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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마차-호시 신이치

DidISay 2013. 7. 30. 00:55

 

 

 

예술가. 라고 하면 천재적인 영감을 받아 순식간에 몰입하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특히 작가는 그런 천재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만약 게으름뱅이 천재와 성실한 범인凡人이 있다면 난 망설이지 않고 후자를 선택할텐데

아마 그건 내 스스로가 꾸준함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유형의 사람이기도 하고

조금 선천적인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쌓이는 시간과 땀의 흔적을 통해

좋은 성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에서이기도 하다.

 

 

 

예전에 본 소설가 성석제씨의 인터뷰에서, 이른 아침 직장인들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매일 정해진 일과에 따라 펜을 잡기 시작한다는 대목이 참 인상적이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고 일정한 질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작가들에게는 좀더 애정이 간다.

살뜰한 삶의 기운이 담겨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소설들의 작가.

호시 신이치도 26년간 1000편이 넘는 엽편소설을 발표한 성실계의 끝판왕이다. 

보통 똑같은 작가의 소설들을 계속해서 읽다보면 쉽게 질리게 마련이지만

이 작품들은 소재들이나 발상이 아주 다양해서 감탄하면서 읽게된다.

 

게다가 이 짧은 소설 안에 특정 주제에 대한 은유나 풍자를 담으려면 장편소설보다 더 힘이 들 것 같은데

정말 잘 만들어진 브랜디처럼 온갖 이야기들이 농축되어 있어,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게 된다.

성실하면서 재능까지 있는 작가라니!! 부럽기 이를데가 없다.

 

...


  26년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이를테면 이 기간은 1926년부터 만주사변,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 전쟁에 돌입했다가 패하고, 겨우 강화조약을 맺게 된 해까지의 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계속 일정 레벨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히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일이니 확실히 말하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26년동안 1000편이라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그것은 한달에 평균 3편 내지 4편이라는 할당량을 26년간 채워야 한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안 돼 안 돼. 단언하건대, 난 절대로 5년도 못 버틸 거야. 3년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같은 일을 하는 후배로서 솔직히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일이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체력과 기력을 빼앗겨 기진맥진 반 병자가 되어 버릴 정도의 가혹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뭐든지 손에 잡히는 것을 재료로 삼아 쉽게 쓰면, 5년에서 10년은 지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 작가에 대한 평가는 떨어져 주문은 줄고, 10년도 채 가지 못해 작가세계에서 관두기를 부탁받고 말 것이다.

 

  그러나 호시 씨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스스로 정한 규범을 엄격히 지키며 연습과 정서(精書)를 반복하여, 한 달 매수까지 정해 양질의 작품만을 발표해왔다. 때문에 1000편을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자기 규제를 좀 완화했다면 2000편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요령을 피우면서 작업을 했다면 3000편을 썼을지도 모르지만, 엄격한 자기 관리로 이루어낸 1000편에 그만큼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쉽게 초조해하거나 주위의 분위기에 신경 쓰는 나는 호시 씨가 자기 규제를 잘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언젠가 그에게 직접 물어봤던 적이 있다.

 

  "호시 씨, 정말로 데뷔 당시부터 매달 70매 정도를 목표로 글을 써왔습니까?"

 

  대답은 아주 가벼운 한 마디뿐이었다. 

 

  "응, 그래요."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고 싶은 기분이 든 나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1000편은 쓸 수 없다는 사실에 억울함을 느끼지도 않고, 아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그저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더 강해졌을 뿐이다.

-해설 中, 작가 간베 무사시

 

 

 

 

+ 소설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자면..

'사소한 금기'가 스릴러나 추리소설의 느낌이 나는 작품이 많았음에 비해

'호박마차'는 그에 비해 좀더 밝은 분위기의 소설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너무 재밌게 읽어서,

다음에 볼 호시 신이치의 소설들이 더더욱 궁금해졌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