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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생각

그 놈이 불쌍한 이유

DidISay 2012. 3. 23. 03:34



며칠전부터 운동하면서 '청담동 살아요'를 보고 있다.

종편방송들은 거들떠도 안보다가, 추천글을 읽고 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좋은 시트콤이다.
종편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잘 알려졌을 작품인데 아쉽다.


오늘 9화를 보다가 어쩐지 인상 깊은 대목이 나와서 글로 남겨 본다.

'다정도 병'인 지경에 이른 극 중 인물이,
왜 자신이 항상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에게 끌렸는지를 깨닫는 부분이다.


...

- 그 놈이 불쌍한 이유 -

그가 불쌍한 이유는 내가 불쌍한 거다.
불쌍한 그 놈에게서 불쌍한 나를 본 것이다.

불쌍한 나를 그냥 지나쳐가지 못해 그렇게 붙들고 안쓰러워하는 거다.
나를 건사하는 거다.

그 놈은 나다.

' 그래, 맞다.

기름진 안경알에서 정리해고 당한 우리 아버지를 봤고,
정수기 파는 사람에게선 청담동에서 겉도는 나를 봤고,
아까 그 놈한테서도 날 본 거다.

어디 가서 무시받진 않을까 싶은 측은지심에
그 놈만 보면 불쑥 화가 솟구쳤던 거다.

그 놈은.
나다.

다시는,
다시는 날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 거야.'

" 난 괜찮아..."

 


...이 대목을 보면서 어쩐지 찡하게 공감이 갔는데,
나 역시 항상 어딘가 부족해보이는 사람에게 끌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때 했었기 때문이다. 

오지은 만큼, '다정도 병인양'하는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이성이든 동성이든 내가 마음을 열고 끌리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안쓰럽고. 측은하고. 안됐고.. 하는 마음이었다.

이전에는 이런 생각을 전혀 못했었는데, 헤어지고 난 다음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정리하던
어떤 순간에 퍼뜩 저런 생각이 들었다.

난 대체로 잘나 보이고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 앞에서는
오히려 더 강해졌고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거부감이 생기던 사람도
어딘지 연약한 면을 얼핏 보았을 때 비로소 호감이 생겼다.

불쌍하게 여기거나 동정하는 것과는 또 다른 감정이었기에,
말 그대로 어딘지 인간적인 면모에 끌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 호감들은
나를 건사하려던 거였다.

내게 있는지도 모르는 그 가엾음.
나에게 존재하고 있는 약함과 맞닿는 그 사람의 약함을
있는 힘을 다해서 위로하고 감싸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은 타인을 통해 발견한, '울고 있는 나' 를 그냥 지나쳐가지 못해
그런 형태로 상처를 붙들고 안쓰러워하는 거였다.

저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관계패턴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피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나약하거나 상처입은 모습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해서 좀 힘들다. 마음도 너무 아프고...

이번 회차의 제목은 "내가 좋아?"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이 모든 과정이.
또한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정말 긍정적인 관계는 건강하고 긍정적인 두 사람의 만남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애정을 갖는 만큼,
내가 아끼는 누군가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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