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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만나는 시간

충고도 비판도 조심히.

DidISay 2012. 7. 7. 01:33

 

디에고 벨라스케스, 실 잣는 사람들,1657

 

 

어릴적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거미와 관련된 이야기 한토막을 접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로마 시대의 작가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Metamorphoses'에 등장하는,
아라크네에 관한 고전 신화가 오늘 풀어나가려고 하는 이야기의 모티프이다.

 

 

그림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학부생 시절 마지막 있었던 발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는 과 특성상 거의 매 수업마다 학생들의 발표가 진행되었고, 절대다수가 여학생이었기 때문에 다들 경쟁심도 있어서
발표는 깔끔하고 인상적인 ppt부터 몇차례의 사전연습까지, 꽤 정성을 다해 준비하곤 했었다.
4학년쯤 되면 수없이 반복된 발표에 다들 능숙해져서, 어지간 해서는 형편없는 발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가 들었던 수업은 희곡관련 전공수업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수강생이 적어 가족 같은 분위기의 수업이었다.
게다가 졸업생들로만 구성되어서, 다들 졸업 직전의 애틋한 마음으로 수업을  듣고 발표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발표.
하지만 이 발표는 좀 불안한 점이 많았는데, 좀 까불거리는 성향의 남자 두분의 발표였던데다가
평소에도 지각을 하거나 전날 과음을 한 것이 분명한 붉은 낯빛으로 꾸벅꾸벅 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 두 사람은 우리에게 예전부터 요주의 인물이자, 관심사병이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발표는...마치 1학년의 발표를 듣는 듯 했다.
내용도 너무 성의가 없었고, 아무리 좋게 쳐줘도 4학년 졸업반의 발표라고는 말할 수 없을정도라
우리 모두는 점점 표정이 굳어갔다.

그리고 딱딱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20여분의 발표 뒤, 질문 시간이 되자 우리는 미친듯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제대로 대답이 이루어지지 않자 날센 비난도 함께 섞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비난이 계속되자, 발표한 두 남학생 역시 흥분한 기색으로 이를 맞받아치기 시작해,
말다툼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묵직한 침묵과 긴장이 흐르며 발표는 끝이 났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흘러, 교수님이 강단에 다시 올라오셨는데
우리는 교수님이 발표자의 나태함을 엄하게 혼내실거라 생각했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은 뜻밖이었다.

 

교수님의 말을 요약하자면 '아무리 좋은 충고라도, 그것을 듣는 사람은 일정부분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솔직함이라는 이유로,  충고가 아닌 비난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 이유는 비난은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할 뿐만 아니라, 행동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무의미한 울림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진정 그 사람의 행동이 변화하길 바란다면, 날선 비난이 아닌 부드러운 말로 상대방의 마음 깊이 파고들어가야 한다'였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자면, 리디아의 아라크네는 베 짜는 솜씨가 아테나보다도 훨씬 낫다고 뽐내곤 했다.
이 소문이 불쾌했던 아테나는, 노파로 변신해 신을 욕보이지 말라고 충고했으나 그녀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아테나와 베 짜기 시합을 열어 경쟁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과정에서 아테나는 그녀가 자신 보다 훨씬 베를 잘 짜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만만 했던 아라크네는 자신의 탁월한 베짜는 기술을, 아테나가 깨닫게 하는 것을 넘어 큰 실수를 저질렀다.
바로 그녀가 짠 테피스트리의 주제가 신을 모욕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림의 후경에 보이듯 그녀는 아테나의 아버지인 제우스가 님프인 유로파를 납치하기 위해 황소로 변신한 이야기를 묘사했고,
자존심도 상한데다가 그림 내용에 크게 진노한 아테나는 그녀를 거미로 변신시켰다.

 

 

종강 시간에 들었던 교수님의 저 말씀은 
잘못한 누군가에게 응징을 했다는 뿌듯함과 당당함에
꼿꼿히 강의실에 앉아있었던 우리 모두를 고개 숙이며 부끄럽게 했었다.

그리고 나는 졸업한 뒤에도 가끔 저 장면을 떠올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어른이 되었지만
충고를 하는 것도,  누군가의 충고를 고까운 마음 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너무나 서툴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곤 했으니까.

 

 

우리는 누군가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할 때 스스로의 생각이 언제나 옳다는 확신에 차
상대방을 옳은 길로 이끌겠다는 정의감에, 마치 가르치듯이 이야기 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옳을 수는 없으며, 
설사 옳은 말일지라도 일방적인 가르침은, 누군가에게 충고가 아닌 그저 폭력이나 강압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아라크네가 아테나 보다 베를 잘 짠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은 아테나에게 미안함이나 겸허함을 느끼게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분노를 불렀을 뿐.

또한 아테나는 그녀를 거미로 만들어 버렸지만.
아라크네는 결코 자신의 고집과 교만함을 반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을 울리는 부드러운 한마디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많은 인내심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충고와 비판은 그래서 언제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