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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지(Very Successful)-조세핀 하트

DidISay 2012. 5. 28. 05:48

 

 

 1. 상처에 대하여...  

  '데미지'는 거친 섹스와 인물들의 불안정한 심리 묘사, 그리고 의도적인 자기 파괴가 아슬아슬하게 섞여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자극적인 소재에 비해 전개는 꽤나 스피디하고 간결하다. 촘촘하게 짜여진 개연성 따위는 주인공 시점으로 건너뛰었고, 꽤 심한 비약으로 인한 빈구멍을 독자가 찬찬히 상상과 추리로 채워넣어야 하는 소설이다.

  이 작품의 원제는 '아주 성공적인(Very Successful)'인데 영화 '데미지'의 원작으로 잘 알려진 소설이라, 아마 국내 출판 때는 원제를 버리고 '데미지'라는 제목으로 사용한 것 같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고 핵심적인 대목을 꼽자면 '
Damaged people are dangerous'이다.

 

  '한비자'에는 전설 속 영물에게도 특별한 상처가 있다고 적혀 있다. “용이란 짐승은 길들이면 능히 올라 탈 수도 있으나 그 목 아래에 붙어 있는 직경 한 자쯤 되는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는 자는 반드시 그를 죽이고 만다”

 

  아무 일도 없는 평화로움의 연속일 때는 그저 권태롭게 느껴지던 세상이, 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상처를 입었을 때 비로소 그 투명한 상처를 보여준다. 절대로 나을 것 같지 않은 상처, 그렇게 지독한 상처의 틈새로만 간신히 보이는 세계의 투명한 아름다움. 그것을 롤랑 바르트는 'Punctum'이라고 불렀다.

  라틴어로 풍크툼은 뾰족한 물체로 찔려 생긴 상처나 흔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날카로운 물체에 찔려 피가 나면 이 부위를 치료하여 낫게하듯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이 상처를 '직면'해야 한다. 하지만 풍크툼의 특징은 나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것을 예측하거나 대처할 수 없으며 명료하게 요약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는 데 있다.
 
  말 그대로 환부가 없되 통증은 있는 그런 마음의 상처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혼란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때문에
롤랑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나를 아프게 하지 못한다."고..

 

  김소진의 소설 '자전거 도둑'에는 상처를 가지고 있는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인 '나'는  영화 '자전거 도둑'을 반복해서 보면서 유년시절의 상처를 곱씹는다. '나'의 상처는 무능한 아버지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의 원인 제공자였던 혹부리영감에게 복수를 했다. 때문에 그는 그 기억을 깨끗하게 잊지는 못해도 적어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미혜'의 상처는 오빠에게 비롯되었으면서도 사실은 자신이 초래한 것이라는 역설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성적수치심을 준 오빠의 식사 심부름이 두려워, 오빠를 방치함으로써 간접살인을 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미혜가 가진 과거의 상처는 현재의 서미혜에게 억압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것은 보상, 복구가 불가능한 기억이므로 이것을 치유하고 속죄하는 데는 최초의 간질발작이 있었던 지점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오빠는 혹부리영감 같은 강자이자 가해자가 아니라 외려 약자였기 때문에 서미혜의 상처는 극복되지 못한다.  

  데미지에는 다양한 상처 입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자신에 대한 사랑을 거부하자 자살한 오빠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안나는 서미혜와 너무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날실과 씨실의 촘촘한 결이 하나의 천을 이루듯이, 이러한 상처가 한 인물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지 또 그 인물들의 마주침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지를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다. 

   “도덕이라는 굴레에 갇혀 오빠의 요구를 거절한 끝에 오빠가 죽었다”고 여긴 안나는 그 상처를 덮기 위해 애써 도덕에 갇히지 않고 육체를 자유롭게 풀어헤치려 한다. 서미혜가 몰래 자전거를 훔치는 '도둑'이 되면서 죄책감을 해소하듯이, 안나는 전통적인 도덕관에서 벗어난 관계맺기로 상처를 덮기위한 불안한 저항을 계속한다. 영화에서는 안나의 감정이 죽어버린 내면상태를 반영한 것인지, 서늘한 다크블루톤을 사용해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안나와의 사랑을 결코 이루지 못한다. 그녀는 스티븐이 자신과 유사한 죄책감과 상처를 갖게 되자, 그를 떠나 피터와 결혼한다.  

