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자기만의 방 본문
혹시 '자기만의 방'을 처음 가졌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실 수 있나요?
제가 처음 나만의 방을 가진 시점은 정확히는 처음 혼자 자게 된 날일텐데,
유치원을 다니기 전이니 아마 4살정도였을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여분의 방이 있었지만 거의 부모님과 함께 자다시피해서
내 방이란 개념이 별로 없었거든요.내방이라기 보다는 놀이방이었죠.
그러다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되었는데,
내 침대, 내 책상, 내 책장...모두 내 물건과 가구들로 빈방이 인형놀이를 하듯
채워지는 그 과정이 너무 좋고 신기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집이 부모님이 처음 구입하신 '나만의 집'이었는데,
두분 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마련하셨을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된 것이었을지, 이제와서야 마음이 벅차고 찡합니다.
그리고 감사하고요.
처음에는 혼자 자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는데,
곧 늦게 자도 되는 자유로움 때문에 무서움은 사라지더라고요.
빨리 자라고 책을 늦게까지 못보게 하셨는데,
들킬까봐 이불 속에 스탠드를 켜놓고 몰래 작은 아씨들이나
15소년 표류기 같은 책을 읽었던 것이 기억나네요 :)
버지니아 울프의 책 중에 , '자기만의 방'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이 책에서 그녀는 여성이 글쓰기를 하려면 온전한 '자기만의 방'과
'자기 만의 시간' , '자기만을 위한 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저에게 자기만의 방과 시간과 돈은 분리된 것이 아니었어요.
집이 지방이고 대학은 서울에서 다녔기 때문에 독립을 해야했는데,
그때부터 모든 생활을 스스로 해결했거든요.
가끔 지금 방을 채우고 있는 모든 물건들, 모든 옷들,
내가 살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오롯이 나의 노력과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라는
사실이 별거 아닌데도 혼자서 벅차고 뿌듯할 때가 있었어요.
저 때로 돌아가라면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돈을 모아서 커튼을 달고 접시 한두개를 더 사고,
적금을 타서 방을 좀더 넓은 곳으로 옮기고...
그런 과정들이 소소하게 재밌었고 그렇게 힘든건 몰랐던 것 같아요.
적어도 내 삶이 변화하고 좀 더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어요 :)
아침에 볕이 잘 드는 방에서 깨고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큰 욕심이 아닌데도, 그런 공간을 갖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혼자 살다보니 자연히 나만의 시간들은
대부분 삶을 꾸려나가고 공부하는 과정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런데 취업을 하고 몇년이 지난 요즘 드는 생각은
과연 '나만을 위한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에요
나만의 공간과 돈은 이루어냈는데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거든요.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 같지만 ^^;
물리적인 시간이 없다기 보다는
무언가를 성찰하고 내 삶을 변화시킬만한 심적인 여유가 없는거겠지요.
그래서 나만의 시간을 쟁취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
나중에 결혼을 해서도, 배우자에게 그리고 저에게도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지켜주고 싶은데..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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