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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장의 교실-야마다 에이미

DidISay 2012. 8. 18. 04:45

 

 

 

 

'풍장의 교실'은 야마다 에이미의 단편소설 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좀 어수선한 느낌 때문에 단편소설집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다가 

질리는 감이 있어서 일본소설을 좀 멀리하고 있는터라, 평소라면 구매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데 

처음 접하는 작가고 흡입력이 좋고 강렬했다는 평이 있어서 시험삼아 읽어보았다. 

 

 

 

'풍장의 교실' / '나비의 전족' / '제시의 등뼈'가 수록된 작품들의 제목들인데,

꽤 이질적인 단어들을 제목으로 결합시켜서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 같은 이유로, 어떤 내용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어서

읽고 난 뒤에서야 아 이런 의미였군 하고 되새기게 된다.

 

 

 

 

여성작가답게 여성의 심리를 피곤할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고,

일본소설에 흔하게 등장하는 냉소적이고 내향적인 아이들이 이곳에서도 등장한다.

 

표지에 샛노란 색 때문에 팬시한 느낌을 주는, 글래머스한 여성들이 있어서 뭔가 싶었는데

이 작가 여자의 성적인 마주침이나 발견을 꽤 매력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성적인 관계를 성녀/창녀 논리로 그려내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묘사해서,

여성작가가 그려내는 여자와 남성작가의 묘사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싶었다.

예전에 변영주 감독의 '밀애'를 볼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굉장히 묘한 느낌.

 

똑같은 남성의 성적대상화도, 이상하게 남성감독들이 행하는 그것과 여성감독의 것은 차이가 있는데

얼마전에 본 '돈의 맛'에서 윤여정-김강우 커플을 그려내는 그 식상한 방식에 엄청 짜증이 난 걸 생각하면.. 아오

돈의 더러운 맛 때문에 화가 난게 아니라, 

관계를 풀어나가는데 기존의 방식을 고민도 없이 그대로 답습한 그 게으름에 화가 났다 -_-;;

 

 

 

이 소설에서 성은, 주인공들이 자아를 발견하고 상대방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는

일종의 자기확인의 과정의 도구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계속 냉소적이고 어른스러운, 세상 다 산 늙은이인체 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관계의존적이고 나약하다는 느낌도 꽤 든다.

 

 

 

덧) 작가가 좋아하는 남성상을 대충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_-;;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아이들이 다 어딘가 비슷한.

     작가는 가느다랗고 새하얀 목에 페티쉬가 있는 것이 분명함 (...)

 

 

 

 

이 단편소설들은 모두 여성화자가 1인칭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녀들은 자신이 처한 인간관계 속의 갈등과 절망을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헤쳐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자기나름의 해법을 찾고 돌파하는데,  표면적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여자들의 관계맺기를 아주 세밀하게 관찰해놓은 것이 매력적인데,

그녀들의 시도가 실제로 성공했는지는, 직접 읽어보시라.

 

 

 

 


 

 

 

1. 풍장의 교실

 

풍장(風葬)은 사람의 시체를 자연 그대로에 둬서 바람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만드는 장례 방법인데,

처음에는 아이들이 가득 찬 교실이라는 공간과 풍장이 너무 이질적이라서 내가 아는 그 풍장이 아닌가 싶었다.

 

황동규 시인의 동명시에서 등장하는 풍장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 교실에서 행하는 풍장의 방법은

평화롭거나 담담한 것과는 거리가 먼, 팽팽하고 잔혹한 아이들의 심리대결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도시에서 시골로 전학온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지독한 이지메를 당하기 시작하는 과정이 아주 세세하게 펼쳐진다.

 

점점 변하는 교실의 공기를 세밀하게 호흡하는 주인공의 심리와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강조되는데

초등학생이라고 보기엔 너무 되바라지고 염세적인 느낌이 사실 좀 있긴 하지만,

(도대체 일본소설에 등장하는 아해들은 왜 하나같이 이렇게 세상을 조롱하는 말투일까 -_-;) 

개인적으로 단편소설 3개 중에 가장 재밌었다.

 

주인공이 '남자 꾀는 속옷을 입는다'며 아이들이 괴롭힌다는 것을 언니에게 말하자,

고등학생 언니가 쿨하게 되받아치는 말이 너무 웃겼던.

 

주인공을 괴롭히는 주도자격은 에미코는 전형적인 '애정결핍'에 여왕벌 놀이를 하는 여자애인데,

저란 타입은 어른이 되서까지 저럴게 뻔해서 -_-;; 

심지어 자신이 하는 짓거리가 얼마나 허접한 행동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듯. 

