내어 책읽기'에 쓰는 글과는 달리, 이 글들은 특정한 책의 감상이나 줄거리를 말하기 위함이 아닌 말 그대로 책과 연결되어 있는 내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두려고 한다. 때문에 뛰어난 작품성을 자랑하는 책이 아닐 수도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과 엮인 온갖 책이 등장할 것이다. 그래서 이 글들은 '소리 내어 책읽기'의 과정이 아니라, 다만 '스쳐가는 생각'을 잡아두려는 시도이다. "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은 문명의 초석이다. 문맹은 기형으로 취급된다. 육체적으로 기형인 사람들을 겨냥하던 조롱의 방향이 문맹인 사람들 쪽으로 점차 바뀌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문맹자가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조심스레 살아가려 한다면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눈이 나쁜 사람들..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돌고 도는 케케묵은 주제 중 하나는, 백인 남성과 교제하는 여성에 대한 비난이다. 쓰레기 같은 백인영어강사 문제야 제도적으로 당연히 해결해야할 일이니 논외로 두고, 이번엔 저 한국 여성에 대한 도를 넘은 비난을 좀 이야기 해보려 한다. 몇년전 처음 이런 주제가 부각되었을 때는, 무분별하게 유입된 자질 없는 영어강사에 대한 비판인가 싶었는데, 결국 '영어 사용하는 백인남자라면 다리를 벌려주는' 불특정 한국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하룻밤 상대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들이야, 으슥한 새벽 어느 클럽을 가도 남녀불문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저런 천박한 부류의 남자들은 '픽업아티스트'라는 명목으로 한국에도 이미 존재한다. 게다가 원나잇 후기나 동영상을 유출하는 행태 역시..
바나나 우유 하면 생각나는 빙그레의 둥근 용기. 손 안에 흐뭇하게 들어와 그립감마저 좋았던 이 제품은, 언젠가부터 '바나나맛 우유'라는 입에 딱 달라붙지 않는 이름으로 둔갑해 나를 슬프게 한다. 난 우유를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닌지라, 국민학교 시절 강제적으로 먹어야 했던 우유는 거의 동네 강아지들에게 줘버려 동네 개들이 나만 보면 반갑다고 졸졸 따라왔었고 그나마 좋아했던 초코우유도 매일 먹는 건 역시 무리였다. 하지만 엄마가 혼신의 힘을 다해 밀어주는 목욕재계의 시간이 끝난 뒤, 목욕탕 한 구석의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바나나 우유는 시원하고 달달한 기쁨이었다. 덕분에 항상 우유가 아닌 두유를 외치는 나이지만, 가끔은 저 빙그레 바나나 우유를 찾곤 한다. 바나나우유 하니 생각나는 기억 한 토막은, 어느 ..
스탠딩 에그. 사랑에 빠져 본 적 있나요. 화이트데이와 발렌타인데이. 연말 크리스마스 한달전 정도의 기간은 이른바 소개팅 시즌이다. 수많은 남녀가 특별한 그날을 나와 함께 나눌 누군가를 고대하며, 약속을 잡고 고민와 설렘 가득한 문자를 주고 받는다. '소개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은 바로 파스타이다. 고급스러운 한정식집이나 스테이크처럼 거창한 이미지거나 부담스러운 가격대도 아니고, 호불호가 크게 나뉘지 않는 무난한 맛을 자랑하며, 한국에 들어온 대부분의 서양 음식점들처럼 어느정도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을 기대할 수 있기에 파스타는 소개팅의 음식이다. 지인 중 한명이 계속 되는 소개팅에 진절머리를 치며, '이제 파스타도 지겹다'는 성토를 늘어놓았을만큼 파스타는 우리의 소개팅 문화 깊..
서울로의 쏠림 현상이 강한, 한국의 기형적인 대학구조에 따라 우리 과 역시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동기나 선후배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과 특성상, 정원이 그렇게 많지 않았으므로, 단과대 내에서 적어도 같은 학번인 동기들은 모두 얼굴을 알고 지냈을 정도였다. 때문에 우리 과의 분위기는 커다란 대학교라기 보다는 마치 중고등학교의 한 반의 느낌이 더 강했다. 과인원이 적다보니 전공수업도 많아야 2,3개의 반으로 개설되어서 수업을 들어가 보면 항상 아는 얼굴들이 웃으며 나를 반겨주어 인사를 하며 들어가거나 아예 시간표를 짤 때 친한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의논 끝에 함께 완성하곤 했다. 내 친구들 역시 자취하는 동기들이 몇명 있었는데, 이런저런 고달픔이 많은 자취생의 특성상 골목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마트..
