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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

DidISay 2012. 1. 23. 03:35
 
똑같은 아파트 건물들이 줄지어 선 어떤 거리에서 나는 빨간 현관문 앞에 멈추어 섰다. 갑자기 그곳에서 내 남은 생을 보내고 싶다는 강렬한 갈망이 솟아올랐다. 머리위의 2층에는 커다란 창이 세 개 있었다. 커튼은 없었다. 벽은 흰색이었고, 장식이라고는 파란색과 빨간색의 작은 점들로 덮인 커다란 그림 한 점뿐이었다. 벽을 향하고 있는 떡갈나무 책상, 커다란 책꽂이,팔걸이의자가 보였다. 이 공간이 내포한 삶을 가지고 싶었다.
 
자전거를 가지고 싶었다. 매일 저녁 빨간 현관문에 열쇠를 꽂고 돌리고 싶었다.어스름 녘에 커튼 없는 창가에 서서 맞은 편의 똑같은 아파트들을 바라보다가 에르원트소엡 멧 로게브로드 엔 스펙(호밀빵과 베이컨을 겻들인 콩 수프)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하얀 방에서 하얀 시트가 덮인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고 싶었다.
 
왜 다른 나라에서 현관문 같은 사소한 것에 유혹을 느낄까? 왜 전차가 있고 사람들이 집에 커튼을 달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떤 장소에 사랑을 느낄까? 그런 사소한 (또 말 없는) 외국적 요소들이 강렬한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 터무니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다른 삶에서도 비슷한 반응양식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의 감정이 상대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방식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또 상대가 구두를 고르는 취향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기도 한다. 이런 자잘한 일에 영향을 받는다고 우리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세밀한 것들도 그 속에 풍부한 의미를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여행의 기술 中-


 

난 알랭 드 보통의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책을 읽을 때면 일상이나 사물에 대한 깊은 사고를 느끼게 되어 감탄하긴 하지만, 왠지 냉소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한다는 느낌을 받아 끈적한 정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의 책을 우울할 때나 슬플 때보다는 냉정함을 유지하고 싶거나 침착해지고 싶을 때...이를테면 이성적인 누군가의 조언을 얻고싶은 기분이 들때 집어드는 편이다.

여행이라..

내게 여행은 휴식에 가깝다. 뭔가 피곤하고 쉬고 싶을 때

일상에서 벗어난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어디론가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 개념이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이나 최근에 읽은 책 '고갱, 타히티의 관능'의 작자들 모두 여행에서 일상에서 벗어난 행복을 발견하거나 지나치게 기대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여행지 역시 익숙해진다면 결국 똑같은 것이 되기때문에..

결국 자신의 마음의 조절과 행복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어느 곳있는지와는 무관하게 자신에게 평안을 가져다 줄수있다고 해야하겠다.

알랭 드 보통의 특징인 세밀한 묘사와 사색적인 문제가 잘 살아있는 글이다. 또한 유명한 문인들이나 학자들의 글에서 모티브를 차용하였고, 각 장마다 소주제가 설정되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