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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움베르트 에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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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움베르트 에코

DidISay 2012. 1. 23. 02:52

우리는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까?
악의나 잔혹함에 분개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없지만,
어리석음에 분노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과는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 것은
양식(良識)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있는 어리석음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것에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 아주 까다로운
사람들조차도 자기 안의 어리석음을 없애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 저자 서문 중에서 -



"이놈의 나라엔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우리는 서로 질세라 앞다투어 그렇게 뇌까린다.
그러다가 자학적인 기질이 발동하면,
외국은 모든 점에서 우리보다 낫다고 덧붙이기 일쑤다.
더러는 그런 푸념에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합리적인 양식이 인종과 국적과 사회계층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가 골고루 나누어 가진 자질이듯이,
무능력 - 또는 어리석음도
인류의 천부적인 특성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바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위에서 말한 일들을 맡고 있는
바보들의 봉급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택시운전사란 온종일 다른 운전자들과의 싸움을 벌이면서
차들이 붐비는 속을 요리조리 헤쳐 나가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사람의 형상을 한 피조물은 무조건 혐오하게 마련이다.
그런 점을 두고 세상물정 모르는 상류층의 급진주의자들은
택시운전사들이 모두 파시스트라고 말한다. 이는 그릇된 생각이다.
택시운전사들은 이데올로기 문제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이 노동조합의 가두행진을 싫어하는 건
정치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라
시위대가 교통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희극의 실행 여부가 계급을 가르는 새로운 장벽이 되었다.
즉, 옛날에는 마음놓고 노예를 비웃는 데서
주인임이 인정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마치
노예들만이 주인을 조롱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드골의 코나 아넬리의 주름살이나 미테랑의 송곳니를
아무리 웃음거리로 만든다 해도, 놀림을 당하는 그들이
놀리는 자들보다 언제나 더 강한 쪽이 될 것임을
우리는 직감으로 알고 있다.

무해한 얼간이를 조롱하던 희극적인 인물은 퇴장하고
자기의 박약성을 스스로 드러내며 아주 행복해하는
정신박약자를 직접 등장시켜 스타를 만든다. 누구도 불만이 없다.
바보는 자기를 드러내서 좋고, 방송사는 배우에게
보수를 지급할 필요 없이 쇼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좋고,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가학증을 충족시키면서
타인의 어리석음을 조롱할 수 있어서 좋다.

만일 당신이 사형에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마땅히 사형수가 버둥거리고 껄떡거리고
지지직 타들어가고 소스라치고 움찔거리고 콜록거리다가
저의 더러운 영혼을 하느님께 되돌리며
숨을 거두는 장면을 보아야 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더 솔직했다.
그들은 처형장면을 지켜보기 위해 표를 샀고,
죽어가는 사형수를 보면서 미친듯이 좋아라 했다.
당신 역시 사형이라는 최고의 정의를 지지한다면, 먹고 마시면서,
아니면 무엇이든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좋아해야> 마땅하다.
사형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면 마치 그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될 일이다.

가마우지 : 농담하지 마세요.
아직도 사람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벌써 오랜 전 얘기예요. 오죽하면 유니세프에서까지
자기네 일을 도와달라고 나에게 제의하겠어요?
그들은 아프리카의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눈에는 파리 떼가 달라붙어 있고
배가 공처럼 잔뜩 부풀어 있는 아이들을 말이에요.
하지만 그런 모습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줘요.
사람들은 얼른 채널을 돌려 버리지요.
동물은 그와 달리 사람들로 하여금 측은한 마음을 갖게 해요.

처음에 매스 미디어는 우리로 하여금
가상세계를 현실로 믿게 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현실을 가상으로 여기게 한다.
TV 화면이 현실을 많이 보여주면 보여 줄수록
우리의 일상은 점점 더 영화처럼 되어간다.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우리는 몇몇 철학자의 주장과 비슷한
이런 식의 생각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세계에는 오로지 우리만이 존재하며 우리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신이나 악마가 우리의 눈앞에 투사한 영화일 뿐이라고.

진짜 힘있는 사람은 걸려오는 전화를 일일이 받지 않는다.
늘 회의중이라서 전화를 직접 받을 수 없는 자,
그가 바로 힘있는 자이다.
경영진의 말석이라도 차지한 사람에게는
성공의 두 가지 상징인 개인 화장실 열쇠와
<이사님은 지금 회의중이십니다>라고 대답하는
여비서가 있게 마련이다.
이렇듯 휴대폰을 권력의 상징으로 과시하는 자는
오히려 자기가 말단사원의 한심한 처지에 놓여있음을
만인 앞에서 고백하는 셈이다.

