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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물건-김정운

DidISay 2012. 6. 4. 00:23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겼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위의 시는 정일근의 '어머니의 그륵'이라는 시이다. 이 시는 지극히 평범한 사물이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다면,  큰 울림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지금 소개하려는  '남자의 물건' 은 누군가의 삶이 담긴 '물건'을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남자의 물건'이라는 의뭉스러운 제목은 도발적이긴 했지만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았다. (남자의 물건..그것도 에스콰이어나 지큐에 나올법한 미끈하고 세련된 물건이 아닌 아저씨들의 물건 따위 별로 궁금하지 않았으므로 -_-;;) 때문에 계속 볼까말까 망설이다가, 순전히 저자인 김정운 교수를 믿고 구매한 책이다. 이분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도 그렇고 제목을 지을 때 꽤나 고민하는 듯.

  아무리 필력이 뛰어나도 그 작가의 나이대와 문화적 배경에 따른 한계가 있다고 믿는 편인데, 완숙한 남자작가가 여고생의 입을 빌리게 되면 어색할 수밖에 없고, 젊은 여성작가가 만들어 내는 중년남성들의 걸죽한 음담패설이 섞인 입담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김정운 교수는 괜히 엄한 데서 헛발짓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4,50대 중년남성에 속해 있는 자신이 가장 썰을 유창하게 풀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박탈감과 답답한 속내를 긁어내듯이 자유자재로 풀어내 준다. 그리고 이 전략적인 글쓰기의 결과는 꽤 만족할만하다.

  사실 '남자'에 국한하고는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고 살기 팍팍한거야 그 경중과 원인이야 다르지만 남녀노소 구별하기가 어려우니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전체적인 느낌은 시마과장류에서 등장하는 중년남성들의 외로움과 불안감이 짙게 깔려 있는 느낌이다. (차이점은 이 글을 읽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마과장과는 달리 그냥 평범하고 나이든 아저씨일 뿐이라는 것.중산층이라고 해봐야, 이들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건 기껏해야 수첩이나 만년필 뿐.)

   제목이 암시하듯이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문제를 남자들만이 겪는 존재론적인 문제인양 엄살 떨면서 의미부여를 해놓은건 좀 뭥미 싶긴 한데, 뭐 원래 자기 문제가 더 커보이는거니 패스하고...이 책의 가장 큰 점은 시원시원하고 직설적인 문체다. 특히 1부는 들고 있는 예들이 매우 개인적이고 체험적이라,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힌다. 옆집 아저씨가 혼자 미주알고주알 투덜투덜 궁시렁거리는 느낌이라 측은하기도 하고 꽤 재밌다. ㅎ 

  2부에서 이어지는 명사들의 개인적인 물건 이야기는 뭉클한 것들이 많았는데, 특히 신영복 선생님의 벼루와 차범근 감독의 계란받침대,문재인님의 바둑판이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가 '여자의 물건'도 써주었으면 싶다. 사실 저자가 여자의 물건으로 언급한 구두나 화장품과 같은 것들은 너무나 고리타분하고 시시하니까...왜 여자의 이야기들을 저런 뻔한 물건들로 풀어나가야 하는가.

 



  이 글을 읽고 나니,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나의 혹은 그들의 물건'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졌다.

 

1. 한국 사회의 문제는 불안한 한국 남자들의 문제다. 존재 확인이 안 되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존재로 인한 심리적 불안은 적을 분명히 하면 쉽게 해결된다. 적에 대한 적개심. 분노를 통해 내 존재를 아주 명확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방법이다. 불안한 정치세력은 적을 분명히 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꾸 적을 만들어야 내 불안함이 사라진다. 

   또 다른 존재 확인의 방식이 있다. 이야기다. 내 존재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통해 확인된다. 사실 문명사에서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불과 얼마 전 일이다. 비트겐슈타인 이후의 이야기다. 이를 일컬어 '내러티브 전환 narrative turn'이라고 한다. '인간은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기 이야기가 풍요로워야 행복한 존재다. 할 이야기가 많아야 불안하지 않다. 한국 남자들의 존재 불안은할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모여서 하는 이야기라고는 정치인 욕하기가 전부다.

  사회적 지위가 그럴듯할 때는 그래도 버틸 만하다. 자신의 지위에서 비롯되는 몇 가지 이야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그 이야기도 끝이다. 남자가 나이 들수록 불안하고 힘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도무지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의 물건'이다. 물건을 통해 매개된 존재의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살펴보자는 이야기다.

  '여자의 물건'이라면 바로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목걸이, 반지, 가방, 구두, 화장품 등등. 그래서 여자들은 삶이 흥미로운 거다. 여행을 가도 남자들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볼 것도 많고, 이야기할 것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의 물건이라면 도무지 떠오르는 게 없다. 대부분 잠시 당황하다가, 은밀한 곳의 '그 물건'을 더올린다. 너무 서글픈 일 아닌가? 여자의 물건은 그토록 화려하고 다양한데, 나마의 물건이라면 기껏 '거무튀튀한 그것'만 생각난다니.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자기에겐 어떤 물건이 있는가를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자기 삶에 관해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거다.