 

 

  원인은 요시자와 선생님이었습니다.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나를 보는 눈이나 내게 건내는 말에 씌워진 달콤한 포장만으로도 충분히 나에 대한 호의를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그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나를 예뻐한다는 걸 다른 친구들 앞에서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그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었습니다....그런데 요시자와 선생님은 내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굳이 나한테 와서 분별 없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것도 조금의 음흉함도 없는, 예의 '쾌활'이라는 방식으로 나한테 호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쾌활한 젊은 선생님을 싫어할 리가 없습니다. 나는 요시자와 선생님이 야속했습니다. 여자아이들의 분출할 곳 없는 원망은 나에게 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딴 사람이 피해를 입는 걸 생각지 못하는 순진한 성격에는, 어떻게 대처해 볼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잘난 척하기는"

  언제나처럼 남자아이가 내 머리를 잡아당기고 있을 때, 에미코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남자아이는 깜짝 놀라서 내 머리를 놓았습니다. 에미코의 그 말은 그 교실에서 나를 향해 최초로 나온 반격이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내 머리의 리본과 빨간 치마와 새하얀 양말 등은 더 이상 아이들의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내 옅은 갈색의 긴 머리와 짙은 속눈썹, 그리고 가느다란 목 같은 것도 그들의 혐오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나는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있으면 내 입에서 나오는 말과 그 말을 에워싸고 있는 공기까지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나는 에미코의 '곡하는 여자' 소질에 혀를 내두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 교실에서 그 애는 곡하는 여자임과 동시에 웃는 여자이기도 했습니다. 불확실한 아이들의 감정은 항상 그녀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었습니다.  

 

 

 

에미코가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미코와 똑같이 선생님을 동경하는 여자아이들은, 에미코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깔끔하고 예쁘장하니까. 정확한 표준어를 쓰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나에게 자신감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나는 알고 있으니까요. 그 애들은 막연한 위기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요시자와 선생님을 독차지하면 그 애들 모두의 존재 가치가 무너져 버리는 겁니다. 에미코라면 괜찮아. 하지만 안은 안되. 그 애들은 동물적인 육감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남자아이들도 거기에 편승해서, 작고 사랑스러운 것과 마음이 이끌리는 것을 손으로 눌러뜨리거나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를 만족시키려는 것입니다....물처럼 잔잔한 인생. 나는 그것만을 바랐는데, 교실에선 언제나 제물을 필요로 하는 종교가 판을 칩니다.

 

 

 

 

 

  왜 모두 나를 따돌리고, 그냥 교실에 앉아 있기만 하는 나한테 불쾌감을 주려고 하는지,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그냥 가려운 느낌, 아이들이 느낀건 그것뿐입니다. 그리고 그걸 누군가가 긁습니다. 그러면 정말로 가려워집니다. 그래서 또 긁습니다. 그러면 더는 참을 수 없어져 일제히 손톱을 세웁니다. 이제 손톱들은 긁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겨, 마치 무엇에 씐 것처럼 이유도 모르고 손가락을 움직이게 됩니다.

  긁힌 내가 처음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가진 자존심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쩌면 그냥 우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내 팔에 앉은 모기를 가만히 관찰해. 모기는 신나서 기분 좋게 피를 빨지. 보고 있노라면 모기의 배가 점점 빨갛게 부어 가는 걸 잘 알 수 있지. 배가 빵빵하게 부풀면, 모기는 선생님 팔에서 휘청휘청 떨어져 나간단다. 하지만 배가 불러서 제대로 날지 못해. 그걸 단번에 찰싹 때리는 거다. 조금 물렸든 오래 물렸든 가렵기는 마찬가지거든. 그렇다면 죽이기 쉬운 쪽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니?

 

  내가 탄생시킨 살인법은 경멸이라는 두 글자였습니다. 인간을 죽인다는 건 적절하지 않은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남자아이들의 신발에 욕망을 느끼는 내가 인간이라면, 나는 그녀들을 나와 똑같은 위치에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선 자신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이들을 동물로 끌어내립니다. 그러고 나서 조금씩 죽여 나가는 것입니다.

 

 

 

 

 

 

 

 

 

2. 나비의 전족

 

자신을 항상 그늘에 두고 지배하려는 친구에게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의 우월감을 증명하려는 마음에 '첫경험'을 한 17살의 아이.

읽으면서 내내 '펫걸'이 떠올랐는데, 그 영화처럼 이 작품도 결말까지 모두 봐야 한다.

