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눈먼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본문
장님들이 살아가는 어둠이라는 것은 단순히 빛의 부재일 따름이며, 우리가 실명 상태라고 부르는 것은 존재와 사물의 외양을 덮고 있는 어떤 것일 뿐, 그 검은 베일 뒤에는 모든 것이 말짱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반면 그가 지금 빠져든 백색의 상태는 너무 환하고, 너무 전면적이어서, 색깔만이 아니라 사물과 존재 자체를 흡수해 버렸다. 아니, 삼켜버렸다. 그래서 훨씬 더 안 보였다.
선을 행하다 보면 언제나 함정에 빠지기 마련이고 죄와 악을 행하는 자는 대체로 억세게 운이 좋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가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마자 문이 활짝 열렸다.
지금 곧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이 말을 다 맺기도 전에, 당장이라도 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니면 자고 일어나 눈을 떠보니 앞이 안 보이게 될지도 몰라, 아니면 자려고 눈을 감는데 눈이 멀지도 모르지, 그럼 난 그게 그냥 잠이 오는 건 줄 알겠지.
흔히들, 주검과 직면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악감정도 자연스럽게 그 힘과 독을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래된 증오는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사실이며, 문학과 현실에는 그것을 입증하는 엄청난 증거가 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하얗고, 밝고, 찬란할 뿐이었다.
이런 돼지들, 꼭 돼지들처럼 놀고 있군, 그러나 그들은 돼지가 아니었다. 한 눈먼 남자와 한 눈먼 여자일 뿐이었다. 그들도 아마 서로에 대해서는 그것밖에 알지 못할 터였다.
지금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선을 행하다 보면 언제나 함정에 빠지기 마련이고 죄와 악을 행하는 자는 대체로 억세게 운이 좋다.
그래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거야. 반은 무관심으로, 반은 악의로.
상대가 전화를 받자 의사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얼른 말했다. 그래, 괜찮아, 고마워. 접수대에 있는 간호사가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인사한 것이 틀림없었다. 의사가 대꾸한 말은 우리가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때 하는 말이었다. 그럴 때 우리는, 괜찮아, 하고 말한다.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것은 일반적으로 용기있는 태도로 여겨지며, 오직 인류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남들 앞에서 오줌을 눈다는 것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 있는 사람들이 그가 오줌누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줌누는 소리는 경망스럽게 들리며, 다른 소리와 혼동되지 않는 독특한 소리를 낸다.
사람의 진짜 집은 그가 잠자는 곳.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그 결과를 생각해본다면, 곧 즉각적인 결과, 확률이 높은 결과, 가능한 결과, 상상할 수 있는 결과를 차례대로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우리 머리에 처음 떠오른 생각에 가로막혀 절대 어떤 한계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리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가 완전히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적어도 완전히 동물처럼 살지는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합시다.
설마 우리가 여기 영원히 갇혀 있을 거란 말씀은 아니겠죠. 첫번째로 눈먼 남자가 말했다. 영원히라니, 천만에, 영원은 늘 너무 긴 시간이지.
이것이 눈먼 자들이 땅으로 옮겨지면 이렇게 번역될 수 있겠다. 어제는 우리도 볼 수 있었으나, 오늘은 볼 수 없다. 내일은 다시 볼 수 있겠지. 마지막 말은 약간 물어보는 듯한 느낌으로 해야 한다. 막 말을 뱉으려는 순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신중한 태도 때문에, 희망 섞인 결론에 약간의 의심을 덧붙이는 것처럼.
실명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직업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으니까. 그러나 갑자기 눈이 멀게 된 경찰관은 원래부터 눈이 먼 경찰관과는 달리 무력하기 짝이 없다.