위에서 말한 것이 바로 상류층 사람들이 시가를 피우는 이유이고,
사회가 시가를 관대하게 용인하는 이유이다.
설령 시가를 피우다가 건강을 해친다 할지라도,
그것은 품격 높은 자살행위일 뿐,
가난뱅이들이 궐련을 피우다가
개죽음을 당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 하나를 덧붙이고자 한다.
청교도의 나라, 위생과 보건의 나라, 수많은 질병과 죽음이
찾아올 것임을 알리는 보건부의 불길한 경고문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담뱃갑에 새겨넣은 나라 미국에서
반흡연 투쟁이 한창 고조되어 있는 이 때에,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세상에, 그 나라에서는 약국에서 담배를 팔고 있다.
참 알다가도 모를 나라이다.

설령 자기는 차라리 잊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있다 할지라도 출판사들이 그가 잊혀지도록
그냥 내버려둘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글다운 글은 한 줄도 쓴 적이 없는 작가들마저
망각 속에서 끌어내는 판국이니 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후손이란
식탐은 많으나 미식가는 못되는 자들이다.

그들은 사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죽기 전의 삶이 무척 마음에 들기 때문에
그것을 당장 놓아버리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들은 천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가능하면 나중에 가기를 바란다.


 
 
<맞습니다>라는 말로 대답하지 않는 방법

우리는 구어(口語)에 범람하는 판에 박은 말을
상대로 한 싸움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맞습니다>도 그런 말 중의 하나다.
요즈음엔 너나 할 것 없이 동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맞습니다> 또는 <맞아요>라고 대답한다.
그 말이 널리 사용되게 된 데에는 초창기의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에서 정답임을 나타내기 위해 영어의
<댓스 라이트>나 <댓스 커렉트>를 모방했던 것도 한몫을 했다.
따라서 <맞습니다>라고 대답하다고 해서 그것을 꼭
어법에 맞지 않는다거나 예의에 어긋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텔레비전을 통해서 말을 배운
사람을 스스로 드러낸다는 점이 문제가 될 뿐이다.
<맞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어느 세제회사의 경품으로 받은 것임을 누구나 뻔히 아는
백과사전을 자기 집 거실 서가에 버젓이 진열해놓는 것과 같다.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

핸드폰을 가진 자를 비난하는 건 당신의 자유이다. 그러나 그전에 상대가 다음의 다섯 가지 부류 중에서 어디에 속하는지를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첫째 부류는 신체적인 결함이 있는 자이다. 이들은 언제라도 의사나 24시간 의료 서비스 센터 측과 연락을 취할 준비를 해둬야 한다. 이 점에서는 우리는 이런 유익한 기구를 통해 그들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과학 기술에 대해 최대한의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핸드폰을 사용하는 두 번째 부류는 이런저런 긴박한 직업상의 이유로 비상 사태가 발생했을 때 통화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소방서장, 일반 개업 의사, 늘 싱싱한 시체를 기다리는 장기 이식 전문의, 항상 업무 대기를 하고 있지 않으면 세계가 부통령의 수중에 넘어가게 돼있는 미국 대통령). 그들의 눈에 핸드폰이라는 기계는 꾹 참고 견뎌내야 하는 현실, 그러나 즐긴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든 엄정한 현실이다.

세 번째 부류는 간통중인 남자 즉 간부(姦夫)이다. 핸드폰이 등장함으로써 이들은 마침내 생애 처음으로 다른 가족이나 비서, 심술궂은 동료들 때문에 전화 통화를 방해 당하는 위험 없이 몰래 사귀는 애인한테서 소식을 접수 하게 되었다. 전화번호를 그와 그녀(또는 그와 그, 또는 그녀와 그녀. 이 이외의 다른 결합이 가능한지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단 두 사람만 알고 있으면 그걸로 모든 조건은 충족된다. 이상으로 언급한 세 가지 범주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사실상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 한해서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또는 장례식이 진행되는 도중에 그들이 시끄럽게 통화를 해대서 우리의 신경을 어지럽히는 일이 생기더라도 기꺼이 견딜 자신이 있다. 간통하는 사내들에 대해 서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이, 그들은 대체로 지극히 신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듣는 데서 통화하는 일이 없다.

