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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만나는 시간

칼날 같은 모성

DidISay 2012. 11. 1. 00:12

리움미술관에 가면 멀리서부터 압도되게 되는, 브루주아의 마망.

누구든 한번 보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엄마..라는 이름과 달리 위협적이고, 차갑고 딱딱한 모습.

온통 구부러지고 단단하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모성과는 멀어 보이는 새끼거미와 엄마거미.

 

그런데 오늘 이 글을 읽고,

사실 엄마거미는 껍질만 남게되는거였구나..싶었다.

 

 

윤석남님은 항상 작품으로만 뵈었었는데,

인터뷰글을 다 읽고 나니 참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어서 훈훈해졌다.

 

 

근황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어느덧 1025마리의 버림받은 개들도 모두 완성하셨고,

공간이 나올까 걱정하시던 전시회도 무사히 여신 것을 보고 내가 다 벅차오르던.

하긴 07년에 진행된 인터뷰니 벌써 시간이 꽤 지났구나.

 

글을 다 읽고,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세요..라고 마음 속 편지를 보냈다. 

 

 

 

 

 

루이스 브루주아(Louise Bourgeois), 마망(Maman, 엄마), 리움 미술관

 

 

 

"...예술은 자유를 지향하는 거야. 다른 어떤 '주의'가 아니라 나의 '이즘(-ism)'에 복속하는 예술을 하는 거야. 내 예술을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게 작품을 한정한다고도 보지 않아. 어떤 이름이든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결국 여성의 몸이고, 그걸 소통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하다가 도망갔어.(웃음)"

 

"어디로요?"

 

"미국으로 갔어. 그때까지 평면 작업을 계속했는데, 그게 단순히 재현의 수준에 머물러서도 안 되겠고 미학적인 쾌감과 이론적 근거도 있어야겠는데 그게 한꺼번에 나오기가 힘들더라고, 그때 루이스 브루주아 작품을 보게 된 거야. 1991년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Maman'이라는 작품이 설치가 됐어. 숨이 턱 막히더라니까. 난 그때까지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어. 철(鐵)거미였어. 그거 봤어?"

 

"아니요, 아직 못 봤는데요."

 

"아휴, 그 작품은 꼭 봐야 되는데...엄청나게 높은 미술관 천장에 딱닿게 거미가 설치되어 있었어. 옆에는 브루주아가 자기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거미가 어머니의 상징이라는 거야. 암놈 거미가 자기 등에 알을 품는데 부화한 새끼들이 어머니를 다 먹어치우니까 말간 껍질만 남는 거야. 페미니즘 미술하면 여성적인 감수성이나 이즘을 강조하기 쉽고, 여성성이라는 것도 부드러움, 아름다움이라는 한계에 갇히기 쉬운데  브루주아는 그걸 넘어서서 아예 거기서 해방된 것 같았어."

 

"특히 어떤 부분에서 그런 걸 느끼셨는지요?"

 

"철이라는 재료가 남성적이잖아? 그런데도 거대하고 단단한 철로 만든 거미가 내게는 강한 모성성으로 느껴지는거야. 아주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고, 거미 다리의 끝이 다 낫으로 되어 있었어, 시퍼런 날 말이야,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워? 모성성이 단순히 끝없이 주기만 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그런 게 아니라 칼날 같은 무기를 갖고 있는 거야. 난 그렇게 해석했어. 거기다가 몸뚱이는 맨홀로 만들었더라고, 뉴욕 같은데 가면 아주 큰 맨홀 있잖아, 그럴로 만든 거야. 오래 되서 마모된 맨홀을 위아래로 놓고, 수도관 파이프를 연결해 다리를 만들고, 발은 낫이야. 그 어마어마한 에너지! 모성이 갖고 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 남성성 여성성을 초월해 낡아 빠진 걸 다시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어낸 힘! 아름답더라. 더 기가 막힌 것은 내 생각에 140cm나 될까 말까 한 할머니가 영상에 나오는 거야, 이미 그때 70이 넘은 나이에 철거미를 만든 거야, 그 뒤로 그에 관한 책을 사서 보기 시작했어. 그 철거미에 대한 인상이 엄청나게 강렬했나봐. 그런 작품 하나만 남기고 죽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김지은, 예술가의 방 中 윤석남님의 인터뷰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