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들 본문
나무
인간은 눈보라 속에 서 있는 나무 줄기하고 다를 게 없다. 나무는 미끄러운 눈을 밟고 서 있다. 슬쩍 밀면 간단히 밀려날 것 같다. 물론 그렇지는 않다. 뿌리를 굳게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
독신자.
나이 들어서 독신으로 산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어쩌다 하룻밤 같이 보내고 싶어지면 품위 있게 애원해야 한다. 몸이 아플 때도 텅 빈방안에서 몇 주일이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한다. 언제나 문 앞에서 헤어져야 할 뿐 아내와 나란히 계단을 오르는 일도 없다.
방안에 들어와 봤자 옆집으로 통하는 쪽문만 보일 뿐이고, 날마다 저녁거리를 사들고 돌아와야 한다. 남의 집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에 경탄하며 "나는 하나도 없다"고 중얼거릴 수도 없다. 그것만이 아니다. 젊은 시절에 보았던 독신자를 흉내내어 외모나 몸가짐을 연출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괴로울 것이다. 누구든지 지금, 혹은 앞으로 그런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주먹으로 이마를 칠 일이다.
관찰
나 역시 내키지 않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방금 방에서 유령을 만났거든요"
"기분이 안좋은 걸 보니 수프 먹다 머리카락이라도 건져낸 것 같군요"
"농담도 잘하는군요. 그래도 유령은 역시 유령이니까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유령 따위를 믿지 않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맞아요. 내가 유령을 믿는다고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믿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유령이 진짜 나타나도 무서워하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그래요.그건 이차적인 공포일 뿐입니다. 진짜 공포는 유령이 나타나는 원인입니다. 그 공포는 절대 벗어날 수 없어요. 내가 지금 그러 상태입니다."
그리곤 안절부절 못하면서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령이 무섭지 않다면 그 원인을 침착하게 생각하시지 그러세요!"
"당신은 아직 유령하고 얘기한 적이 없는 것 같군요. 유령이란 놈은 확실한 게 없습니다. 언제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지요. 놈들 자신도 유령의 존재에 대하여 우리 이상으로 의혹을 갖고 있답니다. 유령의 무상함을 생각해 보면 무리도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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