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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책 읽기

잡문집-무라야미 하루키

DidISay 2012. 10. 15. 04:32

 

 

무라야미 하루키가 그동안 썼던 에세이들을 모아놓은 말 그대로 '잡문집'

그의 작품관에 대한 글도 있고, 음악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터뷰들도 있다.

 

교무실에 두는 책들은 보통 끊어서 읽게 되어서, 단편집이나 이런 수필류가 적당한데

이 책도 짬짬이 읽는 바람에 꽤 오래 걸려서 책장을 덮게 되었다.

매 장의 제목들이 꽤 멋진. 장수는 500pg로 꽤 두툼하다.

 

 

개인적으로 무라야미 하루키의 소설보다는 수필들을 훨씬 더 좋아하는데다가,

예전에 그의 '재즈에세이'란 수필집을 중학교 때인가 아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책에도 음악과 관련된 글들이 꽤나 많이 나와서 즐거운 독서시간이 되었다.

 

  확실히 자신이 애정을 가진 대상에 대한 글은, 같은 작가라 할지라도 그 깊이가 확연히 다른데

하루키의 경우에는 음악과 관련된 글에서 그런 애정이 담뿍 묻어난다.

 

 

읽다 보면 어쩐지 기승전결이 깔끔하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느낌이라

꽤 싱거운 사람이네 싶은 글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면이 오히려 교훈적으로 끝맺으려거나 인위적으로 끝내려는 강박관념이 보이지 않아서

한편으로는 더 좋기도 했다.

 

매 장마다 지금 어떤 장소에서 어떤 기분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나와 있을 때가 많아서,

그 분위기를 상상하면서 글을 읽어내려가는 즐거움이 있다.

 

 

 

 

   나이를 먹어서 좋을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젊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거나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건 기쁜 일입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전보다 전체상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혹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했던 디테일에 불현듯 눈뜨게 됩니다. 그게 나이를 먹어가는 기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경험은 인생에서 하나를 얻은 것 같은 흐뭇함에 젖어들게 합니다. 물론 반대로 젊을 때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나 문화도 있지만요.

 

  나에게 음악이 가진 최대의 훌륭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좋은 것과 나쁜것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차이도 알고 중간 정도 차이도 알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미묘한 작은 차이도 식별할 수 있죠. 물론 그것은 나한테 좋은 것, 나한테 나쁜 것이라는 뜻이니 그저 개인적인 기준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 차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인생의 질이라고 할 만한 것까지 크게 달라지게 만드니까요. 끊임없는 가치 판단의 축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그림일 수도 있고 와인일 수도 있고 요리일 수도 있지만 내 경우는 음악입니다. 그런 만큼 정말로 좋은 음악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여백이 있는 음악은 싫증나지 않는다 中

 

 

 

 

 

 

  비디오로 보는 브라이언 윌슨은 제대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태고, 다른 멤버도 꽤 많이 늙어 젊은 보조 뮤지션의 도움 없이는 아마도 만족스러운 무대를 유지할 수 없을 듯한 상황이지만 관객들은 대다수 그런 사실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은 비치보이스라는 1960년대의 전설이자 기억이자 광경을 있는 그대로 목격하고 기리기 위해 그곳을 찾은 것이다. 설령 브라이언이 한 곡당 겨우 네 마디만 노래한다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들이 지금 상태로 새 앨범을 취입하기는 무리겠지만, 이제 와서 대관절 누가 비치보이스의 신곡을 학수괘하겠는가. 레코드 가게에 가면, 캐피털 시대의 골든 올디스들을 CD로 재발매한 앨범을 얼마든 구할 수 있지 않은가.

