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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 감정노동! 본문
직장인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아마 금요일이 아닐까요? 그 중에서도 금요일 저녁, 오후 6시 퇴근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적어도 60시간은 업무와 상관없이 신나게 보낼 수 있으니까요.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볼까? 데이트를 할까? 아마 사람마다 다양한 계획을 세우겠죠. (저도 그랬죠) 하지만 저 같은 직장맘들에게 주말은 그렇게 즐겁기만 한 시간은 아닐 겁니다.
당장 저 같은 경우는 금요일 저녁은 테이크아웃 음식으로 해결하지만, 나머지 6끼는 집에서 해먹어야 합니다. 피곤하다고 밖에 나가서 먹기 시작하면 비용이 장난 아니니까요. 그러려면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유통기한이 임박해서 우선 해결해야 할 재료는 뭔지, 빠른 속도로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대부분 주말에 하는 일이라곤 밀린 집안청소와 육아. 단 두 단어로 정리되지만 저 안에 속해 있는 일들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주말에만 하는 일이고, 혼자 하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피곤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정말 상상만으로 지쳐 왔답니다.
그런데 정말 왜 그게 힘든 걸까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가사노동은 필요노동이고, 우리 삶의 일부이기에 피한다고 피할 수도 없는 일인데, 왜 더 힘든 걸까요? 얼마 전 그린비에서 출간된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이란 책을 보면, 아마 가사노동이 우리에게 힘든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 야마다 마사히로는 가사노동이 피곤한 이유는 ‘가사노동이 애정표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전처럼 격한 가사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동화되고 기계화되었지만, 여전히 가사노동이 애정표현의 한 방식이 되다 보니 결코 그 수고로움을 멈출 수가 없다는 거죠.
바깥에서도 완벽하게 일하고, 가사노동으로 남편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여성들에 대한 환상은 사실 불가능한 꿈이자 여성을 가혹하게 억압하는 폭력과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 「스텝포드 와이프」가 그 판타지에 감춰진 공포를 잘 드러내 보여 주죠.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홈메이드, 엄마표 열풍이 바로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에서 지적한 문제를 잘 보여 줍니다. 바깥에서 먹는 음식은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 엄마의 게으름이고, 힘들어서 이용하는 세탁 서비스는 정말 돈이 많은 집에서나 하는 사치가 되죠.(고로 알뜰 가정주부라면 절대 하면 안 되는~그런 서비스) 도대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이 생각은 족쇄가 되어, 모든 가사노동을 직접 해야만 뭔가 제대로 했다는 느낌을 줍니다. 아무리 외부 서비스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나더라도, 구매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바로 가사노동의 현실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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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간의 친밀감에 관한 다른 논의 없이, 그저 가사노동으로만 애정을 표현하는 사회는 다른 문제를 하나 더 안고 있습니다. 이미 전제하고 있지만, 가족관계 혹은 부부관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이 애정표현으로 굳어진 가사노동이 매우 복잡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사적인 젠더 관계, 축소해서 말하자면 결혼관계에선 여/남은 분명 평등한 성역할분담을 전제하고 그에 따른 사안들을 합의하여 결혼이라는 계약을 맺죠. 하지만 이런 평등한 합의라는 건, 정말 사적인 것에만 국한됩니다. 이미 여성의 가사노동을 당연시하는 사회에서 애정표현(가사노동)의 압박은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여성은 아무리 애정표현(가사노동)을 하더라도 어떤 큰 정서적 교류를 이뤄 내지 못합니다. 속된 말로 해야 할 일 한 것뿐이니까요. 하지만 남성이 가사노동을 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평등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남성이자, 모든 이들의 본보기가 되는~, 한마디로 전생에 지구를 구한 여자나 만날 수 있는 그런 남성이 되죠. 가사노동이 애정표현으로 간주되는 후진적 사회에선, 가사노동의 젠더화는 더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남성이 가사노동으로 큰 애정표현을 했으니, 여성도 그에 걸맞은 엄청난 가사노동을 해줘야 뭔가 제대로 일했구나~, 아직 주부/엄마의 역할을 잊지 않았구나~, 가족들을 사랑하는구나~ 하는 거죠)
아시겠지만 이런 틈새를 메우기 위해, 여성은 가사노동 대신 집에서도 감정노동을 하게 됩니다. 감정노동도 여성의 몫이라고 보는 세상에서는 남성이 가사노동을 하고 있을 경우, 여성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유난히 도드라지고, 남성은 뭔가 축소되었다고 보일 겁니다. 이런 상황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여성들의 자기검열이 시작됩니다. 평등한 노동 분배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에 그저 감사해야 하고, 자신이 가사노동을 덜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나로 인해 남성의 사회적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합니다. 혹은 감사해야 한다는 현실에 발끈하다가도 세상에 못난 넘들이 얼마나 많은데..하고 자기위안을 삼아야 하죠. 그러면서 가사노동 대신 아이들의 상태를 살피고, 감사해야 할 남성을 위해 뭔가 부단히 해야 하죠.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감정노동은 백화점이나 상가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꾸준히 타인의 상태를 살피고,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동선에 맞춰 움직이도록 하는 감정노동 체계는 가족 구조 안에도 존재합니다.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에서 말하는 것처럼 더 이상 가사노동으로 애정표현하지 말자는 주장은 단순히 돈으로 해결하자는 이야긴 아닐 겁니다. 젠더화되어 있는 가사노동 체계를 깨뜨리고 재구성하기 위해선 가사노동 안에 어떤 맥락들이 숨어 있는지 다시 살펴야 할 겁니다. 식기세척기가 들어오고, 세탁기가 생필품이 되고, 진공청소기가 움직이지만 왜 여전히 가사노동의 부담은 전 세대나 우리들이나 똑같은지. 왜 아직도 가사노동의 부담은 여성 혼자 떠안고 있는지. 왜 ‘엄마표’니 ‘홈메이드’니 하는 좋은 이야기들이 다른 여성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 불편하게만 느껴졌던 가사노동의 결들을 하나하나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가사노동이 가진 문제도 보이고, 해결책도 보이겠죠.
무엇보다 이번 한 주는 적극적으로 외부 서비스를 이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주부가 집안일도 안 하냐’는 이야기엔 지붕 뚫고 하이킥, 로킥, 암바 날려 주시고~, 빨래 덜하고 커피 한 잔 더 마실 수 있는 여유를 갖길 바라며 오늘 글 마치겠습니다.
-이 언니를 만나다中,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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