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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J.D.셀린저

DidISay 2012. 1. 23. 02:51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은 청소년 시기에 느끼는 혹은 어른들도 느낄 수 있는 실존적 불안을 아주 섬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존경할만한 어른은 (부모님을 포함해)아무도 없고, 내가 사랑하던 존재인 앨리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으며, 사회적인 신분인 '학생'은 박탈당한...그래서 그는 다른 학생들이 모두 이웃학교와의 축구를 관람할 때도,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취해 흥겨워할 때도 마치 이방인처럼 겉돌아 섞이지 못합니다.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거나,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죠

 

때문에 그는 이 불안하고. 하지만 내 의지와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밀어닥치는 세상 속에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덕분에 겨울에 오리가 어떻게 살아남는지 집요할정도로 궁금해하죠. 마치 자신이 오리가 되기라도 하듯이 말이에요. 하지만 그런 그를 이해해주는 어른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발자국만 내딛으면 세상 끝으로 떨어질 것 같은 그를 잡아주는 '파수꾼'도 존재하지 않죠.

 

소설의 마지막에서 이 모든 사람들이 그립다고 말한 것으로 볼 때 작가는 그래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인공 홀든이 안정적인 어른으로 성장한 것을 잘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엔 너무나 예민한 사람이거든요. 덕분에 그는 몇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한 불안한 청소년의 모습으로 기억되죠.

 

나를 잡아줄 어른도 없고, 부모님을 존경할 수도 없으며, 좋아하던 형은 세상과 타협해 내가 가장 싫어하는 헐리우드로 가버린 현실 속에서 청소년이 따르고 의지할 수 있는 멘토나 롤모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가 할 수 있었던 거라고는, 요즘 십대들이 그렇듯이 거친 욕이나 끄적이면서 불안감을 감추는 것 뿐이죠.

 

홀든이 가장 사랑하는 동생인 피비도, 이 파수꾼이 없는 현실에서 언젠가는 추악한 어른이 될 수도 있고 순수한 마음을 다 상실한 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할 수 있겠죠. 그리고 홀든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밀려오는 거대한 세상을 두려워합니다. 언젠가 자신도 그렇게 변해버릴텐데,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순수를 지키는 방법은 오로지 현실을 등지는 것 뿐이죠.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적당히 세상과 타협을 하고, 또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슬픔 속에서, 우리는 내 안에 감춰진 홀든을 보며 그 예전의 순수를 그리워하는 것이겠죠.

 

 


 

이제까지 여러 학교를 다니다 말곤 했지만,
매번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걸 분명히 의식하지 못한 채

나와 버렸거든. 그게 싫었다구.
슬픈 이별이거나 마음 내키지 않는 이별이거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어딘가를 떠날 때는,
지금 떠난다는 걸 분명히 의식하면서 떠나고 싶었다구.
그렇지 않으면 더욱더 불쾌한 느낌만 드는 법이니까.

내가 말하려는 건 바로 이 점이야, 알겠니?

스펜서 선생님 같이 지독하게 늙은 사람도 말이야.
 담요 한 장을 사고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는 사실이라구.

"인생은 경기고말고. 얘야, 틀림없이 인생은

누구나가 규칙에 따라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기란다."
경기라니, 빌어먹을. 굉장한 경기긴 하지.

만일 우수한 놈들이 줄지어 서 있는 쪽에 붙어 있다면,
인생은 경기라도 좋다구.
그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우수한 놈이 한명도 있지 않은 쪽에 붙어 있다면
어떻게 되느냔 말야.
그때엔 인생이 뭐가 경기지? 어림도 없어.
경기라니, 말이나 돼?

선생님은 나를 향해서 뭐라고 소리쳤지만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어.
틀림없이 "행운을 빈다!"라고 소리쳤으리라 여겨지지만,
제발 그런 말이 아니었길 바란다.
정말로 그 말이 아니었길. "행운을 빈다!"라니.
나라면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진 않을 거야.
잘 생각해보면 말이야, 정말 지독한 말 아니니?