글을 시작하기 전. 비올 때 즐겨듣는 노래.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좋아하시길 바라요 :) 음식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관용구가 있다면, 바로 그것은 '음식은 손맛'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만약 손맛으로 음식을 줄 세울 수 있다면 그 첫 번째 자리에는 '수제비'가 있을거라고 언제나 생각하곤 한다. 왜냐하면 수제비는 그 어떤 음식보다 손을 많이 사용할수록 맛이 있어지는, 시간과 끈기를 요구하는 반죽 만들기 과정이 필요한 음식이니까. 알고보니 내 첫사랑이었던 선배가 드라이브 겸 데려갔던 삼청동 한구석의 수제비도 소중한 기억이고, 아빠와의 낚시 여행에서 끓였던 수제비라면도 좋은 추억이지만 역시 가장 자주 먹었던 수제비는 비오는 날 엄마가 해주시던 그것이다. 그렇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
보통 자취생의 음식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건 라면이다. 그 다음 순위는 햇반정도가 될까. 요즘은 닭이나 사골 육수를 이용한 라면이나 다이어트라면 등 제법 고급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시 가장 맛있는건 기본의 매콤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이 어우러지는 그런 라면들이다. 요즘은 라면 가격도 많이 올라서 천원 남짓의 가격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라면은 소박하고 값싸며 손쉽게 한끼를 때울 수 있는 서민적인 음식이다. 동시에 귀차니즘에 찌든 이 땅의 수많은 자취생들에게 고칼로리를 선사하는 영원한 동반자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내 자취생활에서 라면은 그다지 기억에 남는 음식이 아니다. 평소에 밥이나 반찬이 떨어지는 경우도 거의 드문데다가 라면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아서, 라면은 어..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계속 아파트라는 성냥갑 집에서 살아왔지만, 나에겐 한옥과 관련된 각별한 추억들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전라도 어느 마을에 큼지막하게 자리한 친가 덕분이다. 너무 먼 탓에 자주 찾지는 못했지만 방학 때마다 난 친가에서 한참동안 머물곤 했다. 특별히 재미난 것이 있는 고장도 아니었고,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먹거리가 풍부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 곳을 너무나 사랑했다. 아기자기하고 작았던 동네 국민학교와 동그랗고 완만한 능선의 뒷산들 워낙 작은 고장의 토박이였던 친가탓에, 어느 골목의 구멍가게에 가도 '동백꽃집 손녀 맞지라우? 아따 참말로 지 아베랑 어쩜 이리 꼭 닮았능교' 라고 사탕 하나 더 쥐어주시던 할머니들. 친가는 그 옛날부터 마을에서 손꼽히는 부자로, 독립된..
어릴적 우리집의 저녁풍경은 언제나 비슷했다. 따땃하게 뎁혀진 방바닥에 배를 깔고 만화를 실컷 보거나 미미나 쥬쥬인형을 가지고 인형 놀이를 하는 느긋한 일상. 그러다가 현관문 밖으로 터벅터벅.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쏜살 같이 아이템플이나 구몬 등을 펼쳐놓고 숙제를 하는 척 연출하곤 했다. 엄마의 '어우 지지배 여우짓 하는거 봐' 하는 핀잔과 함께 초인종이 울리면, 곧 아빠가 들어오셨는데 내가 가만히 앉아서 숙제를 하고 있는 걸 보면 함지박 웃음을 지으시면서 '우리딸 이리 와 봐'를 외치셨다. 그 말 뒤에 이어지는 대사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아빠가 통닭 사왔다'였다. 이 '통닭'이라는 단어는 우리 식구가 모두 뿌듯해지던 마법의 단어였는데, 왜냐하면 이 날은 어김없이 아빠의 '월급 타온 ..