 

  1963년에 라디오에서 처음으로 비치보이스의 '서핑 USA'를 들었을 때 나는 약간의 충격 같은 것을 받았다. 당시 나는 열네 살이었고 그 무렵에는아침부터 밤까지 틈만 나면 무조건 라디오를 켜 팝송을 들었다. 수많은 곡과 수많은 가수에게 푹 빠져들었지만(리키 넬슨, 엘비스, 보비 비, 보비 다리...그런 시대였다).  '서핑 USA'는 그때까지 들었던 다른 곡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정말로 신선했고 독창적이었다. 더 비치보이스라는 그야말로 편안한 이름의 밴드가 비음 섞인 목소리로 숨김없이 활짝 열어젖힌 채 부르는 '서핑송'에 나는 순식간에 반해버렸다. 노래가 내 마음의 문 같은 것을 힘껏 열어젖힌 것이다. 말로 잘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노래에 나와 관련된 특별한 뭔가가 담겨 있는 듯했다. 그 곡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한 차원 넓어지면서 까마득히 멀리 있는 것도 뚫어져라 응시하면 보일 것만 같았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지극히 단순하고 깨끗한 노래였으니까.

 

...

 

'서핑 USA'는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온 미국의 사람들이

바다를 가질 수 있다면 모두가

파도타기를 하겠지. 그래,

캘리포니아처럼.

 

 

 

 

 

 

...

 

  캘리포니아 사람이 모두 서핑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은 한참 후에 알았다. 그리고 브랑이언 윌슨 역시 실은 서핑 같은 건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는 물을 무서워해서 바다 근처에 가는 것조차 질색했다. 브라이언은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는 고독한 청년이었고, 그에게 음악은 꿈을 꾸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꿈꾸는 행위는 그에게 하나의 치유였으며, 또한 가혹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아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결국 이제 와서 돌이켜보건대 브라이언 윌슨의 음악이 내 마음을 그토록 뒤흔든 까닭은 '손이 닿지 않는 머나먼 곳'에 있는 것들을 그가 열정적이면서도 진지하게 노래했기 때문이 아닐까. 눈부신 태양 빛이 쏟아지는 말리부 해변, 비키니를 입은 금발의 소녀들, 햄버그 가게 주차장에 멈춰선 번쩍번쩍 빛나는 선더버드, 서프보드용 나무 캐리어를 장식한 스테이션왜건 유원지 같은 고등학교,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까지고 바래지 않고 끝없이 계속되는 천진함, 십대 소년에게(또한 소녀에게도) 그것은 그야말로 꿈의 세계였다. 우리는 브라이언처럼 그런 꿈을 꾸고 브라이언처럼 그런 우화를 믿었다. 그것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고, 우리는 그의 음악을 통해 그 가능서의 향기를 즐겼다.

 

...

 

 그리고 세월이 흘러 비치보이스는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 브라이언은 기나긴 은퇴를 접고 무대 위에 다시 섰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캘리포니아의 꿈을 노래한다. 그것은 분명 기릴 만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이미 그곳에 없다. 브라이언이 비치보이스의 영혼이며 심장이었다면, 그 영혼은 이미 얼어붙었고 심장은 고동을 멈췄다. 그들이 자신들의 장수를 자랑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더욱 죽음을 향해 가는 듯 보인다. 물론 브라이언은 그곳에 있다. 한밤의 그믐달 같은 뻣뻣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야외 콘서트장 무대위에서 묵묵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마이크를 향해 입을 벌린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그곳에 없다. 그는 어스름한 혼자만의 방안에 있을 뿐이다. 죽은 사람의 눈도 번쩍 뜨게 할 것처럼 활기차게 날아다니는 마이크 러브 옆에서 그가 들려주는 얘기는 꿈의 기억이 아니라 꿈의 부재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그 무언가다. 그래도 우리는 절실하게 브라이언을 사랑한다. 우리는 그 방에서 그 옛날 꿈의 울림을 찾아헤맨다.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일찍이 그곳에는 정말로 아름다운 것이, 정말로 행복하고 정말로 복된 것이 그야말로 흘러넘칠 듯이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그 어떤 울림도 두 번 다시 공기를 뒤흔들지는 못한다.

