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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디스트릭트9(2009)

DidISay 2012. 1. 24. 18:27


잘 정리해놓은 평이 있어서 대신 가져왔다.(씨네21.송경원)

 

 

<디스트릭트9>은 닐 블롬캠프 감독의 단편에서 출발한 오리지널 스토리와 세계관을 가지고 만든 영화다. 할리우드의 여타 SF대작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적은 3천만달러의 예산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정치적 알레고리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196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실제로 존재했던 백인전용거주지 디스트릭스6의 변주임이 분명한 제목과 외계인의 단골 방문지인 뉴욕이나 맨해튼이 아닌 요하네스버그라는 이질적인 장소에 표류한 외계인들을 통해 남아공에서 자행되었던 인종격리정책의 거울과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SF장르의 특성을 십분 살려 만들어진 대체역사의 시공간 속에서 변화한 것은 흑인과 백인에서 인간과 외계인으로 치환된 갈등의 주체뿐이다.

영화 전반에 모큐멘터리(가짜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차용한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도입부부터 등장하는 요하네스버그 시민들- 특히 과거 인종격리정책을 이미 겪은 흑인들- 이 외계인에 대한 혐오감 섞인 인터뷰를 날리는 것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여기에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는 남아공방송공사나 <로이터>의 실제 뉴스 화면, 그리고 핸드헬드로 촬영된 거친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생생함은 전형적인 극영화로는 전달하지 못할 현실감을 부여해 <디스트릭트9>이라는 가상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외계인의 유동체에 노출되어 점점 외계인으로 변해가는 비커스의 변이와 같이 영화는 창의적인 형식과 장르의 결합을 통해 시각적 쾌감과 참신한 설정, 정치적 함의까지 유기적으로 엮어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간다.

이 재기발랄한 SF영화를 이끌어가는 참신함의 원동력은 바로 외계인과 인간의 역전된 관계에 있다. <디스트릭트9>에서는 외계인에 대해 ‘왜’를 묻기보다 ‘어떻게’에 주목한다. 그들이 지구에 머무르게 된 까닭이나 떠나간 이후에 대해서는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그들이 지구에 머무르는 동안 벌어질 만한 문제에 대해 현실적으로 (혹은 우화적으로) 접근한다. 외계인은 ‘외계의 존재’라는 말 그대로 ‘우리’의 규칙에 속해 있지 않음에도 인간들은 이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외계인을 규칙을 위반하는 난폭하고 미개한 존재로 치부한 채 그들을 기만하고 생체실험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름이란 때로 대상의 본질을 왜곡하기도 하는데 외계인에게 비하의 의미로 이름 붙인 ‘프런’이라는 명칭은 우리와 그들을 구분 짓고 차별하는 인간의 폭력 행위에 던져준 면죄부에 다름 아니다. 필요에 따라 민족, 역사, 국가와 같은 ‘우리’라는 범주를 설정하는 자의적인 방식이야말로 그동안 인류의 역사에서 숱하게 자행되어왔던 배척과 학살의 역사이며, <디스트릭트9>의 참신함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괴물성을 인간이 아닌 존재를 통해 발현시킨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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