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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책 읽기

난 단지 토스터를 원했을 뿐-루츠 슈마허

DidISay 2013. 9. 23. 22:41

1. 2000년대 초반에 가족들과 놀러갔을 때 일이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조명이나 냉난방을 비롯한 각종 설비들을

모두 리모컨으로 작동하게 되어있었는데

설명서 없이 리모컨만 처음 마주한 우리 가족은 순간 당황했다.

 

꽤 시간이 흐르고 짜증과 몇번의 실패를 거친 후 겨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신제품들을 다루지 못해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잠시 느꼈던 것 같다. 

 

 

 

2. 엄마가 해주셨던 이야기인데, 친할머니가 컴퓨터를 굉장히 열심히 배우시길래

왜 그렇게 힘들게 하시냐고 물어보셨단다.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주 기본적인 것도 못하게 된다고,

당신의 시할머니께서 전화도 사용하지 못하는 걸 보셨다고 대답하셨단다.

그래 그 옛날엔 전화기가 최첨단의 장비였겠지.. 하고 신기해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저 이야기들이 다시 생각났었다.

 

 

 

 

'내가 멍청한 걸까 아니면 기계가 똑똑한 걸까'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을

6월인가에 서점 인문서적 신간코너에서 우연히 읽고 구입했었다.

그런데 마지막 몇 장을 다 못읽은 탓에, 리뷰를 계속 미뤄놨다가 이제야 쓰게 되었다.

 

루츠 슈마허는 독일의 유명 저널리스트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그건 나야 잘 모르겠고,

그가 꽤 투덜거림이 심한 불평쟁이자 심각한 기계치라는 것은 틀림없다.

 

 

 

이미 세상에 필요한 모든 기계들이 다 발명되었는데, 오로지 경제시장을 돌아가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불필요한 추가기능들이 출시된다고 이야기 하는 그는

이 책에서 최신 토스터기부터 계속해서 쏟아져나오는 스마트폰까지

온갖 기기들을 비꼬며 불만을 터트린다.

 

 

 

 

커피머신을 사용하면서 석회제거기능에 대해 불만을 터트린다거나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기본적이라고 생각되는) 최신 기능에 대해 화내는 식의

비약이나 과장이 섞여있지만 글 자체가 위트 있는 편이라 지겹지 않다.

게다가 아예 허황된 이야기라고 하기엔 찔리는 면도 없잖아 있고 :D

 

빌 브라이슨류의 냉소적인 문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되는데,

읽다보면 특유의 비아냥거림이 귀엽게까지 느껴진다 ㅎ

 

얼리어답터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기계치라거나 아직도 아날로그의 향수에 젖고 싶은 사람들에겐

많은 웃음을 선사할 것이다.

 

 

 

 

디터 누어(Dieter Nuhr, 독일의 유명 만담꾼)가 자신의 만담쇼에서 했던 다음의 유명한 대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요즘 보면 테가 뭐가 됐든 간에 자기 의견이랍시고 아무 말이나 지껄여 대는 사람들이 많죠. 끔찍하지 않나요? 바보들까지 모든 주제에 의견을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게? 제 생각에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잘못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민주주의란 의견을 가질 수가 있다는 거지(can) 가져야만 한다는 게 (muss) 아닙니다. 의견을 낼 때는 뭘 좀 '알고 말해야'죠. 의견이 없는 사람은 아예 입을 닫는게 좋아요."

 

내가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부분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같은 sns를 비꼰 부분.

진지한 주제에 대한 토론이 사라진 상태에서 소모적인 입씨름을 하고,

그저 짧고 피상적인 대화만으로 알맹이 없는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을 꼬집어 놨다.

온라인 인간관계 중 정말 유의미한 것이 몇이나 될까?

 

 

 

 

(출처: http://www.cinismoilustrado.com/ )

 

 

3450명의 온라인친구. 당신의 장례식에 찾아오는 1명의 친구.

 

 

 

인생은 당신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사이에 일어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