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본문

그들 각자의 무대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DidISay 2012. 1. 23. 14:37
<피아니스트>은 어찌 보면 상당히 진부한 배경과 내러티브를 견지한 회고록처럼 읽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불운한(이 의미는 상당히 다중적이다. 그가 살아온 인생 역정과 작품들 모두를 포함해서) 작가 로만 폴란스키의 성장배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관객들이라면 그가 왜 이 이야기에 매혹되고 다시는 들 수 없을지도 모르는 메가폰을 용기있게 부여잡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33년 파리 태생인 폴란스키는 부모님과 함께 폴란드로 이주하게 되고, 그는 이곳 유태인 수용소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잃는다. 그것도 가스실에서 말이다. 그리하여 폴란스키는 폴란드 역사에서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영화화하는데 용기를 가졌다. 이 의지가 만들어낸 것이 바로 실존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한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를 보면서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폴란스키가 잡아낸 현실적 이미지와 쇼팽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다. 폐허가 된 바르샤바 게토에서 울려 퍼지는 쇼팽의 음악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여기에 켄 로치의 <빵과 장미>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드리언 브로디의 처절하고도 강인한 연기가 그 찡함의 깊이를 더한다. 폴란스키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폴란드 바르샤바의 역사를 스필만이란 한 사람의 아티스트의 시각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물론 이러한 시선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스필만의 눈을 통해 보여진 나치의 잔혹성, 게토에서의 강제 이주를 통한 집단 학살에 대항한 폴란드 인들의 저항(물론 무장 저항도 포함), 마치 쉰들러의 냄새를 풍기는 독일 장교 윌름 호센펠드(토마스 크레슈만 분) 등은 대체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폴란드의 변화를 담고는 있지만 너무도 주관적인 시선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나치에 무장 봉기를 일으킨 게토 내의 레지스탕스들의 장렬한 죽음에 비해 개인으로서의 스필만이 펼치는 아슬아슬한 생존 투쟁이 더욱 부각되어 보이는 것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 칸느영화제가 <피아니스트>에 황금종려상을 쥐어준 데에는 앞서 언급한 바처럼 불운한 거장에 대한 마지막 예우일수도, 진정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그려낸 폴란스키에 대한 찬사일수도 있다는 양면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로만 폴란스키의 신작 <피아니스트>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약간의 짜증과 허무한 웃음을 유발할 수도 있겠지만,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것은 폴란스키라는 거장이 바라보는 폴란드에 대한 깊은 애정이며, 여기에 폴란드의 위대한 작곡가 쇼팽의 곡을 직접 연주한 (그리고 직접적으로 이 시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아름다운 선율이 더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폴란스키와 스필만의 만남.
이것이 <피아니스트>가 전해 줄 감동의 근원이다


'그들 각자의 무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세암  (0) 2012.01.23
The Experiment, 2001  (0) 2012.01.23
백야 (White Nights , 1985)  (0) 2012.01.23
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 1997)  (0) 2012.01.23
폴락(pollock)  (0) 2012.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