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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1964)

DidISay 2012. 6. 2. 15:09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큐브릭의 영화 중 가장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꽤 직설적인 비틀기를 사용한데다가 정극연기라 더 웃긴 대사들 때문에,
오래된 영화지만 지루한 느낌 없이 재밌게 봤다.

정신나간 리퍼 장군에 의해 잘못 내려진 소련 핵폭탄 투하 명령,
전쟁상황실에서의 긴박한 대화, 미소간의 첨예한 갈등이 주된 내용인데도
분위기는 깨알 같은 언어유희와 풍자가 난무한다.

 


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은 상호확증파괴 전략이다.
상호확증파괴는 적의 핵공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종말병기가 작동되는게 하면,
파멸을 막기 위해 서로가 전쟁을 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핵의 전쟁억지력을 주장하는 전략인데 실제로 미소냉전시대에 채택된 바가 있다.


이 작품은 (종말병기의 오작동이나 어떤 정신병자에 의한 종말병기 작동에 대한)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된' 기괴한 사랑(스트레인지러브)을 그린다.
-이 영화의 부제는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이 영화에서는 하나 같이 제정신인 사람이 없는데,
그 인물들이 국가의 주역이랍시고 모여 전쟁이나 핵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코미디 프로의 시사개그를 보는 느낌-_-
 


폭격을 명령한 리퍼 장군의 관사 앞에 써있는 '평화는 우리 손으로-_-;'

리퍼장군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미국의 고귀한 체액을 소련이 오염시킬까봐..;;
물에 불소를 타서 오염시킨다고 믿고 있다(..)

'침공 기미만 있으면 러시아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에 핵으로 날려야한다'고
주장했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을 패러디 한 인물이다.
실제로 이 역할을 연기한 배우는 우파 공개전향 및 좌익고발로 유명하다.

옆에 맨드레이크는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상관의 명령이니 따르고 본다;
계속 명령 취소하자고 옆에서 살살 달래는데 불쌍함;;

이후에 맨드레이크의 미대통령과의 통화 시도 장면은 정말 빵터진다 ㅎ

핵폭탄을 투하하라는 명령에도, 결과에 대한 별다른 생각 없이
승진 생각으로 기뻐하고 문서에 적힌 메뉴얼을 그대로 따르는 병사들.
야한 잡지를 보거나 쿠키를 즐기는 등 긴장감은 제로.



이 영화는 공중급유 시퀀스부터 시작되는 은근한 섹드립과
남성우월적인 인물들에 의해 주도되는 마초적인 분위기로 채워져있다. 

영화 전체에서 여자가 등장하는 건 위의 딱 2명 뿐이고,
(실제로는 카우보이지의 여자와 비서가 동일 배우인 트레이시 리드) 
그나마도 몇분 되지 않는 보조적인 역할이다.
그런데 영화 상에서 가장 실익 잘 챙기는 사람도 저 여자;;

의도적으로 흑백 필름을 이용한데다가,
4:3 화면비율 때문에 오래된 tv코미디 같은 느낌을 준다.
40주년 dvd 때 화면비를 16:9로 고쳤다가 큐브릭 모욕죄로 곤욕을 치뤘다고;


첫번째 컷에서 우유부단한 미대통령과 의뭉스러운 소련대사.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불러놓고 계속 탁상공론만 하는 중 -_-;;

미국측은 소련을 공격해야한다는 강경파로 혼란스럽고
소련측은 전쟁상황실에서 정보를 빼내기에 바쁘다.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는 헨리 키신저, 에드워드 텔러, 폰 브라운을 모델로 했다.
독일에서 귀화했으나 총통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하일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팔동작을 반복한다 -_-;
(폰 노이만을 패러디 했다는 의견도 있다)

막판에 자신이 휠체어에서 벗어나 두 발로 서게된 것을 기뻐한다.
핵폭탄을 개발해 놓고, 인류 파멸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영화에서 피터 셀러스는 개런티가 너무 비싸다고;;;
스트레인지러브 박사, 맨드레이크 대위, 머킨 머플리 미대통령까지
총 3가지 역을 소화하게 했는데, 신기하게도 이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국가의 운명이나 전쟁여부가 합리적인 개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실제로는 탁상공론과 눈치보기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을 계속 보여준다.

영화 상에서 소련이 가지고 있다는 '운명의 날 장치 격차'나
'수직 갱도 격차'를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싸우는 부분은
게임이론과 케네디의 미사일 격차를 까고 있다 .

우유부단한 미국대통령과 주색잡기에 능한 소련 서기장의 대비가 인상적.

 

다혈질에 마초근성 쩌는 애국자 벅 터지슨 장군.

하루종일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미국우월론을 설파하고
빨갱이를 때려잡자고 외침(..) 덕분에 대통령은 계속 우왕좌왕;;

핵전쟁 발발 후 지하벙커로 피신할 대상을 논의할 때는
무려 여성 대 남성의 비율을 10:1로 하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다들 좋아하면서 찬성;;
핵 대피시설이 아니라 하렘을 만들고 싶은건가(...)

그런데 실상은 저 와중에도 비서겸 정부의 비위를 맞추는데 쩔쩔 매는;;



소련대사와 주먹다짐을 벌여서 미 대통령의 명대사를 이끌어 낸다.

여러분, 여기서는 싸워선 안되오. 여긴 전쟁 상황실이란 말이오!
(Gentlemen. You can't fight in here. This is the War Room!)

 

 핵폭탄 'Hi There' 과 'Dear John' 
원래는 'Dear John' 이 아니라  'Lolita'였는데
큐브릭의 전작과 이름이 같아서 변경되었다고 한다.

카우보이 기질이 충만한 기장에 의해 결국 떨어지고야 마는 핵폭탄.

안열리던 문을 기어이 고치겠다고 고군분투해 관객의 응원을 이끌어 낸다(...)
문이 열려 우리 모두 함께 기뻐하는-_-; 순간 핵폭탄과 함께 모든 것이 바이바이.
무려 '요술공주 밍키'에서도 패러디 될만큼 사람이 올라탄 폭탄은 서스펜스 만점!


 

 

결국 소련의 핵폭탄들은 터져버리고 We'll Meet Again의 나른한 멜로디가
빈정거리듯이 흘러나오면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