그밖에도 아직 두 가지 부류가 남아 있다. 이들은 실로 골치 덩어리들이다.(이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문제를 일으킨다.) 첫 번째 부류는 같이 있다가 막 헤어지게 된 친구들이나 친족들과 사소한 화제를 놓고 계속 수다를 떠는 게 불가능해진다면 아무데도 가지 못할 자들이다. 이들은 왜 그렇게 수다를 떨어대면 안 되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끝끝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충동을 뿌리칠 수 없다면, 혼자 고적한 시간을 즐기면서 그 순간에 하는 일에 몰두할 수 없다면, 자신의 심경이 공허 하다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는 못 뱃길 지경이라면, 그 결과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는 행위를 자신의 개성이나 상표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런 자들은 어쩔 수 없이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들은 우리를 몹시 피곤하게 만든다.

하지만 무조건 그들을 나무라기만 해서는 못쓴다. 가슴속에 끔찍스러울 정도의 공허함을 갖고 있는 자들이라는 걸 이해해 줘야 한다. 동시에 우리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면서 그들을 용서해야 하며, 우리 자신이 그들보다 성격이 낫다는 사실에 대해 우쭐거려서는 안 된다. 정신적인 우월감, 자비심의 결핍이라는 악덕에 빠져 들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이다. 그들을 여러분의 고통받는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쪽 귀도 그들의 수다를 향해 돌려대는 마음을 갖기 바란다.

마지막 부류(사회적 지위가 밑바닥이나 다름없는 가짜 핸드폰 판매상을 포함한) 에 대해 언급할 차례가 되었다. 이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이 매우 인기 있는 직종의 인사란걸 과시하고 싶어한다. 특히 복잡한 사업 얘기를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자 애쓴다.

비행기나 식당, 기차 같은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통화 내용을 엿듣게 되는데,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얘기가 있다. 금전 거래 문제, 빠뜨린 금속 부품 선적 문제, 한 상자 분량의 넥타이에 대한 미지불 어음 문제, 그리고 당사자 스스로 생각하기에 록펠러 같은 사람이 다룸직한 문제로 여겨지는 이런저런 얘기 등등.

핸드폰 같은 기계는 계층을 구분짓는 기준을 영속화하는 데 일조함으로써, 잔인하게도 출신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이 듣는 자리에서 핸드폰을 통해 떠들어 대는 졸부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추측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격세 유전되는 성향이 있는 무산 계급 고유의 결점 때문에 저들은 엄청난 돈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어육용 식탁 나이프를 사용하는 법을 알고자 애쓰지 않을 것이다. 고급 승용차 뒤창에는 플러시 천으로 만든 원숭이 인형 같은 걸 매달아 두었을 것이다. 전용 제트기의 계기판에 연예인의 사진을 붙여놨을 것이다. 모국어인 이탈리아 어를 쓰는 중간중간에 폼을 재고자 같은 영어 단어를 섞을 것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결과인데, 저런 자들은 생전에 절대로 고상한 공작 부인한테 초대받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왜 공작 부인이 자신을 토대하지 않는 건지 이유를 떠올리고자 꽤나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영국 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써도 될 정도로 긴 요트를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이런 자들은 정작 록펠러 같은 이는 핸드폰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록펠러는 유능한 비서가 가득 들어찬 넓은 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할아버지가 죽어 간다거나 하는 아주 위급한 일이 벌어졌을 경우에도 운전사가 직접 나타나서 그의 귀에 대고 전할 말을 속삭일 뿐이다. 진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자는 걸려 오는 전화마다 일일이 대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자이다.

속담에도 있듯이 늘 회의에 참석중인 자, 그가 바로 힘 있는 자이다. 심지어 가장 지위가 낮은 관리 계층의 경우에도, 그가 성공한 자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임원 화장실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비서가 던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따로 남기실 메시지 없습니까?"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서 핸드폰을 과시하는 자들, 이런 자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안간힘을 써가며 힘겹게 살아가는 하위직 인사라는 걸 웅변 으로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섹스를 나누고 있을 때조차도 최고 경영자가 나타나면 재빨리 일어나서 차려자세를 취해야 하는 지위에 속해 있다는 얘기이다.

이런 자는 익사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늘 채권자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녀야 한다. 딸아이의 첫 번째 영성체 의식이 진행되는 현장에서도 초과 인출을 이유로 은행 측에게 박해당한다. 그가 으스대면서 보란 듯이 남들이 듣는 자리에서 멋대로 핸드폰을 사용하는 건 위와 같은 문제들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 사회적으로 배척당하고 있지만 이의를 제거할 힘이 없는 신세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이다.

-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