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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책 읽기

나의 서양미술 순례-서경식

DidISay 2012. 12. 5. 02:47

 

 

내가 그림 감상을 즐기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예쁜 드레스에 굽실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공주들을

색색의 연필로 칠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아니면 온갖 세상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달리의 그림을 처음 보고

괜시리 막연한 끌림을 느꼈던 때부터였을까?..

 

 

정확한 시점과 결정적인 계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이전부터 도서관에 가면 미술쪽 서가에 가서 예쁜 그림을 뒤적이곤 했고

멋진 이미지의 CF컷이나 사진들을 보는 것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시간과 금전적인 여유가 조금더 많아졌을 때.

굵직한 전시회들은 빼먹지 않고 되도록 모두 다녀오려고 애썼고

자연스럽게 그림을 담은 책들도 간간히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흔히 '그림 읽어주는 여자'류의 감성적인 예쁜 에세이라거나

미술전문가들이 쓴 그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단 이 책은 그 둘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세상의 모든 것은 아는만큼 보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책은 아는만큼이 아니라.

작가가 보고 싶은 것을. 아는 것을.

보고 있는 미술책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사람은 즐거울 때도 슬플 때도 있는데, 그 각각의 경험을 통해 느낀 점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결정하고, 공감대를 느끼는 지점을 만든다.

 

작가의 경우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대에 휘말리면서 겪게된 불행한 가정사가

이 책을 만드는 시선을 창조해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 책을 통해, 힘든 시기를 살아간 한 지식인의 눈을 잠시 빌려

유럽의 풍경과 미술품들을 감상해볼 수 있다. 그 점이 이 책의 독보적인 특징이다.

 

 

 

 

책을 읽다보면, 회색빛 이방인의 눈길.

방랑자의 발밑에 깔려 있는 모래의 꺼끌거리는 감촉이 계속해서 느껴진다.

작가는 그것을 굳이 감추려 하지도. 그렇다고 과시하지도 않은 채

모든 사물에서. 모든 풍경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나고 있다.

 

이 책은 91년에 처음 출간되었는데,

지은이 서경식 씨는 51년 교토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이다.

일제강점기에 가족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왔던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으로 인해서 모든 가족들과 헤어진 채 홀로 일본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대에서 이 슬픈 역사의 되물림이 끊어지나 했으나,

한국에서 유학 중인 두 형이 느닷없이 간첩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까지 받게 되면서 악몽은 재현되었다.

 

그의 부모님은 현해탄을 오가며 옥바라지를 하던 중

결국 두 형이 자유롭게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미술엔 별 관심이 없었던 작가가 33세에 처음 외국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마치 역사를 관통하는 프리즘처럼,

모든 풍경과 조각과 그림들이 재해석된 채 흘러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뼈아픈 생각들의 조각난 파편들이다.

 

 

  꿈을 꾸면서 이건 꿈이다, 하고 깨닫는 일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그 꿈은 꿈이라고 깨달은 뒤에도 꿈틀꿈틀 굴곡을 지으며 한도 없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기억나는 최초의 등장인물은 소학교 시절에 동급생이었던 O군인데, 실상은 그도 내 꿈속에 등장한 순서로 따진다면 몇십 몇백번째의 인물이었다. O군은 신장병 때문에 한겨울에 죽었는데 임종머리에서 수박이 먹고 싶다고 졸라대어 가족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한다. O군 다음은 U양이었다. 그녀도 소학교 동급생인데 결핵으로 오래 학교를 쉬었다. 제2 무로또 태풍 때, 그녀의 아버지는 깨진 유리조각에 찔린 것이 원인이 되어 파상품으로 죽어버렸다. 그 다음은 F군, 그는 같은 동네의 구질구질한 골목 깊숙한 곳에서 안마사인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F군은 약간 발육지진아여서 살결이 희고 얌전했으나, 웃을 때 코가 비틀거리는 것 같은 게 보기 싫어 종종 놀려주곤 했었다. 그 싫었던 기분까지가 꿈속에 생생히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에피쏘드가 이어지며 꿈은 한 없이 깨지 않는다. 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나 기억이 아스푸레한 사람이나 친했던 사람이나 소원했던 사람이나, 내가 오늘날까지의 인생살이에서 마주쳤던 하고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연쇄적으로 나타나 끝이 없다. 과거의 모든 경험을 극히 미세한 부분까지 극명하게 드러내어 억지로 인생을 두 번 살게 되는 느낌이다.

