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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책 읽기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배수아

DidISay 2013. 8. 4. 00:30

이 작품 속에는 스키야키부터 소양(Tripe)만두, 심지어 유통기한 지난 음식까지 

가지각색의 식품들이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식食은 의衣나 주宙보다 훨씬 더 생존과 직결되어 있으며,

사회문화적 위치를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트뤼플과 캐비어를 즐기는 이와 음식물쓰레기통을 뒤적이는 사람의 처지는 분명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이 작품 속 먹을거리들은 혀와 눈을 만족시켜주는 기호식품이 아닌

오히려 자신의 빈곤을 깨닫게하고, 독자들의 식욕을 뚝뚝 떨어지게 만드는

그런 존재들이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작가인 배수아 씨가 밝히고 있듯이

일정기간 동안 몰입을 해 쓴 것이 아닌, 여러 작품들을 써내려가는 동안

잊을만 하면 그 다음 장을 쓰고...또 한참 뒤에 다음 장을 쓰고.. 하는 방식으로 완성한 책이다.

 

때문에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각 장과 각 장의 개연성은 매우 떨어지고

산만하며 소설에서 기대되는 갈등과 서사구조 역시 빈약한 편이다.

주인공도 없고 기대되는 사건이나 왁자지껄한 싸움도 없으며, 결말을 확실하게 끝맺지도 않는다.

그저 곁에 두는 것도 싫을정도로 찜찜하고 불편한 인물들이 계속해서 등장할 뿐..

 

"일어나면 뭐 해. 배만 더 고프지."

"스키야키가 먹고 싶다며."

"돈이 없잖아."

"입이나 닦고 옷 입어. 나가자. 나가서 스키야키를 먹으러 가는 거야."

"돈, 가지고 있었어?"

 

마는 반색을 하고 일어나 앉았다.

 

"빌렸어."

 

돈경숙은 짧고 그러나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디로 갈 거야?"

마는 소파 구석에 처박힌 바지에 팔을 뻗었지만 너무 멀었다. 마의 팔은 구겨진 바지에 가닿으려고 파들파들 떨렸다. 돈경숙은 녹이 시커멓게 슨 싱크대 구석에 굴러다니는 행주를 찾아 마의 입술을 사납게 닦았다. 침 덩어리가 검은 얼룩을 남겼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좋아."

 

마가 입을 벌렸다. 쭈욱쭉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시고 침을 빨았다. 돈경숙이 마의 셔츠를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 더미에서 찾았다. 그러나 아직 마르지 않았다. 마는 상관하지 않았다. 배가 고픈 나머지 마의 발걸음을 비틀거렸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살아야지. 죽으면 그만인데."

 

마는 중얼거렸다.

 

"아아 졸렬하고 더러운 것."

 

마가 머리를 긁자 기름진 비듬이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뚝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돈경숙이 그런 마의 등을 한 번 철썩 소리가 나게 때렸다.

 

"식당에 가면  그따위 말도 안 되는 구질구질한 소리 집어치워. 한 번만 더 그런다면 스키야키 따위는 없을 줄 알아."

"먹고 싶은 것은 다 먹고 살아야지....아아 침 흘러라."

 

마가 입을 다시 한번 더 벌리고 희죽 웃었다. 방구석에서 튀어나온 고양이가 마의 비듬을 달싹거리면서 핥고 있었다.

 

 

 

이야기 속에는 '빈곤'을 주제로 도시의 온갖 인간군상들을 인터뷰하는 작가가 등장하는데

이는 아마 작가의 자전적인 인물일 것이다.

저 사실을 인지하고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이 작품이 과연 소설인지 혹은 허구를 가미한 르포물인지 아리송할 지경이다.

 

 

 

보통 '빈곤'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일반적인 방식은

아주 가난한 주인공이 온갖 역경을 딛고 이를 극복해나가는 흔한 영웅담을 촌스럽게 묘사하거나

지긋지긋한 궁핍함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나가는 것이겠다.