 

 

-모두가 바다를 가질 수 있다면 中

 

 

 

 

 

 

 

 애당초 소설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스물아홉 살까지는. 이것은 솔직한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많은 책을 읽고 소설에 푹 빠져 지냈으니,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도저히 소설 쓰는 재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십대에 동경하던 작가를 들자면 도스토옙스키고 카프카고 발자크였다. 아무래도 내가 이 작가들이 후대에 남긴 작품에 필적할 만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치감치 소설을 쓰겠다는 희망을 말살시켜버렸다. 책읽기는 취미로 하면 된다. 일은 다른 분야에서 찾자.

 

  결국 음악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이십대 중반에 일해서 모은 돈과, 친척과 친구에게 얻은 빚으로 도쿄에 조그만 재즈 클럽을 열었다. 낮에는 커피를 팔았고 저녁에는 바로 변했다. 간단한 식사도 내놓았다. 평소에는 레코드를 틀고 주말에는 젊은 재즈 연주자들을 불러 라이브 공연을 했다. 그렇게 칠 년 쯤 계속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그 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재즈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스물아홉 살이 되고 난데없이 소설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뭔가 쓸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물론 도스토옙스키나 발자크에 필적할 가망은 없지만, 뭐 그래도 상관없잖아, 하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딱히 대문호가 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소설을 쓴다고 해도 대체 뭘 어떻게 써야 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 소설을 써본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기 문체 같은 것도 없었다. 소설 쓰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고, 문학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도 없었다. 다만 그때는 '혹시 음악을 연주하듯이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건 분명 멋진 일이겠지'라고만 생각했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운 덕에 악보를 읽고 간단한 곳 정도는 칠 수 있었지만, 물론 프로가 될 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그러나 머릿 속에서 나의 음악 같은 것이 강려하고 풍성하하게 소용돌이치는 느낌을 받을 때가 곧잘 있었다. 그런 느낌을 어떻게든 문장이라는 형태로 옮겨낼 수는 없을까. 내 글은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읽지 않겠지. 나는 리듬의 소중함을 음악에서 (주로 재즈에서) 배웠다. 그리고 그 리듬에 맞는 멜로디, 요컨대 적확한 어휘의 배열이 뒤따른다. 그것이 매끄럽고 아름답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리고 함디, 그 어휘들을 지탱해주는 내적인 마음의 울림, 그다음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뒤따른다-즉흥연주다. 특별한 채널을 통과한 이야기가 내부에서 자유로이 솟구쳐오른다. 나는 그저 그 흐름을 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이 온다. 작품을 다 마치고(혹은 연주를 다 마치고) 맛볼 수 있는 '내가 어딘가 새로운, 의미 있는 장소에 이르렀다'는 고양된 기분이다. 그리고 잘만 풀리면, 우리는 독자=청중과 그 고조되어가는 기분을 공유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데서는 얻을 수 없는 멋진 성취다.

 

  이처럼 나는 글쓰기를 거의 음악에서 배웠다. 역설적이지만, 만약 그토록 음악에 빠져들지 않았다면 어쩌면 소설가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설가가 된 지 삼십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여전히 소설 창작의 많은 방법론을 뛰어난 음악에서 배우고 있다. 예를 들어 찰리 파커가 자유자재로 연이어 풀어내는 프레이즈는 F.스콧 피츠제럴드의 유려한 산문 못지 않게 나의 문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에 깃든 뛰어난 자기 혁신성은 지금도 내가 문학적 규범의 하나로 우러르는 것이다.

 

  텔로니어스 멍크는 내가 가장 경애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인데, "당신의 연주는 어떻게 그렇게 특별하게 울리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가리키며 이렇게대답했다.

  "새로운 음note은 어디에도 없어, 건반을 봐, 모든 음은 이미 그 안에 늘어서 있지, 그렇지만 어떤 음에다 자네가 확실하게 의미를 담으면, 그것이 다르게 울려퍼지지,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은 음들을 주워담는 거야"

 

  소설을 쓰면서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 그 어디에도 새로운 말은 없다. 지극히 예사로운 평범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놓인다. 우리 앞에는 아직도 드넓은 미지의 지평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는 비옥한 대지가 개척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울림을 찾아서 中

 

 

 

 

 

 

텔로니어스 몽크의 연주 중 내가 좋아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