"상처입은 사람들은 위험하다. 살아남기 위해 상처를 없애지. 그들은 동정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처럼 살아남을 수 있는 걸 알거든." 

  이 소설의 대사처럼 어떤 상처는 특별히 위험하다. 깊은 상처를 지닌 사람은, 삶 전체가 흔들리는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은 사람이다.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살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특별히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 위험하다. 
 

   소설 '자전거 도둑'의 주인공은 서미혜의 상처를 모두 알게 된 후 그녀가 자신의 상처에 함몰되어 있기에 함정에 빠지는 것 같다며 서미혜로부터 빠져나온다. 두 사람 모두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지만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에는 자신들의 상처가 너무 버거웠던 것이다.

  결말에서 스티븐은 안나의 사진을 벽에 두고 하염없이 바라본다. 또한 안나는 제3의 새로운 인물과 삶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모습을 알고 있는 피터에게로 되돌아가는 멈춤의 단계로 가버렸다. 피터가 마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오픈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한 길일 것이다. 안나는 아직도 자신의 상처를 대면할 준비가 되지 않았으므로... 치유되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자전거 도둑' 을 돌려보고, 남의 자전거를 훔쳐 탈 것이다.

 

  이 작품을 단순한 불륜소설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의 깊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안나에 의해 이루어지는 반윤리적인 도발은 '나쁜 년의 어장관리'나 '욕구충족을 위한 문란한 관계맺기'가 아니라, 유년시절의 정신적 생채기가 빚어낸 절박한 몸짓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삶에서 아주 익숙한 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표현되는 모습만 다를 뿐, 욕구불만과 한숨이 섞인 폭음이나 폭식 혹은 새벽의 푸른 기운이 사라질 때까지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밤일 수도 있다. 

  데미지의 매력 중 하나는 이 소설에 비춰진 인간들의 모습이 아주 나약한 얼굴이라는 것이다. 숭숭 바람이 들어오며 휘몰아 치는 마음에 난 생채기를 얇은 창호지 한장으로 간신히 메꾸며 불안하게 살아가는 얼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가?

 

 

 

2. 사랑 혹은 그 무언가...

 

가려진 커텐 틈 사이로 처음 그댈 보았지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했고 가슴엔 사랑이

꿈이라도 좋겠어 느낄수만 있다면
우연처럼 그댈 마주치는 순간이 내겐 전부였지만
멈출수가 없었어 그땐 돌아서야 하는 것도 알아

기다림에 익숙해진 내 모습뒤엔 언제나 눈물이

다른 남자의 아내였었지
하지만 그건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니까
난 멈출수가 없었어 이미 내 영혼은 그녀의 곁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꿈이라도 좋겠어 그댈 느낄수만 있다면
우연처럼 그댈 마주치는 순간이 내겐 전부였지만
멈출수가 없었어 그땐 돌아서야 하는 것도 알아
기다림에 익숙해진 내 모습뒤엔 언제나 눈물이

까맣게 타버린 가슴엔 꽃이 피질 않겠지
굳게 닫혀버린 내 가슴속엔 차가운 바람이 흐르고 있어

오늘밤 내방엔 파티가 열렸지
그대를 위해 준비한 꽃은 어느새 시들고
술잔을 비우며 힘없이 웃었지
또 다시 상상속으로 그댈 초대하는 거야

-늪, 조관우

 

  조관우의 늪은 매우 관능적인 노래이다. '가려진 커튼 사이로 간절하게 훔쳐보는 다른 남자의 여자' 이 작품이 특히 아슬아슬하고  '에로틱'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Demand와 Desire의 가장 큰 차이는, 욕구는 단순히 채우면 끝나버리지만 욕망은 마치 소금물처럼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진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 노래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노래 속의 화자도 시간이 흐를수록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감정의 늪에 점점 깊이 빠지게 될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모든 문명의 금기는 '근친상간'이다. 모든 부족들은 공동체의 폐쇄를 방지하기 위해, 딸을 한 공동체 내에서 소비하지 않고 다른 공동체와 교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이, 햄릿이나 오이디푸스에서처럼 근친상간 모티프는 문학작품에서 꾸준히 소비되고 있으며 데미지 역시 그런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안나와 주인공의 '관계맺기'는 사실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라기 보다는 '금기'라는 악마 버튼을 누르면서 터져나온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햄릿'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에서 워낙 많이 차용되어 구닥다리로 느껴질만큼 해묵은 소재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수차례 변형된 형태로 차용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만큼 매력적이고 강력한 심리기재인 것 역시 분명하다. 
 