 

하지만 이 작가는 마치 '빈곤'의 모든 것을 파헤쳐보기라도 하듯이

가난했지만 부유해진 이. 처음부터 가난했던 이. 부유했지만 어느 지점에서 나락으로 추락한 이,

돈을 쥐고 있지만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가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등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에게서 '빈곤'의 흔적을 찾아내고 있다.

심지어 가난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에게서조차, 그 흔적을 찾아낸다.

 

매 장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인물들은 저마자 각자의 처지에서

자신의 삶, 로맨스, 가족, 직업, 식생활 등등에서

어떻게 '빈곤'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우리에게 살며시 알려준다,

마치 도시의 '빈곤'을 가지고 정신병리적 논문이라도 쓰려는 것처럼.

 

그 방식은 꽤나 섬세해서 흡사 예민한 외과의사가

그들의 삶에 정교한 메스를 대고 한켠 한켠 들춰보는 장면을

은밀하게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다.

 

 

 

 

다만 책 한 권을 통해 어떤 이의 삶과 생각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장에서 이를 끝내려하다보니

종종 대사는 길어지고, 작위적이며, 인물들에 대한 설명은 불친절하거나 어색하다.

등장하는 장소 역시 매우 사실적으로 지저분하고 꺼림칙하다.

 

때문에 좋은 소설이라거나. 누군가에게 권해주고 싶다거나,

읽고 난 뒤에 어떤 감동이나 깨달음을 얻을만한 작품은 분명 아니다.

기분 좋은 소설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고.

다만 작가의 그 노력과 취지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혹은 '가난'에 대한 공포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는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가난하지만 도를 추구한다거나, 품위있는 가난 따위는 믿지 않는다.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행복한' 가난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가난에게 '선택당했을' 때 행복할 수 있는 결핍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이 사회는 지식인이더라도 한 순간의 사고와 실업으로 빈곤층으로 떨어질 수 있고,

지금 당장은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더라도 어느날 질병으로 그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사회적인 안전망이 없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전쟁터에 떨어진 사람들처럼,

이기적이고 각박해지기 십상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궁핍함을 사방에서 느끼고 있고, 또 온갖 종류의 사치스러움에도 노출된다.

우리는 오늘 당장 가난하지 않더라도,

폐지줍는 할머니를 통해 혹은 거리의 노숙자를 볼 때마다

'나 역시 발버둥 치지 않으면, 언젠가는 저 나락으로 굴러떨어질거야'라며 빈곤을 두려워한다.

 

혹은 빈곤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부를 과시해 만족감 혹은 안도감을 얻는다.

'난 저 거리의 사람들과는 다르다.'라고 위안하면서..

 

 

또 누군가는 다른 이가 늘어놓은 부의 흔적들을 보고

느끼지 않았어도 좋을 상대적인 박탈감에 괴로워 하겠지..

이 나라의 수많은 모조품들과 분에 넘치는 소비들이 그 증거일 것이다.

 

 

 

 

 

작가는 소설을 써내려가면서

'빈곤'은 끝이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어느순간 느끼게 되었고,

이 이야기 역시 끝이 나지 않길 바라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끝도 없이 계속되는 '빈곤'의 낙원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것일까.

 

 

 

 

 

+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적 위치를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아마 '집 구하기' 미션을 수행할 때가 아닐까.

아래는 꿈에 나올까 무서운 '신혼집 구하기' 장면.

예전에 자취 시작하면서, 집 알아보러 다니던 생각이 많이 났다.

 

가스 상점 사람의 말대로 숲이 나타나기는 했다. 능금나무 길 위의 숲길이다. 그러나 능금나무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숲길은 쓰레기투성이였다. 낡은 소파나 소형 냉장고와 빈 개집들이 숲 그늘 구덩이에 버려져 있었다. 구덩이 언저리로 파리가 날아다니고 날벌레들이 거미줄에 매달려 말라가고 있었다. 차가 간신히 한 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너비였다. 버려진 소파 아래로는 담배꽁초와 깨진 술병과 본드가 담긴 비닐봉지들이 굴러다녔다.

 

"난 402호를 보러 왔어요."