모든 병실의 눈먼 사람들 다수는 내일에 대한 걱정없이, 미리 돈을 내면 결국 형편없는 음식이 나오게 된다는 일반적인 사실도 잊고 , 깊은 잠에 빠졌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오늘 겪은 원통한 일을 명예롭게 처리할 방법을 찾느라 헛된 고민을 하다가 지쳐 하나씩 잠이 들어, 오늘보다 나은 날, 더 풍요롭지는 않더라도 더 자유로운 날을 꿈꾸고 있었다.
둘이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았을까. 어떻게라니, 당연히 목소리겠지. 눈이 필요없이 알 수 있는 것은 피붙이의 못소리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눈이 멀었다고 표현하는 사랑도 그 나름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일찍 일어난다고 해서 더 빨리 죽는 것은 아니다.
침묵은 사라졌다. 바깥에 있는 삶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마 아무도 이 날까지는 눈먼 사람들의 외침이 이렇게 무시무시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다 보면 우리도 결국 소리를 지르게 된다.
총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권력을 찬탈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눈먼 회계사의 심각한 실수였다. 결과는 그 정반대였던 것이다. 그가 총을 쏠 때마다 총알이 거꾸로 튀고 있는 셈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총을 쏠 때마다 조금씩 권위를 잃어갔다. 따라서 총알이 다 떨어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보자.
누구나 약해질 때가 있죠. 우리가 울 수 있다는 건 좋은 거예요. 때로는 눈물이 우리를 구해주기도 하거든요. 울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을 때도 있는 거죠.
자신의 삶,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누구도 시간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은 기계 역시 영원히 지속될 가능성은 없었다.
존엄성이란 값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양보하기 시작하면, 결국 인생이 모든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이기주의라고 부르는 그 제 2의 살갗 없이 태어난 인간은 없으며, 제 2의 살갗은 너무 쉽게 피를 흘리는 원래의 살갗보다도 훨씬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
우리가 심한 고난을 당해 통증과 괴로움에 시달릴 때, 그때는 우리의 본성이 지닌 동물적 측면이 가장 분명하게 부각된다.
그들은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어린아이들처럼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이 사람들을 실망시킨다면,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무엇에든 익숙해진다는 것, 특히 사람이기를 포기했을 경우에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그녀 역시 눈이 멀아야 했디.
의사의 아내는 집안의 수도꼭지에서 그 귀중한 액체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문명의 결점이다. 우리는 집안에 들어오는 수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급수 밸브를 열고 잠그는 사람들, 전기가 필요한 급수탑과 펌프, 부족분을 확인하고 여유분을 관리할 수 있는 컴퓨터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곤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을 하는 데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내심을 가져라. 시간이 제 갈 길을 다 가도록 해주어라. 운명은 많은 우회로를 거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아직도 확실히 깨닫지 못했는가?
이제 잠을 좀 자도록 해. 내일은 또 다른 날이 될 테니까. 또 다른 날일 수도 있고, 똑같은 날일 수도 있다.
그곳에서는 그런 타락이 다른 사람들 탓이라고 핑계댈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게 안돼요. 이제는 선과 악에 관한 한 우리 모두 평등해요.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냐고는 묻지 말아주세요. 눈먼 것이 드문 일이었을 때 우리는 늘 선과 악을 알고 행동했어요.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에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해요.
말이란 것이 그렇다. 말이란 속이는 것이니까, 과장하는 것이니까, 사실 말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두 마디나, 세 마디나, 네 마디 말, 그 자체로는 단순한 말,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흥분한다. 그 말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살갗을 뚫고, 눈을 뚫고 겉으로 튀어나와 우리 감정의 평정을 흩트려놓는 것을 보며 흥분한다.
우리는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두려워서, 늘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용서해 줄 구실을 찾으려고 하죠. 우리 차례가 될 때를 대비해 미리 우리 자신에 대한 용서를 구해놓듯이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거지.
