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28 -정유정 본문
이번 여름의 초입에 정유정의 28과 관련된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그녀의 소설에서 느꼈던 치밀하고 단단한 느낌과는 다르게
서글서글하고 유쾌한 입담에 길을 걷는 내내 즐거웠었다.
간호사로 오랜 기간 일을 하고 한 사람의 아내로. 엄마로 지내면서
꾸준히 글쓰기를 하고 늦게 문단에 발을 내딛은 작가.
사회생활와 가정생활을 일반적인 사람들만큼 경험해본 작가여서 그런지
일반적인 작가들의 인터뷰보다 보다 소통적이고 개방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다.
사실 28은 우연찮게도 영화 감기와 내용이 너무 비슷한지라
영화에서 지레 질려버려서 별로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작가의 인터뷰덕에 읽어내려갔던 소설이다.
7년의 밤에서 느꼈던 이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공간을 통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는데
장미의 이름을 쓰면서 수도원의 작은 공간까지 모두 머리속에서 창조해낸 움베르트 에코처럼
정유정 역시 도시의 곳곳을 모두 훑어나가고
스토리에 맞게 지리적 요건을 활용하는 면이 매력적이었다.
덕분에 작품을 보면서 영화 같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고
실제로 한 도시를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느낌이었는데
28도 7년의 밤만큼은 아니지만 도시를 새로 창조해내고 공동체를 잘 묘사하고 있다.
다만 28은 7년의 밤처럼 지도를 첨부해서 보여줄만큼
공간을 많이 활용한 소설은 아니라서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웠다.
대신 전작과 비교해 이 소설이 가지는 매력이라면.
또 똑같은 구제역 현장을 보고 썼다는 영화 감기와 다른 점이라면.
동물의 마음을 마치 사람처럼 묘사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사람과 동물의 로맨스가 둘다 등장하는데
사람들의 로맨스가 약간 뜬금없다고 느껴질만큼 좀 허술하다면
오히려 개들이 가지는 감정이나 관계의 밀도는
훨씬더 개연성 있게 자세히 풀어나간다.
덕분에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동물처럼 느껴질만큼 사건의 커다란 역할을 하고
사건들을 연결해주는 것 역시 동물들이다.
바이러스 때문에 폐쇄되어 버린 도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고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편이기 때문에
거대하고 스릴 있는 느낌보다는 좀더 치밀하고 촘촘한 느낌이다.
이 소설은 관계와 관계가 서로 퍼즐처럼 촘촘하게 짜여있어서
일단 건드리면 멈출 수 없는 도미노처럼 점점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선과 악이 뒤섞여서 나중엔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에
결말로 갈수록 마음이 답답해지는 면이 있다.
윤간이나 폭력처럼 자극적인 장면들도 꽤 등장하는데
이런 면들이 저런 답답함과 중첩되어서
후반부로 갈수록 시원하게 내달리는 느낌이 아니라 읽기 괴로워지는 느낌.
사람에 따라 이건 장점일수도 단점일수도 있겠는데,
나 같은 경우는 완전히 권선징악형으로 양분화된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저 답답함이 좀 아쉽긴 했지만 크게 나쁘진 않았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심리 묘사에서 정이 가는건 오히려 개들이고
매력을 보여줄만큼 충분하게 묘사를 하거나
감정의 흐름을 이해할만큼 설득력 있게 표혀한 인물들이 적은 편이라
읽는 내내 중점을 두고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없어서
전작에 비해 좀 늘어진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그나마 가장 호감이 가던 인물도 중간에 가장 처참하게 죽어버리고;;;;
뭔가 이따위 더러운 세상(..) 다 죽어버려;; 같은 -_-;;
작가가 인터뷰 중에서 본인이 간호사였기 때문에
개인적인 감정이나 경험에 치우칠까봐 의식적으로 이걸 피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작가가 자신의 장점과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니
적극적으로 표현했다면 좀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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