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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책 읽기

북극여행자-최명애

DidISay 2012. 12. 8. 09:35

작년과 올해 가장 많이 읽었던 테마는 극지방과 관련된 것들.

유독 더웠던 올 열대야엔 그 지독한 혹염을 잊으려는 생각으로.

눈보라가 부는 겨울밤엔 온몸에 이불을 칭칭 감고.

그렇게 밤을 새하얗게 밝히며 세상 끝의 세계를 방황하곤 했다.

 

어릴적 위인전에 봤던 위대한 탐험가들을 활자로나마 좇겠다는 의지였는지,

할퀴어진 마음을 더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곳으로 내몰아 바닥을 쳐보려는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꽤 많은 극지방과 관련된 사진집들과 여행기들. 온갖 기록물들을 읽고 또 읽고를 반복했다.

눈의 여왕에게 홀려버린 작은 아이처럼.

 

 

때로는 황량함에 신발 속 발가락까지 쓸쓸해질지라도

북극의 땅에 발을 딛고 나는 마냥 걷고 싶었다.

 

 

 

 

 

이 책은 경향신문의 최명애 기자& 한겨레의 남종영 기자 부부의 북극여행을 기록한 책이다.

글과 사진은 최명애 기자의 작품이고, 남종영 기자는 책에서 북극곰이라는 애칭으로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곰과 같은 남자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어쩐지 친근감이 들곤 했다 ㅎ

 

보통 기행문의 3요소는 여정,견문,감상이라고 하지만,

이를 골고루 모두 담기는 어렵기에 여행기를 기록한 책들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여행을 통해 얻은 생각이나 깨달음에 치중되어 있는 '감상문'

실용적인 숙박이나 레스토랑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안내문'

 

 

이 책에서 실용적인 정보는 부록처럼 실려있는 얇은 부분이 거의 유일하며,

대부분의 글들이 최명애 기자의 개인적인 감상이나 생각들로 꽉 차여져 있다.

진정한 감상문에 가깝다고 해야할까.

 

스톡홀름, 오슬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앵커리지, 시시마레프, 페어뱅크스 등.

주로 다큐멘터리나 책을 통해서나 접하던 차가운 지역을

실제로 발을 디뎌 여행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 하며

침대에 기대 따뜻한 슬랭킷에 몸을 둘둘 감싸고 웅크려 앉아 책을 읽어 내려갔다.

 

눈 쌓이는 소리가 창문을 스치는 고독한 겨울밤.

오늘 내 마음은 북위 66.5도에서 출발했다.

 

 

  어째든 이 섬 어느 곳이든 북극선이 지나가는 건 맞겠지. 눈발을 뚫고 간신히 북극선 인증샷을 찍고돌아오는데, 촉새 같은 얄팍한 새들이 꽥꽥꽥 하면서 머리를 쪼아댔다. 스발바르에서 봤던 북극제비갈매기들이다. 헬멧을 쓰고 올 걸. 추워서 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여기는, 그러니까, 북극이었다.

 

  카페도 기념품 가게도 모두 문 닫았다. 유일하게 문을 연 건, 섬에 하나밖에 없는 슈퍼마켓이었다. 우리의 여행이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할 일이 없었다. 한 시간 동안 슈퍼마켓에서 서성대다 초콜릿을 하나 사서 배에 탔다. 우리는 그냥 북극선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북극선이 거기 있었으므로, 하지만 북극선이 계속 그곳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계속 북극선을 따라 여행할 것이다. 그때까지 북극곰도 북극제비갈매기도 물범도 부디 무사하기를 빈다.

 

 

 

어쩌다보니 북극을 간 것이 아니라

어릴적부터 북극을 좋아했고, 신혼여행지로 극지방을 선택한 부부이기에

이 지역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글 곳곳에서 비집고 새어 나온다.

 

게다가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한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글이 전체적으로 매끄럽고 깔끔한 편이라 가독성이 좋았고

이 지역과 관련된 책이나 음악이 중간중간에 계속 인용되어 있어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몇차례나 등장하는 호시노 미치오나 시규어 로스와 같은 이름은

워낙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더더욱 반가웠다.

 

 

 

 

 

이 책을 보면서 작은 사진에 담겨 있는 압도적인 풍경들이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힐 것 같은 경험을 몇번 했는데, 그건 비단 이 책 뿐만 아니라

극 지방을 담고 있는 사진집을 볼 때도 수없이 느꼈던 현상이다.

 

빙하와 화산이 공존하는 풍경이라니.

