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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 본문
진정한 위대함
20세기 미국 문학 시간에 단골로 읽히는 소설 중 학생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작품은 단연 F. 스코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이다. 주제가 무겁지 않고 영어 문체가 비교적 쉬운데다가, 무엇보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연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나는 학생들에게 제목 속에 있는 '위대한'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위대함'은 인간의 어떤 속성을 말하는가? 즉 그들이 생각하는 '위대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에 대해 학생들은 '자기를 희생하여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 '부·명예·권력에 개의치 않고 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사람' 등 많은 의견을 내놓는다. 그런 위대함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이에 학생들은 서슴없이 '물론'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작가 피츠제럴드가 생각하는 개츠비의 '위대함'은 무엇일까?
작품의 화자 닉은 중서부에서 뉴욕으로 와, 롱아일랜드 교외에 자그만한 집을 빌려 그곳에서 산다. 그의 이웃에는 거부(巨富)라는 것 외에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는 개츠비의 저택이 있고, 그곳에서는 주말마다 성대한 파티가 열린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개츠비는 군대 시절에 만났던 부잣집 딸 데이지와 결혼을 약속하나, 그가 떠나간 동안에 그녀는 톰 뷰캐넌이라는 재벌과 결혼한다. 개츠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책에 확실히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밀주업으로) 돈을 벌어 큰 부자가 되어, 그녀의 집 가까이에 저택을 사들이고는 주말마다 파티를 열고 언젠가 데이지가 와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꿈꾼다.
개츠비는 자신의 이웃인 닉이 데이지와 6촌 관계라는 걸 알고 닉에게 데이지와의 재회를 주선해 주도록 부탁한다. 5년 만에 데이지를 만난 개츠비는 그녀가 이제는 부자가 된 자신에게 돌아올 것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없다. 결혼 생활에 무료함을 느낀 데이지도 개츠비의 출현을 환영한다. 개츠비와 톰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데이지는 개츠비의 차를 운전하다가 톰의 정부(情婦)를 치어 죽이고 달아난다. 개츠비가 차를 몰았다고 생각한 그 여자의 남편은 개츠비를 찾아가 사살한다.
데이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남편과 여행을 떠난다. 성황을 이루었던 개츠비의 파티와 달리 그의 장례식에는 닉 외에 겨우 한 명의 손님만이 참석한다. 닉은 도덕성이 결여된 도시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다시 중서부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를 사랑한 개츠비의 삶은 결국 가엾고 허무한 것이었다. 그러나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 학생들이 생각하는 '위대한' 속성을 개츠비에게서 찾아볼 수는 없다. 그는 결국 돈 때문에 떠나간 사랑을 돈으로 찾겠다는 단세포적 발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불법축재자였으며, 이미 흘러간 과거를 되돌이킬 수 있다고 생각한 비현실적 몽상가였고, 사랑의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유아적 낭만주의가였을 뿐, 결코 '위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피츠제럴드는 책의 첫 부분에서 개츠비에게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갖다 붙인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그것은 바로 개츠비가 암담한 현실 속에서 "아무리 미미해도 삶 속의 희망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 "사랑에 실패해도 다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 즉 언제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낭만적 준비성', 그리고 "삶의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920년대 혼돈의 시대, 미래에 대한 이상을 찾는 '아메리칸 드림'이 순순함과 낭만을 잃어버리고 물질만능주의와 퇴폐주의로 타락해 가는 시대에 피츠제럴드는 개츠비의 꿈과 희망을 하나의 '위대함'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80여 년이 흘렀지만 변한 것은 없다. 아니, 변하기는커녕 이리저리 삶의 횡포에 채이고 휘둘리면서 우리는 더 이상 낭만을 얘기조차 하지 않는다. 또한 개츠비의 순진무구한 꿈에 '위대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사람은 이제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젊고 순수한 우리 학생들은 여전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위대함'을 꿈꾼다. '돈과 권력, 영웅심에 연연하지 않고 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그런 위대함을. 그리고 나는 그들의 그런 굳건한 믿음과 희망이야말로 진정 위대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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