정말로 내가 감동하는 책은 말이야,

다 읽고 난 뒤에 그걸 쓴 작가가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란다.
하지만 그런기분을 주는 책은 좀처럼 없지.

"안녕"하고 나도 이렇게 말했으나,

책에서 얼굴을 들지는 않았어.
애클리 같은 놈을 상대할 땐 책에서 얼굴을 들면
그것으로 지게 되는 거니까.
언젠가는 지게 되겠지만,
그러나 냉큼 얼굴을 들어 당장에 지는 것보단 낫거든.

놈은 언제나 남에게 부탁을 잘하는 편이라구.

자신을 빼어난 미남자라거나 혹은
우수한 인간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기 일쑤지.
자아도취에 빠져 있으니까 남도 자기에게
대단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마치 상대방이 자신의 부탁을 받고 싶어서
족을 못 쓴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습지 않니?

"알겠냐, 홀든. 미리 경고해 둔다.

이게 마지막이야. 만일 네가 입 닥치지 않으면 내..."
"그런 점이 바로 너 같은 저능아들의 문제점이야.

무엇보다도 서로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아.
그걸로 저능아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무엇보다도 지적인 대화를 싫어..."

태어나서 이제까지 나는 단 두 번밖에 싸움을 한 적이 없었는데,

두번 모두 졌다구. 나는 별로 힘이 세질 않아.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평화주의자라구.

짐을 꾸리면서 우울했던 게 하나 있었어.

엄마가 바로 2, 3일 전에 부쳐 줬던
새 스케이트를 짐 속에 넣지 않으면 안되었던 거지.
그건 정말 우울한 일이더군.
나는 경주용 스케이트를 원했는데
엄마는 하키용 스케이트를 보냈거든.
하지만 그렇더라도 역시 슬퍼졌어.
나는 사람들로부터 선물을 받으면,
나중에 그 때문에 대개는 우울한 기부네 사로잡히게 되더라구.

자기 아들이 얼마나 못난 녀석인가를 훤히

알아차릴 만한 어머니의 얼굴이었단 말이야.
하지만 모르는 법이지. 세상의 어머니라는 존재는.
어머니란 모두 조금쯤은 잘못돼 있다구.

"이것 봐요, 아저씨. '

센트럴 파크 사우스' 있는 연못에 오리가 있죠?
그 작은 호수 말예요. 엉뚱한 걸 물어보는 것 같겠지만
아저씨는 혹시 그놈들이,
그 오리 말예요. 연못이 모두 꽁꽁 얼어붙으면
어디로 가는지 알고 계세요?
이상한 질문 같겠지만 혹시 오르세요?"
나는 이렇게 물으면서도 그가 알고 있을 가능성은

백만분의 일도 안될 거라고 생각했어.

피곤하지도 않은데 잠자리에 드는 것만큼

내가 싫어하는 건 없지.

마치 실연이라도 당한 것 같더라구,

정말이야. 나는 놀린 걸 후회했어.
개중엔 놀려선 안되는 인간도 있다구.
상대가 비록 놀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일지라도 말이야.

나는 그 남자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었지만,

얼핏 보기에 뭔가 필요한 게 있을 때가 아니면
남에게 말을 건네지도 않는 사람 같아 보였어.
아주 치사한 성격의 소유자지.

그의 연주를 듣는 건 정말 좋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놈의 피아노를 뒤엎어 버리고
싶을 때도 가끔 있었단다.
그건 아마 그치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일류명사가 아니고는 말도 하지 않으려는,
그런 자만심 같은게 풍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뉴욕이란 데는 밤늦게 거리 같은 데서 웃으면

사방 몇 마일에까지 울려 퍼지게 돼.
그 소리를 듣는 건 너무도 쓸쓸하고 울적하다구.