하루에 기후가 30번도 넘게 바뀐다니..

어느 책의 제목처럼  '얼음과 불의 노래'가 존재하는 지역이다.

 

 

 

이 책엔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가 시행된 북극 귀퉁이의 작은 땅 스발바르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1920년 조인된 스발바르 조약에 따라 이 땅은 노르웨이의 것이면서 노르웨이의 땅이 아니라고 한다.

세계 어느 나라 출신이건 스발바르에서는 노르웨이 인과 똑같은 권리를 보장받는다.

집을 살 수도 있고, 사업을 할 수도 있단다.

 

사람보다 북극곰의 인구가 3배는 더 많은 곳.

식빵 봉지에도, 우체국 소인에도 북극곰 마크가 인사하는 동네

빙하트래킹이 이루어지는 곳.

눈밭 한 귀퉁이를 뒤적이면, 은행잎과 꽃이 찍힌 화석이 나오는 지역.

이 글을 읽고 새벽 3시에 갑자기 컴퓨터를 켜고 구글로 스발바르 이민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애석한 것은 책을 읽을수록 아 극지방에서 살기엔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고래고기와 바다표범은 고사하고, 연어도 좋아하지 않는 식성 때문에

아마 저기 가면 굶어죽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아니면 앵겔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무시무시하게 늘어나거나 -_-;;

 

경북최대 규모의 시장이라는 포항 죽도 시장에 갔을 때,

마치 사과상자만한 크기로 잘려져 있는 고래고기를 실제로 처음 봤는데

불쌍하고 신기하긴 했지만 전혀 먹고 싶진 않았다.(...)

 

 

 

북극. 하면 새하얀 곰과 바다표범, 빙하가 떠다니는 바다가 연상되는데

온난화 때문에 실제로 극지방에 가도 어디 오지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북극곰이나 고래를 본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닌가 보다.

 

책에 온갖 북극곰과 고래가 유영하는 짙푸른 바다 사진이 잔뜩 있을거라 기대했었는데,

사람보다 곰이 몇배나 더 밀집되어, 총을 사야 외곽으로 나갈 수 있는 지역에서조차

허탕을 치고 보지 못했다는 기록이 더 많았고

고생 끝에 목격한 북극곰은 먹을 것이 없어서

마치 동네고양이처럼 쓰레기통을 뒤지는 홀쭉한 모습이라

마음이 아파오기까지 했다.

 

 

 

이런 변화들은 동물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일어나고 있었다. 

호시노 미치오가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했던 시시마레프는 이제 퇴락한 마을로 변해가고 있다.

그를 초대했던 족장은 죽어, 아들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고

공동체는 뿔뿔히 흩어지고 청소년들은 비행하고 있다.

평면티비와 닌텐도가 상륙한 저 지역엔 더 이상 원주민들은 이글루를 짓지 않는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공동체 고유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포장도로도 거부한 채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총과 칼에는 용감하게 싸웠던 부족들이,

백인들이 가져온 바이러스와 문명엔 소리 없이 쓰러져벼렸듯이

지금 이 순간에도 문명의 힘은 이들을 위협하고 있다.

과연 이들은 그 갸냘픈 힘을 얼마나 이어나갈 수 있을까.

 

 

 

 

 

 

덧)

 

 

 

-오래된 빙하는오랜 세월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조직이 치밀해져 파랗게 보인다고 한다.

예전에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았던 '고드름'의 그 색이라고!

 

-한류의 진정한 원동력은 기독교였나 보다;;;

그 원주민들이 사는 곳에서조차 조용기 목사에게 예배를 부탁하는 말을 전해달라고 한다거나,

통일교를 믿는 신자가 온돌을 깔아 운영하는 호스텔이 있는 것을 보고 기겁한 -_-;

 

- 현지에서 보는 북극곰은 깨끗한 베이지색이다.

북극곰이 하얗다는 것은 당연한 말 같아 보이지만.

동물원에서 보는 대부분의 북극곰은 어딘지 얼룩덜룩 지저분한 색이라 의아했었거든..

살고 있는 곳의 기온이 너무 높으면 북극곰의 털 속에 남조류가 번식해 이끼가 낀단다.

 

처칠의 북극곰은 때깔은 예쁘지만 배가 고파 홀쭉하고,

동물원의 북극곰은 배는 부르지만 털이 처량해 보인다.

 

평생을 고독하게 사는 선천적 나그네인 이 동물을 누가 자꾸 괴롭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