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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만나는 시간

세상 오만것들의 어우러짐

DidISay 2012. 7. 4. 21:18

 

Romare Bearden. Patchwork Quilt. 1970.

 

비어든의 패치워크 퀼트는 흑인여성의 느긋한 낮잠자는 모습과, 갖가지 천으로 이어붙인 퀼트천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천들은 아주 낡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크기도 문양도 제각각이지만
버려지지 않고 새롭게 활용되어 고상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가장 화가 날 때는 어떤 부당한 일을 저지른 누군가가 '그럴만해서'라는 변명을 내세울 때이다.
우습게도 이 변명은 항상 강자가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했을 때 떳떳하게 덧붙여지곤 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숙제를 하지 못했을 때  '그럴만 해서'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한다.
또한 수업 시간에 늦었거나 심지어 컨닝을 했을 때도 '그럴만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그럴만해서'라는 말을 덧붙일 때는 오직 폭력을 행사했을 때 뿐이다.

이 못되먹은 버릇은 분명 어른들을 통해 체득한 것임이 틀림 없는데,
온 몸에 멍이 시퍼렇게 든 아이를 보고 놀라 어쩌다 아이가 그렇게 되었는지 물으면
그 학생의 아버지는 '맞을만 해서' 때렸다고 떳떳하게 말을 하며,
본인의 아이가 5명의 친구와 함께 뒷골목에서 한명의 아이를 팼을 때도
우리 아이가 '그럴만 해서' 팼을 게 분명하다며 뒷목을 빳빳하게 세우시고 말하곤 한다.

심지어 처음 남자친구의 어머니를 만난 자리에서 대차게 빰을 맞고온 내 지인도
그 어머니를 통해 가난한 주제에, 그렇게 헤어지라고 해도 말을 안들으니
예의 그 '맞아도 싸다'라는 말을 듣고 왔다고 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을 때 난 굉장히 피곤해 진다.
도대체 세상에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강제적으로 때리고 개인적으로 징벌할 만한
그럴만한 이유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왜 아이들은 숙제를 해오지 못했을 때는 너무 어렵다거나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을 내세우는데,
감정적이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했을 경우엔 그 모든 이유들이 '그럴만하다'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비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실  단순히 한 아이가 어눌하고 가난하다고 해서. 그냥 '나대는 것'이 꼴보기가 싫어서, 내 말을 안들어서
떄리고 왕따를 시키고 괴롭히는 것이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단순히 저런 이유로 누군가를 괴롭힐 수 있다면
그건 상대방을 인간이 아닌 '노예'나 '물건'으로 생각할 때이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속물이나 못되먹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내 아이가 말을 안듣는데 설득하기가 귀찮아서 그냥 손쉽게 때린다' 라고 말하지 않고 '맞을만했다'라고 표현하며,
'가난하고 냄새나는 애가 내 옆에 있는게 싫어서'라고 말하지 못하고 '맞아도 싸다'라고 표현한다.

 

이런 폭력성은 비단 약자에게만 표출되는 것이 아닌 나보다 '잘난'사람에게도 화살을 향하곤 하는데,
1등을 제거한 2등을 소재로 하는 공포물처럼 죽이진 못하더라도,
주관이 뚜렷하고 잘난 아이에 대한 시기와 질투 역시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꽤 폭력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

 

이런 역겨운 폭력의 논리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난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단순히 나에게 꼴보기 싫다고 해서 누군가를 강압적인 방법으로 제거해나간다면
그 사회는 불행해질거라는 것이다.
당장 눈엣가시 같던 상대방이 제거되고 나면, 언젠가는 다시 경쟁이 생기고 질투와 미움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얼마전 사촌동생이 가족의 생일선물을 고르러가는 길에 함께 동행했었다.
우리집은 할머니와 삼촌, 외숙모의 생일이 모두 비슷해 생일파티를 보통 한번에 같이 하곤 한다.

그래서 으레 생일 선물도 비슷한걸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이 어린아이는 3명의 것을 모두 각자 다른 것으로 사길 원했다.

심지어 같은 것을 사면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는데도,
꽃무늬 지갑에서 꾸깃한 돈을 세어가면서 열심히 자신의 맘에 드는 3가지를 찾아냈다.

 

옆에서 엄마는 빨리 고르라며 재촉하셨지만, 난 그 사고방식이 꽤 마음에 들어 대견한 느낌이 들었다.
이 어린 아이도 이 3명의 가족을 모두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구나 싶어서.
각각 다른 세명의 특성을 조금이나마 파악하고 인정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많은 부분, 사람들의 개성이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에 야박하다.
대학이나 직업, 피부색 심지어 지역과 같은 외형적인 규정으로
‘저 사람은 이렇겠거니.’혹은 ‘이 사람은 이래야만 한다’라는 전형성을 강요하며 그 잣대로 평가한다.
심지어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이  별자리나 혈액형을 운운하면서
'너는 이런 애지?' 라고 어설프게 평을 내리는 경우도 흔하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혈연이나 국가로 판단하는, 잣대 역시  이중적인 시선을 띈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국적을 가지게 된 피부색 까만 이에 대해서는 '우리'로 인정하지 못하면서,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남'인 성공한 사람에 대해서는 마치 '우리'인양 한다.

사람들은 다들 똑같지만 다들 또한 그만큼 특별하다.
한 사람의 깊이를 세밀하게 분리하는 세심함이 없다면 그때 우리는 폭력적이 된다.
뭐 하나 수틀리면 내 편 너 편으로 갈라서 소통을 봉쇄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버려야할 이불단이나 옷깃에서 떨어져나간 천들이 하나의 아름다운 이불보로 태어나는 퀼트처럼
이 사회에서 낙오된 누군가도 그 특별함을 찾아나갈 수 있는 사회였으면 한다.

 

백석의 시에서 헌신짝과 소똥도, 주인과 더부살이 아이도 모두 한 자리에서 따뜻한 모닥불을 쬐었듯이
우리는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하는 나약한 존재들이니까.

 

 

새끼 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모닥불, 백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