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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책 읽기

딸기밭-신경숙

DidISay 2012. 1. 23. 03:11

신경숙의 단편작품 모음집이다.

다른 작품들보다는 조금 쉽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금은 명랑하고 귀여운 느낌이었던 J이야기보다는 조금더 슬픈 그녀 특유만의 색이 더 잘 살아있는 것 같다.

모두 보석같은 이야기들..

 

1.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

'연신 산에..라고 대답하던 남편은 울고있었어요.딸아이를 잃고도 어디 하나 흐트러지지 않던 남편,오히려 모든 일상을 더 단정히 잘 꾸려나가던 남편이 단추가 두개나 풀린 구겨진 잠옷을 입고 입을 비틀며 울고있었어요.혼자서 죽은 딸아이를 산에 묻은 남자가,아무렇지도 않은 듯 승진시험을 보고 헤드헌터를 통해 연봉이 더 많은 곳으로 옮기던 남자가 종내엔 제 품에 와락 얼굴을 묻고 소리내어 울었어요.제 잠옷 앞자락이 흠씬 젖도록요,,,,이 눈물을 다 감추느라고 제가 산에 다니는 동안 이 남자는 그리 반듯하게 살았던 게지요

제사를 지내고 다름없는 표정으로 친구들을 만나고...그칠 줄 모르는 남편의 눈물을 바라보며 그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수행하기가 저처럼 아예 안하기보다 훨씬 힘들었겠구나 깨달았습니다.그것을 알게해주려고 방문객은 그 세찬 눈보라를 뚫고 찾아온 것이었어요'

 

2.딸기밭

...생각해보면 그 남자,누구도 거들떠볼 것같지 않았던

오히려 접근을 금한은 그 남자의 외모는 스물세살 처녀에게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처녀가 사랑했던 건 그 남자가 아니라 바로 그 안도감이진 않았을지.

 

3.그가 모르는 장소

자신의 꿈은 사랑하는 사람과 모든 일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상처도 함께하고 슬픔도 함께 하는 것이라고.

사랑이 늦게 온 것이 죄라고 하더군요

나를 만나기전에,승희를 낳기전에 만났으면 좋을 사람을

이제야 만난 거라구요.

그 사람하고는 무슨 일이든 함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장소는 그 사람이라고요...

 

4.작별인사

사랑이 다시 오면 이제는 그렇게 휘둘리지 않고 놀라지 않고 아프지 말아야지.깊은 한숨과 함께하는 일이란 걸 인정해야지

외로웠지만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도.

사랑은 허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틈에 물은 나를 덮치더니 내 사지를 휘감아

사납게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렸다.

피해볼 도리가 없었다.쿠르릉....

 

5.어떤여자

그녀와 나는 생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이 도시에서 혼자,그녀는 남도의 시골마을에서 아이 셋과 함께,내가 이 도시에서 빌딩에 걸린 희뿌연 달을 볼 때,그녀는 마당에 내려서서 나뭇가지 끝에 걸린 맑은 달을 볼 것이다.

내가 주말에 영화관에 가서 심야프로로 '식스센스'를 보고 있을 때면 그녀는 아마도 이제 24개월 된 아이의 가슴에 이불을 당겨주며

빰에다 입을 맞추고 있겠지.

 

6.그는 언제 오는가

'존재하는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자신의 죽음을 다른 존재에게 알리고 싶어한다.단 한사람에게라도,어쩌면 단 한사람에게만..'

 

'세계는 여기저기 틈이 벌어져 있고 그 벌어진  틈으로 버스가 추락하기도 하고 잉태된 아이가 태어나기도 사산되기도 한다.그래도 시간은 흘러가고 아름다운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다.'

 

동생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감정은

세계가 너무 무질서하다는 것이었다.

어디서부턴가 갑자기 생이 힝클어져버렸고.

이제 그걸 돌이킬 수가 없어서 어디서도 이제 내가 살아가야 하는 가치를 찾아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