 

 

 

2. 암컷들은 불안해하는 수컷들의 몸에 자신의 몸을 비벼대며 위로한다. 원숭이의 경우, 이런 접촉을 '그루밍grooming'이라 한다. 서로의 털을 다듬는 이 행동은 권력관계를 확인하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서로의 불안을 해소하는 고도의 심리적 전력이기도 하다. 원숭이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서로 끊임없이 만지고 만져져야 불안해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이 슬픈 일을 당하면 끌어안거나 어꺠를 두드리며 위로한다. 왜 그럴까? 만져야 위로가 되기 떄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남자들에게 만지고 만져지는 것은 거의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금지된다. 미국의 어떤 주에서는 학교의 남자 선생님이 여학생의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까지 금지한다.
 
 ...

  서로 만지고 만져지는 '터치'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의사소통 행위다. 사람들이 아이폰, 아이패드에 열광하는 심리학적 이유는 바로 이 터치 때문이다. 신체적 접촉이 사라진 디지털 세상에서 내 손끝의 세밀한 움직임에 반응하는 기계가 생겨났다. 손가락을 벌리고 좁힐 때마다 화면의 변화가 일어나고,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새로운 창이 열린다. 반드시 맨손으로 만져야 반응하낟. 정말 눈물 나도록 감격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40대 중년 남자들이 아이폰에 더욱 열광하는 것이다. 주위를 돌아보라. 요즘 아저씨들은 제각기 아이폰만 만지작 거린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룸살롱과 아이폰의 공통점은 바로 '터치'를 통한 위로다. 나는 이를 '배려경제 care economiy'라고 정의한다. 오늘날 이 배려경제의 범위는 엄청난 규모로 확장되고 있다. 곳곳에 널려 있는 발마사지, 스포츠마사지, 타이마사지, 안마시술소가 바로 그것이다. 좀더 넓은 의미에서 '코칭',상담','심리치료'와 같은 '마음의 터치'와 관련된 각종 산업도 이 배려경제에 해당한다.

  어떤 이에게도 위로 받지 못하는 이 존재론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현대인들은 관심과 배려를 돈 주고 산다. 흥미로운 사실은 남자들은 1차 배려경제, 즉 감각적이고 원초적인 배려경제에 많은 지출을 한다. 반면 여자들은 2차 배려경제, 즉 마음의 위로와 배려에 더 많이 지출한다는 것이다. 배려경제가 대세라는 이야기다. 아무튼 만질수록 커진다. 무엇이든....

 

 

 

3.   설렘 있어야 상상 속의 목표가 구체화되고 현실화된다. 설렘이 있어야 목표를 이뤄나가는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행복과 재미의 구체적 내용도 설렘이다. 설레는 일이 있어야 삶이 행복하고 재미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행복하려고 산다. 재미있으려고 산다. 한국사회에는 행복과 재미를 이야기하면 한 급 아래로 내려다보는 어쭙잖은 엄숙주의가 존재한다. 자유,민주,평등과 같은 가치를 이야기하면 폼 나 보인다. 그러나 자유,민주,평등은 수단적 가치다. 행복과 재미는 궁극적 가치다. 물론 수단적 가치가 확보되어야 궁극적 가치를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자유,평등,민주라는 조건이 이뤄진다고 자동적으로 사는 게 행복하고 재미있어지는 것이 아니다.

  재미와 행복이라는 궁극적 가치에 대한 진지하고 꾸준한 성찰이 있어야 수단적 가치도 이뤄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행복과 재미에 관한 어떤 사회문화적 담론이 존재하지 않는 이 사회에는 감각적이고 말초적 재미만 남아 있다. 딸 같은 걸그룹 허벅지나 아들 같은 아이돌 초콜릿 복근이나 이야기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모여앉으면 막장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하고, 허구한 날 정치인 욕하는 방식으로는 삶이 절대 흥미진진해지지 않는다. 폭탄주 마시며 룸살롱에서 아가씨 아랫도리나 비비는 방식으로는 절대 즐거워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설렘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추상적이고 거창한 구호로 삶이 행복해지고 재미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위대한 가치나 이데올로기도 내 삶에 구체적으로 경험되지 않으면 실천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에 지식인이 비겁해지는 이유는 바로 이 구체성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삶의 구체적 경험이 우리를 설레게 만들고 변화의 동력이 된다는 이야기다.

  삶이 재미없는 이들은 대부분 세상이 뒤집어지는 어마어마한 재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재미는 없다. 행복을 거창하게 생각해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게 분명해야 설레는 삶을 살 수 있다.방법은 간단하다. 지난 한 주간 내 일생에서 가장 기분 좋았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된다. 내가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 일을 기억해내면 된다. 바로 그 일들이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들이다. 그 설레는 일들을 끊임없이 계획하며 살면 된다.

  설렘이 없다면 살아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계절이 바뀌는 것이다. 설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