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바스콘셀로스 본문
"슈르르까, 나 할 일이 있어서 왔어."
"뭔데?"
"같이 기다리자."
"그래."
나는 밍기뉴의 허리에 머리를 기대고 앉았다.
"제제, 우리가 기다리는 게 뭔데"
"하늘에 아주 예쁜 구름이 하나 지나가는 것."
"뭘 하게?"
"내 작은 새를 풀어 주려고."
"그래, 풀어줘. 더 이상 새는 필요 없어."
우리는 하늘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거 어떨까, 밍기뉴?"
잎사귀 모양의 크고 잘생긴 흰 구름 하나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저거야, 밍기뉴."
나는 가슴이 뭉클해져 벌떡 일어나 셔츠를 열었다.
내 메마른 가슴에서 새가 떠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작은 새야 훨훨 날아라. 높이 날아가.
계속 올라가 하느님 손끝에 앉아.
하느님께서 널 다른 애한테 보내 주실 거야.
그러면 너는 내게 그랬듯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겠지.
잘 가,내 예쁜 작은 새야!"
왠지 가슴이 허전해진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은 영 가시지 않았다.
"제제 저것봐. 새가 구름 가에 앉았어."
"나도 봤어."
나는 머리를 밍기뉴 가슴에 기대고
멀리 사라져 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저 작은 새랑은 한번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
그리고 밍기뉴 가지에 얼굴을 돌렸다.
"슈르르까."
"응?"
"내가 울면 보기 흉할까?"
"바보야, 우는 건 흉한 게 아니야. 그런데 왜?"
"글쎄.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봐.
여기 내 가슴속 새장이 텅 빈 것 같아······."
선생님은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제제, 할 얘기가 있다! 잠깐 남아 있어라."
선생님은 한없이 핸드백을 뒤적였다.
마치 내게 말을 꺼넬 용기를 핸드백 속의
물건들 사이에서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결단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제제, 고도프레두가 너에 대해 아주 나쁜 얘길 하더라,
그게 사실이니?"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꽃에 관한 얘기죠? 그렇죠, 선생님?"
"왜 그런 짓을 했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세르지뉴 집 정원으로 갔어요.
대문이 열려 있어서 재빨리 들어가 꽃을 하나 꺾었어요.
하지만 그곳엔 꽃이 엄청 많아서 표시도 나지 않아요."
"그래도 그렇지. 그건 옳은 일이 아니야.
더 이상 그런 짓을 하면 안된다.
큰 도둑질이 아니라도 아무튼 도둑질은 도둑질이야."
"아니에요, 선생님, 안 그래요. 이 세상은 하느님 것이죠?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 거잖아요.
그러니까 꽃들도 하느님 거예요."
내가 조리있게 대꾸하자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
"선생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 집에는 정원이 없어요.
꽃을 사려면 돈이 들고요.....
그리고 전 선생님 병만 늘 비어 있는 것이 마음 아팠어요."
선생님은 마른침을 삼켰다.
"가끔 선생님께선 생크림 빵을 사라고 저한테 돈을 주셨잖아요.
그렇지요?"
"매일 주고 싶어도 네가 종종 사라져 버렸어."
"전 매일 받을 수가 없었어요."
"왜?"
"간식을 가져오지 못하는 다른 애들이 있으니까요."
선생님은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나 몰래 슬쩍 눈물을 닦았다.
"선생님. '올빼미'를 보셨어요?"
"올빼미가 누군데?"
"저만큼 작은 흑인 여자애에요.
꼭대기에 머리를 틀어 끈으로 묶은 애요."
"아! 도로띨리아 말이구나."
"네, 선생님. 도로띨리아는 저보다 더 가난해요.
다른 여자애들은 그 애가 깜둥이인 데다가 가난뱅이라서
같이 놀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 앤 매일 구석에 혼자 웅크리고 앉아 있어요.
전 선생님께서 주신 돈으로 산 생크림 빵을
그애하고 나눠 먹었어요."
선생님은 이번엔 아주 오랫동안 코에 손수건을 대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가끔 저 대신 그 애한테도 돈을 주셨으면 좋았는데.
그 애 엄마는 남의 집 빨래를 하세요.