어쨌든 달라지지 않는 것은 꼭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미리 알 수 없는 거예요. 기다려봐야 해요. 시간을 줘봐야 해요.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시간이에요. 시간은 도박판에서 우리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예요. 그런데 혼자 손에 모든 카드를 쥐고 있어요. 우리는 삶에서 이길 수 있는 카드들이 어떤 것인지 추측할 수밖에 없죠. 그게 우리 인생이에요.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선을 행하다 보면 언제나 함정에 빠지기 마련이고 죄와 악을 행하는 자는 대체로 억세게 운이 좋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가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마자 문이 활짝 열렸다.
지금 곧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이 말을 다 맺기도 전에, 당장이라도 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니면 자고 일어나 눈을 떠보니 앞이 안 보이게 될지도 몰라, 아니면 자려고 눈을 감는데 눈이 멀지도 모르지, 그럼 난 그게 그냥 잠이 오는 건 줄 알겠지.
흔히들, 주검과 직면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악감정도 자연스럽게 그 힘과 독을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래된 증오는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사실이며, 문학과 현실에는 그것을 입증하는 엄청난 증거가 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하얗고, 밝고, 찬란할 뿐이었다.
이런 돼지들, 꼭 돼지들처럼 놀고 있군, 그러나 그들은 돼지가 아니었다. 한 눈먼 남자와 한 눈먼 여자일 뿐이었다. 그들도 아마 서로에 대해서는 그것밖에 알지 못할 터였다.
지금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선을 행하다 보면 언제나 함정에 빠지기 마련이고 죄와 악을 행하는 자는 대체로 억세게 운이 좋다.
그래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거야. 반은 무관심으로, 반은 악의로.
상대가 전화를 받자 의사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얼른 말했다. 그래, 괜찮아, 고마워. 접수대에 있는 간호사가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인사한 것이 틀림없었다. 의사가 대꾸한 말은 우리가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때 하는 말이었다. 그럴 때 우리는, 괜찮아, 하고 말한다.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것은 일반적으로 용기있는 태도로 여겨지며, 오직 인류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남들 앞에서 오줌을 눈다는 것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 있는 사람들이 그가 오줌누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줌누는 소리는 경망스럽게 들리며, 다른 소리와 혼동되지 않는 독특한 소리를 낸다.
사람의 진짜 집은 그가 잠자는 곳.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그 결과를 생각해본다면, 곧 즉각적인 결과, 확률이 높은 결과, 가능한 결과, 상상할 수 있는 결과를 차례대로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우리 머리에 처음 떠오른 생각에 가로막혀 절대 어떤 한계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리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가 완전히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적어도 완전히 동물처럼 살지는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합시다.
설마 우리가 여기 영원히 갇혀 있을 거란 말씀은 아니겠죠. 첫번째로 눈먼 남자가 말했다. 영원히라니, 천만에, 영원은 늘 너무 긴 시간이지.
이것이 눈먼 자들이 땅으로 옮겨지면 이렇게 번역될 수 있겠다. 어제는 우리도 볼 수 있었으나, 오늘은 볼 수 없다. 내일은 다시 볼 수 있겠지. 마지막 말은 약간 물어보는 듯한 느낌으로 해야 한다. 막 말을 뱉으려는 순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신중한 태도 때문에, 희망 섞인 결론에 약간의 의심을 덧붙이는 것처럼.
실명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직업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으니까. 그러나 갑자기 눈이 멀게 된 경찰관은 원래부터 눈이 먼 경찰관과는 달리 무력하기 짝이 없다.
모든 병실의 눈먼 사람들 다수는 내일에 대한 걱정없이, 미리 돈을 내면 결국 형편없는 음식이 나오게 된다는 일반적인 사실도 잊고 , 깊은 잠에 빠졌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오늘 겪은 원통한 일을 명예롭게 처리할 방법을 찾느라 헛된 고민을 하다가 지쳐 하나씩 잠이 들어, 오늘보다 나은 날, 더 풍요롭지는 않더라도 더 자유로운 날을 꿈꾸고 있었다.
