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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책 읽기

무연사회-NHK 무연사회 프로젝트팀

DidISay 2012. 10. 30. 00:49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우리집 근처엔 할머니 한분이 이사오셨다.

 

아파트단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단독주택이었는데,

엄마는 그 할머님과 슈퍼를 오가는 길에 자주 마주치면서 친해지신 것 같았다.

 

 

 

얼마쯤 시간이 지난 뒤엔, 할머니가 가끔 우리집에서 식사를 하고 가시기도 하고

할머니가 혼자 외로우실 것 같다고 같이 가자시는 엄마를 따라

나 역시 종종 그 집에 놀러가곤 했다.

 

엄마가 집에 없을 때 혹시 그 집에 놀러갔나 싶어서 찾아가면

할머니는 꼭 그냥 보내지 않으시고 오렌지 주스나 떡 같은걸 내오시곤 하셨다.

특히 할머니가 조금씩 만들어주시는 김치부침개를 내가 아주 좋아한다는걸 아시고는,

그 다음부터는 꼭 냉장고에 부침개 반죽을 만들어놓으셨다.

 

할머니는 아주 옷을 맵시 있게 입는 편이셨는데,

보라색이나 고운 연두색 실크 블라우스를 즐겨 입으셨고

가을이면 큰 키에 잘 어울리는 하늘색 롱코트를 걸치셨다.

 

내가 할머니의 외모에서 가장 좋아했던 것은 하얀머리였는데,

보통 염색을 하는 여느 노인들과는 다르게

새하얀 머리를 아주 단정하게 손질하셔서 정갈하고 멋진 느낌이었다. 

 

 

 

우리집은 친가와 외가가 모두 명절이 아니면 잘 모이기 힘든 거리에 있었고,

이웃집 할머니 역시 자녀들이 모두 미국과 캐나다에 나가 계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난 마치 친할머니를 대하듯이, 할머니가 예쁘게 가꾼 화단이 있었던

그 작은 집에 놀러가서 티비를 보거나 부침개를 먹곤 했다.

 

할머니는 그렇게 오래오래.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집을 떠나 대학교에 갈 때까지 우리 가족의 기억 한언저리에 머물러 계셨다.

 

 

그리고 내가 대학을 가고 얼마 안있어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돌아가신걸 발견한건 우리 엄마였는데, 아마 주무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 같다고 했다.

 

엄마가 전화로 이 소식을 알렸을 때부터 눈시울이 젖기시작했던 나는,

외국에 나가있다던 자녀에게 힘들게 이 사실을 알렸을 때 장례식 일정을 맞출 수 없다고

처분을 엄마에게 부탁했다는 대목에서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할머니의 자녀들의 태도에 대한, 야속함이나 섭섭함과는 다른

아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끝나버릴 수 있는거지.란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다.

 

학교 안 커다란 나무가 있는 길에서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내내 멈춰 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부터 집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찔끔찔끔 눈물을 훔치며 땅만 보고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 지금까지 계속 잊고 있었던 그날의 기억을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다시 떠올리게 한 건 독서모임을 통해 읽게 된 이 책이었다.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책.

가만히 문장을 읽어보면. 덜컥. 무서웠다.

그래서 자꾸 읽는걸 그만 멈추고 싶었다.

 

 

책과 동명의 제목으로 방영된 일본 NHK의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출간되었는데

한국에서도 지식e채널에서 다룬 적이 있어서, 아마 익숙한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무연...이 세상에 아무 끈이 없다는 말.은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어찌보면 우주에 횡하니 내던져진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인데.

 

 

 

 

 

 

이 책은 자살으로 인한 사망자와 비슷할 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이

'고독사' 혹은 '행려사망자'라는 익명의 이름으로 쓸쓸하게 죽어간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이혼을 해서, 직장을 그만둬서, 고향을 떠나 혼자 살아서, 결혼을 하지 않아서...등등의 이유로

세상과의 끈이 사라진 이들은 아무도 유해를 거둬줄 사람이 없었고

때문에 화장한 뼈조차 처리하기가 난감한 상태였다.

 

자식이나 친지에게 연락을 해도,

알아서 처리해달라는 답변만 되돌아 오던..

 

 

 

 

하지만 내가 정말 무서웠던 것은 '혼자 사망을 한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망을 하기 전까지의 생활이었다.

사실 난 죽은 뒤에 내 유골을 어떻게 처리하든 별로 상관없으니까.

 

 

하지만 병이 들어 갑자기 쓰러져도 아무도 날 발견할 수 없을 만큼 고립된 상황.

하루종일 혼자 티비만 보고 대화가 없는 일상.

한두명의 사람과 전화로만 연락을 받는 생활.