어니의 연주가 끝나자 모두들

머리를 날려버릴 것 같은 기세로 갈채를 보냈어.
나는 그 연주가 끝났을 때 어니가 좀 불쌍했다구.
그놈은 자기의 연주가 정확한지 틀렸는지도
이미 알 수 없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건 그만의 잘못이 아니었다구.
정신을 잃은 듯 갈채를 보내는 그 멍청이들에게도 책임이 있었어.
그치들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누구라도 망쳐 놓기 때문이지.

"할리우드라구요? 멋져요! 뭘 하고 계시죠?"
형이 할리우드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여자는 대단하게 생각하는 게 분명하더군.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구.
대개 형의 소설 따윈 읽은 적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말이야.
나는 그게 못마땅해.

해군과 나는 서로 만나서 반가웠다고 인사를 나누었지.

이런 게 언제나 나를 맥빠지게 한다구.
만나서 기쁘지도 않은 사람을 보고
"만나서 기뻤다"고 말해야 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살아있고 싶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되지.

엄청나게 얻어맞는 건 괜찮아.

물론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주먹질을 할 때 제일 싫은 건 상대방의 얼굴이지.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다는 게 바로 문제야.

그애는 연극이나 희곡, 문학 따위를 아주 잔뜩 알고 있었거든.

그런 걸 많이 알고 있는 경우에는
그 사람이 바보인지 어떤지, 짧은 기간에는 알 수 없는 법이야.

"물론 좋아. 아유 신나!"
신난다구! 나는 신난다는 말보다 더 싫은 건 없어.

거짓말 같은 냄새가 풍기거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티네는
잊어버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을 정도라니까.

수녀들이 가버리고 나자,

나는 순간 헌금을 10달러 밖에 하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렸어.
사실 샐리 헤이즈와 마티네에 갈 약속을 했기 때문에,
표를 사기 위해서는 얼마쯤의 돈이 필요했거든.
하지만 그렇더라도 역시 마음에 걸렸어.
돈이라는 놈! 끝내는 언제나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니까.

나는 배우라는 작자가 딱 질색이야.

배우라는 놈은 결코 실제 인간처럼 연기하지 않거든.
본인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지.
우수한 배우 가운데는 다소 실감나게 연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봐서 재미있을 정도는 아냐.
그리고 정말로 훌륭한 배우라면,
자기가 훌륭한 배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이쪽에서 뻔히 보여. 그게 흥을 깬다구.

그 박물관에서 제일 좋았던 건,

모든 것들이 언제나 같은 장소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어.
아무도 위치를 바꾸지 않는거야.
물건에 따라서는 언제까지라도 지금 그대로
놔두고 싶은 게 있는 법이지.
그런 건 그 큰 유리상자에 넣어서라도
가만히 놔둬야 한다고 생각해.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런 불가능이 너무나 안타깝거든.

굉장한 여자애가 따분한 남자와 결혼하는 걸 보더라도

너무 불쌍하게 여길 필요는 없을 지도 몰라.
따분한 남자라고 하더라도 대개의 경우 남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어쩌면 휘파람의 명수일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알 수 없는 거라구. 어쨌든 나로서는 알 수 없어.

무엇인가를 너무나도 잘하게 되면 웬만큼 조심하지 않는 한

곧 여봐란듯한 것이 되고 마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이미 잘하는 게 아니지.

가령 그애가 같이 가겠다고 했더라도,

나는 아마 그애를 데리고 가진 않았을 거야.
다른 애를 데리고 갈지언정
그애를 데리고 가는 일은 없었을 거라구.
하지만 무섭지 않니?
그앨 꾀었을 땐 정말 진심이었으니 말이야.
그게 무서운 점이라고.
나는 그때 틀림없이 머리가 돌았을 거야.

