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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신경숙

DidISay 2012. 1. 23. 03:17

나는 꽃들에게 내 아픔을 숨기고 싶네
인생의 괴로움을 알리고 싶지 않아
내 슬픔을 알게 되면 꽃들도 울 테니까...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그런데 바이올렛이라니 그게 뭐야?"

 "바이올렛? 제비꽃 아냐?"

 그 남자는 몸을 돌려 그녀 앞에 앉은 동행 중의 한 사람에게 말을 건다.

 "어이, 꽃박사. 이번 표지사진 설명기사도 자네가 썼지?"

 한 자리 건너 앉아 있는 일행 중의 한 사람이 고갤 끄덕인다. 그 남자는 그녀에게 이 친구는 꽃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오, 소개한다.

 "그래, 바이올렛에 대해서는 뭐라고 썼나?"

 "이것저것, 서양 사람들은 바이올렛을 '이오의 눈'이라고 부른다더군."

 "이오라니? 그게 뭐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가엾은 여인이지. 강의 신 이코나스의 딸이야. 최고신이자 천하의 바람둥이인 제우스가 그녀에게 반했다네. 어느 날 이오가 산책을 하고 있을 때 하늘을 먹구름으로 덮어버리고 이오를 덮친 거지. 그런데 제우스의 마누라인 헤라는 질투의 화신 아닌가. 남편의 동정을 늘 지켜보고 있는데 저기 지상에서 이상하게 먹구름이 이는 모습을 보고 가까이 다가간 거야. 제우스는 먹구름을 거두고서 헤라를 속이려고 이오를 흰 소로 만들어버렸어. 이 신화에서 가장 슬픈 대목은 흰 소로 변한 이오가 아버지를 만나는 대목이야. 아버지인 강이 이오를 못 알아봐. 어떻게 알아보겠나, 소로 변해버렸는데. 귀엽다고 등을 쓰다듬어주기만 하고 자기가 찾는 딸인 줄을 모르는 거야. 이오가 내가 당신이 찾는 딸이라고 말을 하면 할수록 이오의 목에선 소 울음소리만 나오는 거야. 흰 소가 된 이오는 발굽으로 땅에 글씨를 써서 겨우 자신이 이오임을 아버지에게 알려."

 "슬픈 이야기군. 그런데 이오라는 여인과 바이올렛은 무슨 상관이야?"

 "제우스가 그래도 자신이 사랑했던 이오가 잡초를 뜯어먹는 게 가여웠던지 이오의 눈동자를 본뜬 꽃을 이오의 주변에 만발하게 했어. 그게 흰 바이올렛이야. 이오의 눈동자라네. 가엾은 이오는 온갖 수난을 다 겪지. 이오니아 해라는 바다 이름도 그녀에게서 유래했다고 해. 암소로 변한 그녀가 건넌 바다라는 거지. 제우스가 헤라와 화해한 다음에야 그녀는 비로소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해."

 꽃박사라 불린 그의 동료는 계속해서 바이올렛에 얽힌 동서양의 이야기들을 주워섬긴다.

 "바이올렛의 보랏빛은 붉은 피가 말라붙어 바랜 색깔이야. 바이올렛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성모 마리아의 제단을 장식하기도 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바이올렛 그림자가 십자가에 드리워졌기 때문이래. 기독교 교회의 장례에 보라색 옷을 입는 이유, 미망인의 보랏빛 수정...... 모두 바이올렛에서 얻어온 거야. 이 꽃은 몹시 까다롭지. 햇빛을 너무 많이 봐도 시들어버리고, 물 줄 때도 잎사귀에 꽃에는 안 닿게 들고 뿌리에만 줘야 해. 그런데 재미있는 건 잎사귀가 뿌리를 만든다는 거야. 잎사귀를 따서 물 속에 담가놓으면 거기서 뿌리가 내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