  '데미지' 역시 변형된 오이디푸스 삼각형 구조이다. 오이디푸스 왕이 '아버지-어머니-아들'이라면, 데미지는 '아버지-아들의 연인-아들'로 짜여진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아버지-아들의 연인' 사이에 관계가 일어나자, 아들이 죽어버리는 구조라는 것이 좀 독특하다.

 

  이 작품 속 안나는 이 두 사람 중 어느 누구가 아니라 부자 관계에 있는 두 인물을 사랑한다. 이 두 인물과 모두 섹스할 때 비로소 일어나는 근친상간의 분위기를 안나는 사랑한 것이다. 그 동기가 자신에 대한 오빠의 사랑을 윤리적인 이유로 거부했던 자신을 스스로 벌주는 것일 수도 있고, 마틴이나 주인공을 통해 오빠를 떠올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또한 안나가 주인공 '나'에게 그토록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결핍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인 의미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지만, 그 성공을 위해 욕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억압해야 했다. 그 억압이 형성시킨 것이 '냉담함' 이다. 아들이 지적한 것처럼 그는 '따뜻함'과 '정열'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아들에게서 부성애를 느끼지 못하고 아내에게서 성욕을 느끼지 못 한다. 소설에서 그려진 대로라면, 그에게 아들은 내가 보호해야할 대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경쟁자이자 질투심을 느끼는 대상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가 안나에게 강력하게 이끌린 까닭은, 안나를 사랑하는 자신에게서 따뜻함과 정열을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주인공이 정말 사랑한 모습은 안나를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안나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꼈고, 이성을 잃게 만드는 매력이 안나에게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특별했던 것은 안나 자체가 아니라, 금기의 대상인 안나를 사이에 두고 아들과 경쟁을 벌이는 관계 자체였을 것이다. 

 

  금기에 얽매인 관계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롤리타 컴플렉스나 관음증과 관련된 무수한 결과물을 봐도 알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전해준건 불+ 반항심이었는지, 우리는 '금기'를 벗어나려는 도전정신이 탁월한 존재들이다. 독수리에게 간이 쪼이든, 지금까지의 삶이 망가지든 일단 금지된 것을 깨보고 싶은 충동을 몸 안에서 잠재우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런 경향은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금기나 헤어짐에 대한 불안감이 모두 사라진 결혼은 에로티즘을 급격하게 사그라들게 만든다. 물은 가끔 웅덩이를 만나 썩는다는 시인 이상의 말처럼 웅덩이를 만난 삶은 가차 없이 썩어버린다. 이처럼 상대방을 모두 알게된 빤한 고인 웅덩이와 같은 관계는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연애에 대한 흔한 조언으로 밀고당기기를 하라며 자신을 모두 내보여주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소설 속 안나는 결코 자신의 모든 것을 모두 오픈하지 않는다. 그의 노예임을 자청하고 조금만 선을 넘으면 가질 수 있을 것 같지만, 내가 소유할 수 없는 그녀. 이 관계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안나이다.
  
  게다가 그녀의 과거는 적당히 베일에 싸여있고 이를 잉그리드는 며느리감으로 믿을 수가 없다며 매우 불안해 하지만, 이런 모습은 오히려 주인공이 그녀에게 결코 '권태'를 느끼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된다.  가질 듯 가질 듯 하면서도, 결코 나만의 것이 되지 않는 그 감정이 주인공을 점점 늪으로 빠져들게 했던 것이다. 마치 영화 '권태'의 노교수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등장인물들은 가질 수 없는 것과 갖고 있는 것이 만들어 낸 복잡한 미로 속에 서 있다. 그리고 결국 모두가 상실을 향해 달려가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책장을 덮고 나면 '안나'라는 이름은 특정 대상을 지칭하던 의미를 더 이상 지니지 않는다. 그것은 안나로 표현된 '보이지 않는 타자에 의한 울타리'로 변화한다. 안나는 결국 내가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를 옭아매고 있는 울타리를 떠올려본다. 그 속에서 아등바등대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내가 갈망하는 환상의 대상이 무엇인지...결국 그 환상은 내가 손에 넣지 못했을 때만 갈망의 대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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