둘이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았을까. 어떻게라니, 당연히 목소리겠지. 눈이 필요없이 알 수 있는 것은 피붙이의 못소리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눈이 멀었다고 표현하는 사랑도 그 나름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일찍 일어난다고 해서 더 빨리 죽는 것은 아니다.
침묵은 사라졌다. 바깥에 있는 삶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마 아무도 이 날까지는 눈먼 사람들의 외침이 이렇게 무시무시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다 보면 우리도 결국 소리를 지르게 된다.
총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권력을 찬탈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눈먼 회계사의 심각한 실수였다. 결과는 그 정반대였던 것이다. 그가 총을 쏠 때마다 총알이 거꾸로 튀고 있는 셈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총을 쏠 때마다 조금씩 권위를 잃어갔다. 따라서 총알이 다 떨어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보자.
누구나 약해질 때가 있죠. 우리가 울 수 있다는 건 좋은 거예요. 때로는 눈물이 우리를 구해주기도 하거든요. 울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을 때도 있는 거죠.
자신의 삶,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누구도 시간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은 기계 역시 영원히 지속될 가능성은 없었다.
존엄성이란 값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양보하기 시작하면, 결국 인생이 모든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이기주의라고 부르는 그 제 2의 살갗 없이 태어난 인간은 없으며, 제 2의 살갗은 너무 쉽게 피를 흘리는 원래의 살갗보다도 훨씬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
우리가 심한 고난을 당해 통증과 괴로움에 시달릴 때, 그때는 우리의 본성이 지닌 동물적 측면이 가장 분명하게 부각된다.
그들은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어린아이들처럼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이 사람들을 실망시킨다면,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무엇에든 익숙해진다는 것, 특히 사람이기를 포기했을 경우에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그녀 역시 눈이 멀아야 했디.
의사의 아내는 집안의 수도꼭지에서 그 귀중한 액체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문명의 결점이다. 우리는 집안에 들어오는 수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급수 밸브를 열고 잠그는 사람들, 전기가 필요한 급수탑과 펌프, 부족분을 확인하고 여유분을 관리할 수 있는 컴퓨터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곤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을 하는 데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내심을 가져라. 시간이 제 갈 길을 다 가도록 해주어라. 운명은 많은 우회로를 거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아직도 확실히 깨닫지 못했는가?
이제 잠을 좀 자도록 해. 내일은 또 다른 날이 될 테니까. 또 다른 날일 수도 있고, 똑같은 날일 수도 있다.
그곳에서는 그런 타락이 다른 사람들 탓이라고 핑계댈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게 안돼요. 이제는 선과 악에 관한 한 우리 모두 평등해요.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냐고는 묻지 말아주세요. 눈먼 것이 드문 일이었을 때 우리는 늘 선과 악을 알고 행동했어요.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에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해요.
말이란 것이 그렇다. 말이란 속이는 것이니까, 과장하는 것이니까, 사실 말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두 마디나, 세 마디나, 네 마디 말, 그 자체로는 단순한 말,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흥분한다. 그 말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살갗을 뚫고, 눈을 뚫고 겉으로 튀어나와 우리 감정의 평정을 흩트려놓는 것을 보며 흥분한다.
우리는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두려워서, 늘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용서해 줄 구실을 찾으려고 하죠. 우리 차례가 될 때를 대비해 미리 우리 자신에 대한 용서를 구해놓듯이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거지.
어쨌든 달라지지 않는 것은 꼭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미리 알 수 없는 거예요. 기다려봐야 해요. 시간을 줘봐야 해요.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시간이에요. 시간은 도박판에서 우리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예요. 그런데 혼자 손에 모든 카드를 쥐고 있어요. 우리는 삶에서 이길 수 있는 카드들이 어떤 것인지 추측할 수밖에 없죠. 그게 우리 인생이에요.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세상의 단 한명을 제외하고 모든사람들이 눈이 먼다면
어떻게 될까..이런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유명한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
역시나 너무나 좋았다.
흥미로운 주제로 심각할 수 있는 소재들을 잘 녹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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