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아담을 기다리며-마사 베크 본문
그 즈음에 하나에 꽂히면 모조리 파버리는 내 성향이 발동하여,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책들 모두 읽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 책도 내 독서 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이 책은 80년대 후반 하버드에서 엘리트로 살아남기 위해 힘쓰던 대학원생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부가 다운증후군인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교수, 의사, 친구들..모든 사람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는 것은 이 사회에 불필요한 생명을 내보내는 것이라며 반대한다. 하지만 이 부부는 결국 출산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집단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어리석었는지..그리고 비인간적인 부류였는지를 깨닫는 인식의 변화를 겪게 된다.
당시에 내게 장애아동이나 임신이나 낙태의 문제는 너무나 먼 세상의 이야기였고, 봉사활동을 통해서 보던 아이들도 내 일상의 한부분이긴 했지만 그것은 너무나 작은 조각이었을 뿐이었다. 때문에 저런 주제들은, 대학입시를 위한 토론이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을 때만 한번쯤 생각하던..말 그대로 진지하게 내 삶에서 살에 와닿으면서 아프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던 문제였다.
때문에 당시 책을 읽었을 때도, 대단하다와 존경한다.. 그리고 뒷배경에 존재하는 영적 체험에 대한 부분이 다소 당황스럽다..의 느낌은 있었지만. 이것이 내 삶에서 진지하게 와닿는다는 느낌은 없었던 것 같다. 내용에 대한 감동은 있었지만 삶에서의 성찰은 없다..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내 기억 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이 책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 다시 찾아본 영화 '혜화.동'과 펄 벅의 '자라지 않는 아이' 때문이다. 이제 조금은 더 나이가 든 내가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20살 때의 나와는 좀더 깊이 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담은 88년에 태어났다고 하니,이제 20대 중반에 접어들텐데 과연 어떻게 자랐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혹시라도 나에게 비슷한 결정을 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된다면, 나에게도 베개처럼 힘와 온기를 주는 동반자가 있다면 좋겠다. 후회하는 결정을 하지 않도록.
“그러니까 당신은 만일 이 아기가 정상이 아니면 중절시키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말했다.
존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었다.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내가 항상 당신과 같은 관점에서 사물을 볼 수 없다는 거 알아. 그리고 그래서 미안해. 그렇지만 내 생각엔 만일 아기가 기형이라든지 그런 것이라면 중절이 모두에게 고통을 면하게 하는 한 방법이야. 특히 그 아기에게 말이야. 그건 다리가 부러진 말을 쏘아죽이는 거나 같은 일이야." 존의 아버지는 양 치는 집안 출신이어서 존은 그런 비유를 잘 썼다.
“다리를 다친 말은 천천히 죽거든.” 존이 말했다. “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 그리고 달릴 수 없으니까 죽지 않는다고 해도 삶을 즐길 수 없어. 말은 달리기 위해서 살아. 달리는 게 말의 삶이야. 만일 아기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걱을 하지 못하도록 태어난다면, 아기의 고통을 연장시키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격렬한 감정은 지나간 것 같았다. 마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 기진맥진한 나는 껍질만 남은 것 같았다. 나는 오렌지 쥬스를 한모금 삼키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나는 나직한 소리로, 존에게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말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뭐지?” 말은 달리기 위해서 사는데, 사람은 뭘 하려고 사는 거야?“
나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고, 존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의자를 내쪽으로 움직여서 팔로 내 어깨를 감쌌다. “당신 몹시 지쳤어, 그렇지?”
나는 다시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가자.” 그는 내 머리르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신 너무 창백해 보여. 그 흡혈귀 간호사가 피를 얼마나 뽑은 거야?”
나는 간신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밤참 먹을 만큼이지.”
존은 미소를 짓고는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는 잠시 꼼짝 않고 있었다. 그리고는 “뭐라고?”라고 말했다.
나는 눈을 떴다. 존은 이마에 주름살을 만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아무 말도 안했어.” 내가 말했다.
그는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그럼 누가 한 거야? 누가 그 말을 했어?”
이제 내가 어리둥절해졌다. “누가 무슨 말을 했다는 거야?”
존은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우리 가까이에는 아무도 없었다.
“존, 괜찮아요?”
그는 가볍게 머리를 저었다. “난...그래, 난 괜찮아. 아마 시차 때문인가봐.”
나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직관으로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다. 인형 조종자들이 존에게 말을 한 것이었다. 나는 확신을 하였기 때문에 속으로 중얼거리지도 않았다.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왜 그랬는지 나는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그저 존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다시 눈을 감았다.
존은 다른 팔을 둘러서 나를 가슴에 안았다. 그는 그때까지 두터운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베개처럼 느껴졌다. 나는 옷 아래서 그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동안 나는 내 가슴속의 조바심을 놓아버리고, 그날 해야 할 일들도 잊고, 아주 안전하다는 느낌만을 느꼈다. 그러지 존이, 스스로 그런 줄도 모르면서 내 물음에 대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이거야 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짧고 덧없는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고립된 자신을 벗어나 손을 뻗쳐 서로에게서,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힘과 위안과 온기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이것이 인간이 하는 일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사는 것이다. 말이 달리기 위해 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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