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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서 앤더 시티(cancer vixen)-마리사 아코첼라 마르케토 본문
내가 암에 걸린다면? 이라는 가정은 떠올리기 조차 찜찜한 질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암선고를 받은 순간 비장한 음악이라도 깔아주지만
현실에서는 수술과 재발위험, 그리고 가족과 본인의 고통만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병이 '암'이니까.
당장 가족은? 치료비는? 직장은? 이후의 내 삶은?....끝도 없는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불치병이 아니면서도 불치병스러워서, 수술을 한다고 해도 어떻게 언제 전이될지도 모르며
무지막지한 수술 비용과 유쾌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울게 뻔한 지리한 치료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변에서 한두사람은 찾아볼 수 있을만큼 흔한 병.
머리빠짐과 멍한 눈빛과 무기력함으로 표현되는 병.
그 중에서 여자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유방절제술이라는 무시무시한 과정과 함께 가는 유병암일 것이다.
이건 병 + 여성성의 상실을 상기시키니까.
이 작품은 '글래머'와 '뉴요커'지에 만화를 연재하는 마리사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결혼식을 몇 주 앞둔 순간에, 그녀의 커리어를 좀더 탄탄하게 자리매김하려는 시기에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유방암선고를 받게 된다.
이 수술로 인해 그녀는 40이 넘은 나이에 조기폐경을 예감하고
항암치료로 인해 임신과 출산을 포기하는 아픔을 겪는다.
보통 암 환자를 다룬 작품은, 수기의 형식을 띄기 마련이라
칙칙하고 우울하며 진을 다 빼놓아 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혹은 눈물짜내기를 위한 소품으로 사용되거나.
과장된 이야기 없이, 현실에서 갑자기 마주한 '암'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풀어나가고 있음에도.
이 이야기는 꽤 유쾌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난다.
만화의 스타일이나 색상도 밝고 화려하며 다채롭다.
이 작가의 특징은 아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꽤 직관적이라,
시멘트로 가득찬 트럭을 통째로 주사로 맞는 느낌이라든가,
커다란 얼음으로 만든 액체가 온몸으로 빈틈없이 퍼지는 기분이라는 식으로 써놓아서
대충 얼마나 아픈지 더 잘 이해하게 해준다는 것 -_-;;
다행히 그녀 주변에는 좋은 친구와 가족들의 현실적인 도움과 격려.
그리고 암수술 후에도 그녀 곁에 남아 충실히 지지를 보낸 반려자 살바노가 있었다.
암선고를 알리자마자 그녀에게 온갖 위로와 조언을 보내는 부분은 좀 부럽기도 했던.
제목처럼 '섹스앤더시티'를 연상시키는 그녀와 친구들과의 대화나
그녀가 삶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즐거움들이 작품이 하염없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아준다.
9.11테러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이나 미국 보험과 관련된 이야기를 볼 때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참 다행이다 싶었던...암 치료하려면 2억이 훌쩍 넘게 들더라;; -_-;;
이 작품의 또다른 특징은 여성과의 관계들에서 오는 기싸움, 엄마와 딸의 관계,
우울함과 절망을 맥의 사랑스러운 립스틱으로 숨긴다거나
힘든 항암치료를 받으러 갈 때 옷이나 좋아하는 구두로 치장해 기분전환을 하는 등등
읽으면서 공감할만한 것들이 꽤 있었다.
검사 받으면서 입는 병원 가운의 길이나 색감을 평가해놨음 ㅎㅎ
그리고 암수술 과정과 항암치료 과정에서 그녀가 겪었던 과정이 상세하게 나와있어서
실제로 암에 걸리면 어떤 치료를 거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항암치료를 받는다고 무조건 머리가 빠진다거나, 유방암= 100% 유방절제가 아니라는 것,
간장과 녹차가 암환자가 피해야하는 음식이라는건 오늘 처음 알게 됨)
지금 영화 제작중이라고 하던데,
개인적으로 완전 강추 감동 그 자체라고 할만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무력한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풀어나가는 방식은 꽤 마음에 들었다.
덧) 개인적으로는 왜 원제목을 저런 식으로 바꿔놨는지 이해가 안간다;;
저러니까 꼭 섹스앤더시티 아류작 같잖아 -_-;;
작가이자 실제 주인공.
작품에 등장했던, 프로포즈 반지와 푸른 아이섀도를 실제로 보니 어쩐지 반갑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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