 

이런 것이 결코 비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조차 한 발짝 인생길을 잘못 내디뎌 톱니바퀴가 삐끗하고 어긋나면 독거노인이 되어서 고독사하지 않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결코 우리와 다른 인생을 걸어 온 사람들이 아니니까 말이지요.모두 제대로 된 일생을 살았고, 자식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자식을 어엿한 성인으로 키웠는지도 모르며, 태어날 때 부모를 기쁘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모두 그 나름의 일생이 있는데도 단지 인생 후반이 고독해졌다는 것만으로 가치 없는 인생이 되어 버려도 좋은 걸까요? 정말 어디에 묻혀 있는지 죽은 사람의 흔적이 아무 데에도 남아 있지 않는 현실은 부조리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고독사는 단순히 노숙자들의 문제만이 아니었는데,

직장생활을 오래 해왔고 가족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 퇴직을 하거나 부모님이 사망하시면

결국 모든 인연이 점점 희미해져서 홀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모두 나름의 삶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았고

병든 부모님을 수발하는 착한 일생을 꾸려왔음에도

결국 남는게 고독사라면 너무 우울하지 않은가.

 

 

게다가 당장 내 몸이 아파서 몇 년 혹은 몇 달간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바로 빈곤층으로 떨어지기 쉬운 것이 현재 복지의 현실인데,

만약 나이 많은 노인이 되어서 저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싶었다.

 

 

 

-이런 NPO에는 전직교사, 자동차 대기업 전 사원, 전 공무원 등 생활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찾아온다. 현역 시절에는 수입이 있었고 노후에도 상대적으로 많은 연금을 받앋 이혼이나 사별을 겪어 지금은 혼자가 된 사람들, 의지할 친족이 있지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다.

 

 

-분명히 형제는 있고 조카들도 있어요. 어릴 때는 참 귀여워해서 보살펴 주기도 했지. 그랬던 것이 크고 난 뒤에는 전혀 가까이 오질 않아. 남편이 죽고 점점 소원하게 되어 지금은 의지할 데가 이웃 사람 뿐이야.

 

 

-회사를 그만 둘 때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결국 전화할 정도의 일도 없는 터이어서 누구하고 이야기할 일조차 없어지게 된 거지요. 지금은 사회라는 테두리 바깥에 혼자 우두커니 있는 느낌입니다.

 

 

-지금은 건강하지만 구급차 소리를 들으면 다음은 나인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집에 있어도 누구에게서도 전화가 오지 않고 누구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노력해서 일했지만 불황 그리고 자기 책임"

 

 

-지금은 혼자 살면서 독신으로 있는 것도 주위에서 인정해주고 저도 일을 가진 몸입니다. 다만 그것이 반대로 무연사의 리스크를 높이고 있는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하는 '평범한 행복을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지 자문해봅니다.요즘 세상은 그러나 그것조차 얻을 수 없게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개인적으로 이웃과 연을 맺는 대안가족의 형태정도만 제시할 뿐,

어떤 복지모델이나 국가의 책임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무연사회의 전 단계가 독신사회라는데, 한국도 이미 독신사회에 접어든 느낌이다.

당장 주변만 둘러봐도,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었는데

결혼할 생각이 없거나 하지않은 사람들이 남녀 할 것 없이 꽤 많다.

 

심지어 한국은 일본보다 출산율은 더 낮은데다가,

비정규 등으로 취업시장도 매우 불안하니까.

아마 일본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게 분명하다.

 

결혼하고 그 생활을 꾸리려면 돈이 많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할 수 없어서 결혼을 포기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도

어쩜 그리 닮아있는지...

 

 

 

 

그렇다면 내가 살게될 노후의 모습은 어떨지.

그리고 결혼을 한다 해도, 배우자가 사망한 뒤에도 유지될만한

혹은 퇴직 후에도 남게 될 인연의 끈이 몇 곳이나 있을지.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정말 나도 '고독사' 예비군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덜컥 들던.

읽는 내내 정말 '무연사회' 커뮤니티라고 만들어서,

세월이 흘러도 서로 챙겨줄 수 있게 정기적으로 모이고

비상연락망이라도 갖춰야하는건가 싶었다.

 

 

 

퇴직, 실직, 친척과의 뜸한 관계, 미혼, 비정규직, 배우자의 사망, 이혼, 고향이 아닌 곳에서 자취.

이 중 하나만이라도 발생을 한다면 고독사는 한 순간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느정도 생계가 보장되는 복지가 갖춰져야 하고

노인들이 사회로 나올 수 있는 일자리나 여가생활이 풍부해야 할텐데

글쎄...그게 과연 한국에서 가능할지, 사실 회의적인 생각만 드는거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뿌리가 없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라는 말을 참 많이 듣고 했었는데

그 말이 이렇게 무겁게 돌아오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