애들이 열한 명이나 된대요. 게다가 모두 아직 어리구요.
우리 진지냐 할머니께서도 토요일마다
그 애 집에 쌀과 코을 갖다 주시며 돕고 계세요.
저도 엄마가 작은 것이라도 더 가난한 사람과
나눠야 한다고 하셔서 제 생크림 빵을 나눠 먹은 거에요."
이제 선생님의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전 선생님이 우시라고 그렇게 한 게 아니에요.
이제는 꽃을 홈치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할꺼에요."
"그게 아니다, 제제, 이라 와 봐라."
그러고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넌 정말 고운 마음씨를 가졌으니까 나하고 약속 하나 하자, 제제."
"약속할께요. 하지만 선생님을 속이고 싶진 않아요.
전 마음씨가 곱지 않아요.
선생님께서는 집에서 제가 어떤지 모르셔서 그러세요."
"상관없어. 내겐 네가 아주 고운 애란다.
앞으론 네가 꽃을 가져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얻어 오는 거라면 모르지만 말이다. 약속하겠니?"
"약속해요, 선생님. 하지만 병은요? 늘 비어 있어야 하나요?"
"이 병은 결코 비어 있지 않을 거야. 난 이 병을 볼 때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될 거야.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 거야.
내게 이 꽃을 준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나의 학생이라고.
그럼 됐지?"
이제 선생님은 미소를 보았다.
그리고 내 손을 놓으며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가 봐라, 황금 같은 마음씨를 가진 아이야."
"그래서 그런 게 아니다, 얘야. 그런 게 아니야.
인생이란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게 아니야.
하지만 한 가지 약속하마.
네 말대로 하고 싶기는 한데
너를 네 엄마 아빠한테서 데려 올 수는 없어.
그건 옮은 일이 아니야.
지금까지도 널 아들처럼 사랑해 왔지만
앞으로는진짜 친아들로 대해주마."
나는 너무 기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정말이에요. 뽀르뚜가?"
"네가 잘 쓰는 말이지만, 맹세하마."
나는 우리 가족에게도 좀처럼 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
그의 커다랗고 부드러운 얼굴에 입을 맞췄다.
우리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뽀르뚜가는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네가 나를 믿는다니까 나머지 사건도 알아야겠다.
노래 사건은 뭐냐?
그 탱고 어쩌고 하던거 말이야.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는 알았니?"
"당신한테까지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요.
정확히는 몰랐어요.
전 뭐든지 들으면 외우거든요.
정말 아름다운 노래였어요.
내용은 생각해 본적없었어요.
그런데 아빠는 날 자꾸자꾸 때렸어요.
뽀르뚜가, 걱정마세요......"
나는 엉엉 울었다.
"걱정마세요. 죽여 버릴 거니까요."
"무슨 소릴 그렇게 해 네 아빠를 죽이겠다고?"
"예, 죽일 거예요. 이미 시작했어요.
벅 존스의 권총으로
빵 쏘아 죽이는 그런건 아니에요.
제 마음속에서 죽이는 거예요.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
" 뽀르뚜가!"
" 음 ......."
" 난 절대로 당신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도 알지요?"
" 왜? "
"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니까요.
당신이랑 같이 있으면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아요.
그리고 내 가슴 속에 행복의 태양이 빛나는 것 같아요. "
이제는 아픔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매를 많이 맞아서 생긴 아픔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유리 조각에 찔린 곳을
바늘로 꿰맬 때의 느낌도 아니었다.
아픔이란..
가슴 전체가 모두 아린, 그런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죽어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팔과 머리의 기운을 앗아 가고,
베개 위에서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지게 하는 그런 것이었다
우리들만의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먼 옛날 한 바보왕자가 제단앞에 엎드려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물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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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읽고 커서 다시 한번 읽어야된다는..
다시 읽을때는 어려선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해하고
더 가슴이 아리는 책들이 있다.
어린왕자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대표적인 책이 아닐까.
어린왕자는 이후로도 많이 읽었지만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어릴때도 충분히 울면서 봤기때문에
다시 손에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단순히 꼬마 제제가 측은해서라기 보다는
너무나 철이 들어버린 나를 마주치기 싫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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