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고등어, 공지영 본문
겁이 났어요.
명우 씨한테 노은림이라는 여자는 혹시 먼 불빛이 아닐까 하고,
먼 불빛이라 아련하고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건 아닐까 하고,
한계령 가서 생각했어요.
나도 불쌍한데,
그 여자만 불쌍한 게 아니라 나도 불쌍한데,
다만 난 불쌍해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어쩌면 사랑을 한다는 일이,
산다는 일이 사실은 훨씬 더 삼류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실은 삼류소설 속에 구질구질한 삶의 실체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지겨운 진실들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은 일류 소설처럼 정제되고 억제되고
그리고 구성이 뚜렷하여 인과 관계가 확실한
한 편의 드라마는 아닌 것이다.
사랑을 해 보지 않고 상처를 받지 않는 것보다
사랑을 해 보고 상처도 입는 편이 훨씬 더 좋다는
어떤 작가의 글을 읽었다.
아마 이 작가는 평생 한 번도 사랑을 해 보지 않았으리라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나서 그것이 끝나고 난 뒤의 무참함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결코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만일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리라
생애 단 한 번 허용된 사랑이라고 해도
그 단 한번의 사랑이 무참히 끝나고 말 것이라면 선택하지 않겠다고
그저 사랑을 모르는 채로 남아 있겠다고
-노은림의 유고 일기 中 88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