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내 마음의 옥탑방-99 이상문학상,이상우 본문
불완전한 지상의 주민.
행복한 시월이 막을 내리던 그날.
나는 세상의 어느 곳에도 실질적으로 편재되지 못한 나의 초상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퇴근을 하고 회사를 빠져 나온 직후부터,
서편 하늘에 번진 석양빛을 이마로 맞받으며
무작정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모든 길이 끝나는 마지막 지점.
지상의 온갖 미물스러움과 속물스러움이 영원히 소멸되는
극단적인 지점이 매순간 나의 발에 밟히는 것 같았다.
배회하며 지나치는 지상의 모든 풍경에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깃들여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한가지. 신화속의 시지프처럼 신들의 멸시를
오히려 멸시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부단한 용기가 나에겐 없었을 뿐이었다.
누구를 위한 멸시인가.
밤 열시 반경부터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포장마차로 들어가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벌레와 기생충을 안주삼아 쓰디쓴 비관의 술을 들이키는
멸시의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의 정신은 명징해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나와 무관하게 느껴지는 세상.
아직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나는 서서히 가슴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친구도 아니고 애인도 아닌 존재에 대한 기대감
-그것이 설령 멸시받아 마땅한 그리움이라 해도
나로서는 더 이상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다른 건 모르겠으되,
시월 한달 동안 내가 옥탑방에서 느꼈던 내밀한 행복감까지
벌레나 기생충의 몫으로 양보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시지프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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