몇년 전 군입대를 앞둔 친구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난 평소에 친한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대신, 가볍게 식사를 잘 챙기라거나 무엇을 먹었는지 질문을 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도 아마 버릇처럼 며칠 뒤면 훈련소로 향할 그 친구에게, 입대 전날 어떤 음식을 먹을건지 가볍게 물어봤었다. 군대에 다시 가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몇몇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사형을 앞둔 죄수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는 것 같은-_-;; 그런 느낌이기도 했는데 과연 이 사람은 절박한 상황에서 어떤 맛을 가장 원할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평소에 집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라, 다른 머스마들이 으레 그렇듯이, 오랜만에 엄마가 해주는 진수성찬에 고기 반찬을 잔뜩 먹겠거니 하고 어느정도 미리 대답을 예상한 상태..
난 대학 1학년 때부터 자취를 시작해서, 졸업을 하고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쭉 독립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에야 혼자서 육첩 칠첩 반상을 냉큼 차려놓고 먹기도 하고, 이런저런 반찬들을 항상 끊이지 않게 해놓고 있지만 초기 자취 생활의 내 식탁은 한동안 꽤 좌충우돌의 격정기를 거쳐야만 했다. 지금까지 엄마가 매끼마다 반찬을 바꾸며 만들어 놓은 각양각색의 음식들만 야금야금 먹었던 평범한 여자애였던데다가. 이제 막 시작한 독립생활로 청소부터 시작해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한다는 부담감에 휘청거릴 때라 첫 반년간은 꽤 고생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상한 벌레가 나왔다고, 엄마에게 새벽에 전화해서 울기도 했으며 처음 살아있는 꽃게를 손질하려다가 움직이는 꽃게발에 혼자 놀라서 넘어지는 ..
요즘 계획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음식 하나, 그림 하나씩을 골라서 번갈아 가며 글을 쓰려고 한다. 사실 이렇게 레시피 없이 담담한 이야기가 실린 글들이 그리워 블로그들을 찾다가 없어서 결국은 내가 하게 된 것. 계속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 일인데 이제야 겨우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새로운 문을 열어본다. :)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구글 검색을 통해 가져왔다) 어릴 적 우리집의 일요일 아침 밥상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게장과 갈치국 등 각종 생선과 해산물로 이루어진 식탁. 어머니는 평일에 거의 집에서 식사를 못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항상 일요일 아침은 바다내음 물씬 풍기는 식단을 짜셨다. 하지만 문제는 어릴 적 나는 소머리국밥 냄새만 맡아도..
다이어리 쓰면서 정리하다가 내가 질색하게 되는 몇가지 상황을 깨달았다. 행복지수를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인간유형들. 내 지인 범주에 결코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일단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몇가지만 말해보자면. 첫번째는 문제상황을 회피,우유부단,돌아가기로 적당히 때우는 사람이다. 이러면 보통 일 저지르는 사람 따로, 수습하는 사람 따로라 주변 사람들만 맘 고생하고 본인은 뭐 어쩌라고? 나 원래 이런데?식. 이건 뭐..; 야. 니가 갓난애냐? 똥 싸는 사람 치우는 사람 따로 있게!! 라고 대놓고 말해주고 싶은데,싫은 소리 잘하는 성격도 아니고 내 인생도 아닌데 말해 뭐하냐 싶어서 눌러 참고 다시는 상종을 안한다. -_- 애나 어른이나 잘못했어도 일단 그걸 인정하고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행동이 책임..
UCC 광고에 이런 문구가 있다. “나는 나쁜 남자 감별법을 알려주는 UCC를 알아요”. 나쁜 남자(혹은 여자) 매뉴얼이 있어서, 그런 사람을 피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문제는 어떤 유형이 나쁜 남자인지 판단이 어렵고, 어차피 상처는 (상대방의 문제와 무관한 나의/사회의)해석이라는 데 있다. 고통과 저항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을 전복하는 감동의 명화 에는 주인공이 사랑한 네댓 명의 남자가 나오는데, 하나같이 최악이다. 폭력과 알코올은 기본. 다른 남자랑 자게 하고 돈벌어 오라며 성매매를 강요하고 여자 앞에서 자살하고…. 극장에서 나오면서 이 중 누가 제일 나쁜 남자일까? 생각해보았다. A를 떠올리는 데 몇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 남자는 지금 생각해도 열불이 나는데, 자기가 욕망하는 남자와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