 

  O군으로부터 세어서 몇십명째일까, 감옥에 있는 두 형들이, 하나는 허풍스러운 억지웃음을 띄고 또 하나는 우울하게 찌푸린 얼굴로 나타났다. 코가 시뻘게가지고 배꼽을 긁고 있는 어머니, 하얗게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 어렸을 때의 누이동생도 나타났다. 그러고도 몇사람이 더 지나간 뒤에야 마침내 아버지가 나타났다. 그래서 나아 아버지는 심하게 말다툼을 한 것이다. 대체 무엇 때문이었는지 기억이 없ㄷ. 아무튼 아버지는 몹시 나를 꾸짖었다. 때릴 듯이 주먹을 치켜들고 이빨을 드러내고 눈에 핏발을 세워, 평탄치 못했던 인생에 대한 분노를 한껏 뭉쳐서, 아버지는 고함을 질렀다.

 

  무엇이 몸속에서 파열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도 힘껏 고함을 쳤다. 그리하여 내 자신의 미친 듯한 잠꼬대에 놀라서 나는 비로소 긴 꿈에 깨어난 것이다. 새벽 두시가 지나 있었던가. 눈꼬리를 흘러내린 눈물이 귓구멍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이 작품은 미술사를 배운다거나, 가치 있는 명화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전달해주진 않는다.

많은 작품들이 실려 있지만 그 기준은 작품 자체의 가치라기 보다는

그림이 얼마나 작가의 공감대를 얻고 그의 마음에 잔상을 남겼는지에 있다.

 

식민현실과 해방. 6.25와 분단. 4.19와 5.16을 거쳐

5.18까지 이어지는 어두운 터널의 역사.

 

이 숫자들만 봐도 온갖 핏빛과 겨울의 눈보라가 떠오르지만

우리가 느끼는 이 암담함은 오직 역사책이나 단편적인 문학작품을 통해 학습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더이상 게르니카를 보면서 광주학살을 떠올리지 못하며,

십자가에 매달린 상을 보면서 남산으로 끌려가 고문 받는 자신들의 가족을 연상하지 않는다.

우린 해외에 갔을 때, 연일 보도되는 학생들의 데모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고,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복제품을 들여와도, 단속이나 말썽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다. 

 

 

때문에 글을 읽는 내내, 아 이 시대를 거친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

이 풍경이 이렇게 다가올 수도 있구나 싶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저렇게 암울한 꿈이라니...

단순한 '미술여행'이 아니라 '나의' 서양미술 '순례'라는 제목이

글을 읽고 나면 너무나 적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

 

 

어릴 적에 넘어져 무릎이 까지는 일이 잦았는데,

여러차례 같은 부위를 다쳐서 피가 나다 못해 짓무를 지경이 되면

꼭 그 부분을 한번씩 꾹꾹 눌러보곤 했다.

 

아플걸 알면서도, 괜시리.

어떤 느낌인지. 어느 부분인지 내 눈과 피부로 확인하겠다는듯.

 

 

 

 

거룩하고 평화로운 신이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의 예수.

 

그는 무슨 연유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릴만큼

깊은 상처를 더 크게 벌리고 있는 것일까.

 

성경에는 도마가 예수를 믿을 수 없어하자,

이를 증명하기 위해 상처를 찔러 보라고 하는 장면이라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표정이 초탈하다 못해 너무나 고요하다.

고통이 섞여있지만 전체적으로 씁쓸한 인상.

 

 

작가의 말처럼 손가락 두세개를 불쑥 넣고 싶어지는

깊고 어두운 상처.

 

아픔을 참기 위해 인상을 살짝 쓰고, 몸을 비틀고 있지만

그럼에도 두손을 써서 힘껏 상처를 벌리고 있는 예수,

그는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덧) 일본에서 계속 생활한 작가기 때문에, 일어로 쓴 것을 한국어로 다시 번역해 놨는데

그렇게 때문인지 고어투 표현이나 한자가 꽤 많이 등장한다.

 

이것까진 문체 자체의 특징이라 생각하고 그럭저럭 참을만 했는데,

계속 거슬렸던 결정적인 부분은 외래어를 계속 된소리로 표기한 것.

 

예를 들면 미켈란젤로를 미껠란젤로로, 프라도 미술관은 쁘라도 미술관이라고 써놔서

읽는 내내 너무 거슬려서 집중하는데 방해가 될 지경이었다. -_-;;;

2002년에 나온 개정판을 샀는데, 왜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수정하지 않고 그냥 놔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