 

건물의 관리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진주는 초조하게 시계를 보았다. 오는 데 15분이나 걸렸다.  ...   5층 건물인데 엘리베이터나 주차장은 물론 없다. 차는 숲 속의 빈터에 알아서 세우고 너덜너덜해진 건물 벽은 철근이 드러나 있었다. 집집마다 베란다를 창고로 사용하고 있어서 더러운 먼지 속에 온갖 잡동사니들이 드러났다. 건물은 A동과 B동 두 채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연할 정도로 낡고 더러운 건물이었다. 진주는 맥이 탁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역시 임대료가 싸다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일까, 스스로 위로했다.. ...  402호 집주인은 나이 든 노파였는데 집에 있었다.

 

"난 단 5분밖에 시간이 없어. 단 5분이야, 곧 다시 시장에 나가봐야 한다구. 집은 다 비슷하지 뭐, 별다를 것이 뭐가 있겠어. 자, 마음대로 보도록 하시구랴." 

 

노파가 집 안으로 진주를 들어오게 했다. 부동산 회사 사람의 말대로 집은 전망이 좋았다. 베란다를 통해 숲 아래가 내려다보였다. 시원한 바람도 불어왔다. 방은 작은 것 하나와 큰 것 하나, 욕실과 베란다가 전부인 구조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문틀은 예외 없이 모두 비틀어지고 아귀가 잘 맞지 않고 칠이 벗겨졌다. 싼 셋집을 많이 보러 다녀서 궁색한 풍경에는 적잖이 익숙해져 있는 진주였지만 놀라웠다. 그 집에는 큰 방 하나에 다섯 명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큰 방이라고 해도 평방 5미터가 되지 않아 보인다. 먼저 체액이 모두 빠져나간 듯이 바싹 마르고 나이 든 노인이 이불에 누워 있었다. 그는 입을 벌리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잠든 건지 죽은 건지 모를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다. 쌍둥이로 보이는 어린 사내아이들이 둘, 그리고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욕실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빨리 결정해야 할 거야."

 

노파가 재촉했다.

 

"난 5분밖에 시간이 없으니까. 그리고 이 집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렇게 싸니까 말이지."

"난 지금 당장  결정하지는 못하겠어요. 결혼할 사람과 상의하는 것이 필요해요."

"오, 결혼한다고? 그렇다면 신혼살림을 차리는 건가? 신혼부부에게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어? 전망이 좋고 시내도 가까워.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활비도 별로 들지 않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조용하거든."

 

노파가 채 말을 마치기도전에 무거운 나무 도마가 떨어지듯이 쿵, 하는 소리가 벽 저편에서 들렸다.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고 뭔가 다른 좀더 부드러운 것을 향해서 떨어진 듯한 소리다. 예를 들자면 사람의 손이나 발등 같은, 그리고 곧 누군가 뺨을 거세게 치는 소리가 찰싹 하고 났다. 그리고 곧 숨을 죽인 울음 소리가 들렸다. 울음 소리는 곧 그쳤지만 무서울 정도로 가깝게 들리는 숨소리와 땅바닥을 질질 끄는 듯한 소리는 좀더 오래 계속되었다. 1층에서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노는 소리가 들렸다. 진주는 침묵을 지켰다. 노파는 일부러 수돗물을  세게 틀었다.

 

"이렇게 수돗물도 잘 나온다우, 높은 곳에 있어도 말이지."

"어쨌든, 오늘 중에 전화로 결정해드리겠어요."

"그렇게 해요, 그러면."

 

진주는 서둘러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 진주는 잠자코 있었다. 그들이 가진 돈으로 서울에서 번듯한 집을 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대학 이상의 교육을 마쳤고 둘의 수입을 합하면 비교적 많이 벌 수 있으니 이제 곧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들은 당분간 이곳이나 이와 비슷한 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의 원주민이 아니다. 그들은 비록 가난한 집안의 자식들이지만 국립대학을 나왔고 사회적으로 크게 출세하지는 못할지라도 지적인 일생을 보낼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하더라도 자존심과 오만은 버리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