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정체성-밀란 쿤데라 본문
남녀간의 연애와 사랑의 실체를 파헤친 소설. 장난으로 시작한 익명의 편지로 인해 연인들 사이에는 오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사랑한다는 감정이야말로 얼마나 자기중심적 도취인가. 사랑이 이럴진대 현대인들의 에고와 가치관을 널마나 견고할 수 있겠는가. 키레르케고르는 정체성의 상실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 강철수 (만화가)
한 시간 남짓 후 집으로 돌아온 장 마르크는 샹탈에게 부고장을 보여주었다.
「오늘 아침 우편함에 있더군. F가 죽었어」
샹탈은 보다 진지한 다른 편지가 자기 편지의 우스꽝스러움을 감싸준 것에 대해 거의 흡족함을 느꼈다. 그녀는 장 마르크를 끌어안고 밖으로 데리고 가 자신 앞에 앉혔다.
「아무튼 충격받았겠네요」
「아니, 충격받지 않는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어」
「아직도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어요?」
「다 용서했지.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야.
지난번 그를 더 이상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나서
내가 느꼈던 이상한 감정을 당신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지.
나는 그때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그런 내가 흡족하기까지 했어.
그런데 그의 죽음이 이런 감정을 전혀 바꿔놓지 못하는 거야」
「당신이 무서워요. 정말 당신은 무서운 사람이에요」
장 마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꼬냑 병과 술잔 두 개를 가지러 갔다.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지난번 문병 갔을 때 그는 추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지.
그는 내가 열여섯 살 적에 했었던 말을 상기시켜 주었어.
그 순간 나는 오늘날 사람들이 맺고 있는 우정의 유일한 의미를 깨달았어.
우정이란 기억력의 원활한 작용을 위해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것이야.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마도 흔히 말하듯 자아의 총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거야.
자아가 위축되지 않고 그 부피를 간직하기 위해서는
화분에 물을 주듯 추억에도 물을 주어야만 하며
이 물주기가 과거의 증인, 말하자면 친구들과 규칙적인 접촉을 요구하는 거야.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야. 우리의 기억인 셈이지.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란 우리가 자아를 비춰볼 수 있도록
그들이 이따금 거울의 윤을 내주는 것일 뿐이야.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 때 무슨 짓을 했건 알게 뭐야!
내 어린 시절부터, 아마도 유년기부터 내가 항상 갈구했던 것은 전혀 다른 것이야.
그것은 모든 다른 가치보다도 위에 놓인 우정이지.
진실과 친구 사이에서 나는 상상 친구를 택했노라고 즐겨 말했었어.
도발 삼아 말하곤 했지만 그것은 나의 진심이기도 했지.
지금은 그런 격언이 케케묵었음을 나도 알아.
파트로클레스의 친구인 아킬레스나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나
심지어 주인과의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주인의 진정한 친구였던 산초에게나 통할 말이지.
그러나 우리에겐 더 이상 통하지 않아.
내 비관주의가 너무도 심화되어 지금은 우정보다 진실을 택할거야.」
우정이란 기억력의 원활한 작용을 위해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것이야.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마도 흔히 말하듯 자아의 총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거야. 자아가 위축되지 않고 그 부피를 간직하기 위해서는 화분에 물을 주듯 추억에도 물을 주어야만 하며 이 물주기가 과거의 증인, 말하자면 친구들과 규칙적인 접촉을 요구하는 거야.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야. 우리의 기억인 셈이지.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란 우리가 자아를 비춰볼 수 있도록 그들이 이따금 거울의 윤을 내주는 것일 뿐야.
무슨 일이 있었지? 웬일이야?」
「아무 일도 없었어요」
「뭐라고? 아무 일도 없었다니? 당신이 몰라보게 달라졌잖아」
「잠을 설쳤어요.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그리고 아침 나절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어요」
「나쁜 일이라니? 왜?」
「그냥 그랬어요.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말해 봐」
「아무 일도 아니라니까요」
그는 계속 추궁을 했고 그녀는 마침내 털어놓았다.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곁에서 없어진다면.. 또는 아무 의미없는 내가 사랑하던 사람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어느 순간 변해 버린다면..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문득 문득 내가 알지 못했더 그 사람의 모습에 놀라고 그가 모르는 얼굴로 그를 실망 시키기도하다가 어느 순간 내가 저 사람을 사랑햇었나라는 생각이 든다면,,이런 생각을 하게하는 책이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자신이 바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찾으면서 착각하는 것이라고도 햇었던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미묘한 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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