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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알랭 드 보통

DidISay 2012. 1. 23. 04:16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자신 있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 상대를 향한 강렬한 욕망은 유혹에 필수적인 무관심에 방해가 된다. 또 상대에게 느끼는 매력은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완벽함에 자기 자신을 견주어 보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아는 누구와 같이 있든 안정된 동일성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한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나는 클로이의 욕망을 찾아내고 그에 따라 나 자신을 바꾸려는  진정성이 결여된 시도를 되풀이했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침묵하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 되고,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침묵하면 구제불능일 정도로 따분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이 분명해지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침묵과 어줍음은 욕망의 애처로운 증거로서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상대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능란한 유혹솜씨를 발휘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어줍게 유혹하는 사람이야말로 상대를 향한 진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관대하게 봐줄 수도 있다. 정확한 말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확한 말을 의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 우리가 들어간 식당과 같은 이름을 가진 <위험한 관계>라는 책을 보면, 메르퇴유 후작 부인은 발몽자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몽 자작의 연애편지가 너무 완벽하고 너무 논리적이기 때문에 진정한 연인의 말로 볼수 없다고 까탈을 부린다. 진정한 연인의 생각은 두서가 없고, 말은 조리가 안 선다는 것이다. 언어는 사랑에 걸려 비틀거리고, 욕망은 명료한 표현을 찾디 못한다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고,외교를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화려한 행위들이다. 그러나 꾸짖고, 웃고,사고,팔고,사랑하고,미워하고, 가족과 함께-또 너 자신과 함께-상냥하고 정의롭게 함께 사는 것, 늘어지거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은 더 주목할 만한 일이고, 더 드물고, 더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건 그런 한적한 삶에서 이행해 나가는 의무들은 다른 화려한 삶의 의무들만큼이나 어렵고 또 긴박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