계속해서 모두가 힘을 합쳐 나를 묘지 속에 밀어 넣고,

비석에 이름을 새기는 걸 상상했어.
주위는 온통 죽은 놈들뿐이고.
거참, 인간이 죽으면 모두 어김없이 뒷바라지해주게 마련이니까.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만 "네"라고 한마디했을 뿐 위로 올라가게 해주었어.
그거, 나쁘지 않더군. 웃기는 일이지만,
누구에게든 알 수 없는 말을 잔뜩 하기만 하면,
상대는 대개 이쪽에서 해달라는 대로 해주게 마련이지.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어린아이들이

다같이 어떤 게임을 하는 장면이 눈에 선하단다.
몇 천 명의 애들이 있을 뿐 주위엔 아무도 없어.
나 이외에는 어른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
나는 위험한 벼랑 끝에 서있는 거지. 내가 하는 일이란,
누가 잘못해서 벼랑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생기면,
그애를 붙잡아주는 거지.
말하자면 애들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보지도 않고 뛰잖니?
그런 때에 나는 어디선가 재빨리 달려나와서
그애를 잡아주는 거야.
하루종일 그 일만 하는 거라구.
호밀밭에서 붙잡아주는 역할,
즉, 호밀밭의 파수꾼이지.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건 그것밖엔 없는걸.
바보 같은 짓이란 건 알고 있다구.

어찌된 일인지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가 훨씬 쉬었어.

그 한가지 이유는, 이젠 잡히더라도
걱정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인지도 모르지.
정말이야. 아무렇지도 않았다구. 잡히면 잡히라지.
이렇게 생각한 거야.
한편으로는 그냥 잡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거든.

선생님이 위트가 없는 분이라는 뜻은 아냐.

사실 위트는 있는 분이니까.
하지만 '그래, 너와 펜시는 마침내 이별이로구나'
이런 말투를 쉴 새 없이 듣느다면,
때에 따라서는 신경에 거슬리는 수도 있다구.

상대방이 말하는 게 적어도 재미있고,

상대가 완전히 흥분해서 얘기하고 있다면,
그건 그대로 얘기하게 내버려두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열중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의 모습이 좋습니다.

나는 네가 지금 타락의 구렁텅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 타락은 특수한 타락, 무서운 타락인 것 같다.
타락해가는 인간에겐 만져 보아서 알 수 있는,
혹은 부딪쳐 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밑바닥이란 건 없단다.
그 인간은 다만 어디까지나 자꾸 타락해 갈 뿐이야.
세상엔,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자기가 놓여 있는 환경이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다고 생각해버리지.
그래서 찾아 헤매는 걸 단념해버려.
실제로 찾으려고 시작도 해보지 않고 그냥 단념해버리는 거야.
알겠니, 내 말뜻을?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일이 생기면 고귀한 죽음을 선택하려는 경향에 있다.
이에 반하여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일이 생기면
비굴한 삶을 선택하려는 경향에 있다.

교육이나 지식이 있는 인간 쪽이
자기의 생각을 대체로
명확히 표현하고, 대개는 자기의 생각을
끝까지 규명해 나가는 정열을 가지고 있으니까.
게다가 제일 중요한 것은 십중팔구 그런 사람이
학식이 없는 사상가보다도 겸허하다는 점이다.
알겠니, 내 말?

그 할머니의 그런 그릇된 생각을 정정해주는 건,

가령 내게 그럴 마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려웠을 거야.
게다가 그 할머니가 펜시를 꽤 좋은 학교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좋지.
백 살쯤이나 나이를 먹은 사람에게 새로운 걸 전해준다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니까 말이야.
상대는 그런 걸 듣기 싫어하거든.

많은 사람들이,

특히 이 병원에 있는 정신과 의사선생님들이
"이번 9월부터 학교에 돌아가게 되면 열심히 공부하겠느냐"라고
자주 묻는데 말이야.
그건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실제로 하기 전까지는
어떤 모양이 될 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잖니?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한 걸 후회하고 있어.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이 얘기에 나온 친구들이
지금 여기에 없어 쓸쓸하다는 것뿐이야.
이상한 일이지.
누구에게도 아무 얘기를 하지 않는 편이 좋았어.
얘기를 하고 나면 그때의 친구들이 지금 내 주변에 없다는 게
더욱 아쉬워지기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