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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직업 본문
내게는 종종 ‘꿈’에 관련된 상담사연이 들어온다. 요지는 지금의 이 구질구질하고 지긋지긋한 월급쟁이를 관두고 오래도록 꿈꿔오던 일을 쫓아도 되겠느냐는. 구체적으로 꿈의 내용을 물어보면 놀랍게도 대개가 드라마 작가, 단행본 작가, 시나리오 작가 등의 ‘작가’직들이다. 현재처럼 인간 스트레스에 안 시달릴 것 같고, 뭔가 자아실현을 할 것만 같고, 창의적이면서 화려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대접받을 것만 같은 이미지인가 보다. 그런데 왠걸, 현실에선 믿겨지지 않는 여성 시나리오작가의 비극이 발생했다. 이 충격적인 사건 이후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꿈을 재구성할지 궁금하다.
한 편, ‘꿈의 직업’은 대개가 ‘처음엔 서러운 무명으로 시작해 미친 듯이 노력해서 역경을 뚫고 성공했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동반하고 있다. 그 고생들을 아직 다 겪지 않은 팔팔한 상태에선 그것들은 차후의 성공을 더욱 감격스럽게 만드는 ‘로망’이 되어준다. 그렇다 보니 첫 도전을 할 때는 ‘고생을 각오하겠다’며 다짐하고 ‘기회만 주신다면, 시켜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며 정말 열심히 하면 자신이 써 내려간 미래의 시나리오대로 갈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리고 그 목마름과 욕망을 익히 잘 아는 이들은 그래서 그 심리를 역이용하게 된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을 가진 자신들을 하대하면서 상대에겐 ‘선생’ ‘작가’ 등의 호칭을 붙여주면서 그들이 다른 보다 숭고한 가치로 배부르고 만족해주기로 바란다. 왜 네가 돈에 민감하게 구냐, 이해가 안 간다, 그런 거 신경 쓰면 감각 떨어진다는 투로. 천박하다며 아예 돈 얘기를 먼저 시작하지도 않는 이들도 피차간에 상당수 있다.
하지만 매일매일의 현실적인 생활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야말로 그 어느 업계 막론하고 가히 프로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배고픈 예술가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양질의 것을 먹어야, 그리고 먹게 해줘야 양질의 것을 쓸 수가 있다. 그래서 소위 ‘예술’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념적인 예우’는 ‘실질적인 억압’과 더불어 함께 없어져야만 한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메트로 모놀로그 2011 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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