 

 

  그 애는 내 가슴에 옹골찬 말뚝을 잘도 박았다. 그 말뚝은 시간을 흡수하며 가슴 속 깊숙이 침투해 들어온다. 그리고 화석으로 변한 지금도 문득 가슴 밑바닥에서 쿵쿵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그러면 난 기억해 낸다. 아아. 난 전족을 당했었지...나는 다리를 끈처럼 묶어 버리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건 실패였다. 벌어지는 건 다리가 아니라 가슴이다. 칼에 베여 벌어진 가슴. 거기엔 화석이 있다. 화석을 둘러싼 따뜻한 고름이 끈적하게 흘러 주위를 더럽힌다. 나는 이제 이걸 잘라 팔면서 살아가야 해. 그렇게 생각하면 갑자기 족쇄는 벗겨진다. 나는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마음은 편해지지 않는다. 나는 마음속에 전족을 기르고 있다.

 

 

 어두운 집 안에서 유일하게 색채를 가진 존재였던 에리코, 그녀가 바깥 세계로 나가려면 똑같이 그녀 주위에 '어두운 집'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붙들려, 그 집이 되는 사태로부터 도망치려다 실패했다. 그럴 수 없다고 꺠달은 순간부터 나는 에리코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무기오와는, 그의 방에 떨어져 있던 누군가의 립스틱이 원인이 되어 헤어졌다. 나 자신의 매력을 확인시켜 준 무기오와 헤어질 때, 나는 울었다. 우리는 서로의 욱체에 질려 갔고, 육체 이외의 것으로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몰랐다. 립스틱은 그 사실을 우리에게 인식 시킨 계기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아주 많이 울었지만, 그건 무기오와의 이별이 슬퍼서라기보다, 어째서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의 육체에 질릴 수 있는지 스스로가 한심해서였다.  

 

 

 

 

 

 

 

 

 

3. 제시의 등뼈

 

 

이 소설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성인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 여자가 괴로워하는 이유는 동성과의 관계가 아닌, 자신이 사랑하게 된 남자의 반항심 많은 아들과의 갈등 때문이다.

 

외적인 아름다움, 귀여움이나 애교, 성관계 등으로 성인남자들과의 원만한 연애를 풀어나갔던 이 여자는,

처음에는 사춘기 남자라는 이 아들에 대해 호기심으로 접근했다가 점점 꼬여가는 관계 떄문에 괴로워한다.

게다가 처음 마주하는 유형의 대상이라 어떻게 풀어나가야하는지 그 방법조차 잘 알지못한채 전전긍긍한다.

나중엔 남자를 사이에 두고 애정 경쟁을 벌이기까지 (...)

 

얼마전에 강풀의 웹툰 '이웃사람'을 봤다가,거기서 묘사된 의붓딸과 의붓어머니의 관계가 꽤 인상적이었는데

사실 2,30대 여성이 처음 마주하는 사춘기 아이들과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안다는게 더 이상해서

그 아이가 동성이든 이성이든 계속 어긋나고 삐걱거리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거겠다.

 

어디선가 중2 이후의 아이들을 '반인반충'이라고 묘사한 것을 듣고 한참 웃었었는데,

정말 이 시기의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제시가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좀 섬뜩해서;;

아빠라는 인간도 너무 무심한데다가 그다지 호감형이 아니고

나라면 아마 처음 화상사건이 있었을 때 뒤도 안돌아보고 관계를 끊었을 것 같다.

도대체 저 상황을 왜 버티고 있는지 이해가 안갔던 -_-;

 

 

 

그녀는 릭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릭을 사랑한 자신이 미웠던 것이다. 너무 사랑한 만큼 릭에 대한 증오를 어디에 쏟아야 좋을지 몰랐고, 그렇기 때문에 헤어진 다음에도 그에게 증오를 토해 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이라는 구실은 얼마나 편리한가. 그녀는 평생이 걸려도 다 전달하지 못할 증오를 부둥켜 안고 살아가겠지. 그리고 그러는 동안 릭은 죽을 때까지 그녀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그녀는 기억의 일기 속에 릭에 대한 원한을 끊이지 않고 기록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페이지에는 항상 사랑이라는 이름의 책갈피가 끼여 있다....짙은 화장과 어울리지 않는 조악한 물건들을 바닥에 엎드려서 줍는 그 여자의 모습은, 예전에 본 프랑스 영화에서 농부의 아내가 이삭을 줍던 모습을 연상케 해, 코코는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이 여자는 앞으로도 계속 마른 잎만 주워 가겠지. 어떤 남자를 사랑하건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