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본문
'더 리더'를 영화화 한 것을 보고 글을 쓴 것은 꽤 예전인데
문득 이 책이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책에 대한 글을 다시 쓰게 되었다.
오래전 추운 겨울날 어디론가 나가고 싶진 않고 무언가 기분 전환이 필요했을 때
연인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청하며 내가 건냈던 책 중에 하나가 '더 리더'였다.
그의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머리 속에서 재구성 되는 책은
내가 기존에 읽었던 이야기보다 더 유려하고 관능적이었으며
나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음성과 함께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던 목젖,
책을 읽으면서 머리카락을 빗어주던 손길,
어깨에 기대면 전해지던 따뜻한 감촉들..
내가 건내받아 읽을 때 방에 가만히 울리던 나의 낮은 목소리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책의 단어 하나하나가 나에게 더 강한 울림으로 전해왔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생각나게 하면서
또 다른 감동을 주는 사랑 이야기이자 한 여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주인공이 한나와 처음 만나는 초반부인데,
어린 소년의 떨림과 첫사랑의 열정, 여인의 완숙함이 함께 느껴져서 참 좋다.
...
다음 날 그녀와 만났을 때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하자, 그녀는 몸을 뺐다.
"그전에 먼저 내게 책을 읽어줘야 해."
그녀는 진지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샤워실과 침대로 이끌기 전 반 시간가량 그녀에게 <에밀리아 갈로티>를 읽어주어야 했다. 이제는 나도 샤워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집에 올 때 함께 가져온 욕망은 책을 읽어주다 보면 사라지고 말았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어느 정도 뚜렷이 드러나고 또 그들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작품을 읽으려면 집중력이 꽤 필요했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면서 욕망은 다시 살아났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 있기- 그것이 우리 만남의 의식이 되었다.
그녀는 정신을 바싹 차리고 귀를 기울였다. 그녀의 웃음소리, 경멸에 차서 씩씩대는 소리, 그리고 격분하거나 동조하며 지르는 외침 등은 그녀가 이야기에 푹 빠져 줄거리를 좇아가면서 에밀리아와 루이제 모두를 어리석은 계집애들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었다. 계속해서 읽으라고 재촉할 때의 초조감은 그녀들이 어서 어리석음을 벗어던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도대체 그게 사실이라니!"
때로는 나 스스로 어서 계속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곤 했다.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자 나는 황혼 속에서 그녀와 함께 침대에 머물고 싶어서 더 오랫동안 책을 읽었다. 그녀가 내 몸 위에서 잠들고 마당의 톱질 소리도 잦아들면, 그리고 지빠귀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부엌에 있는 색색의 물건들도 음영 속에 잠길 때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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