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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생각

어설프고. 찢긴. 청춘의 맛

DidISay 2012. 11. 29. 01:47

 

 

영화 도둑들을 보면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다시 보는 전지현의 재기발랄한 모습이었다.

 

 

내가 이 여배우를 좋아하게 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엽기적인 그녀' 이후부터였는데,

작품활동이 시원치 않아지면서 그녀가  '한물간' 취급받을 때도

난  그녀를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한살두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좀더 가속화되었다.

 

대부분의 배우에 대한 건조한 감정에 비해, 왜 그녀에 대한 애정만은 그리 쉬 죽지 않는지

스스로도 궁금하곤 했는데, 어느날 재방송으로 '엽기적인 그녀'를 보다가 문득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 감정의 원천은 전지현의 유별난 매력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녀가 연기한 '엽기적인 그녀'에 대한 끌림이었다.

 

 

 

 

 

청춘.하면 떠오르는 영화를 국내에서 뽑는다면

난 '발레교습소'와 '엽기적인 그녀'를 고를 것이다.

 

전자가 할퀴고 찢겨진 아픈 청춘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면,

후자의 전지현과 차태연은 입시지옥이나 취업난이 존재하지 않는

그저 어설픈 감정들과 총천연색 캠퍼스만 아름답게 빛나는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화된 청춘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 우리가 '아프니까 청춘'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기 전에,

일반적으로 '젊음'하면 떠올렸던 그런 예쁘고 발랄한 청춘의 모습 말이다.

그곳은 스펙쌓기 경쟁이나 자소서 쓰기도, 비정규직 문제도 없는 세상이다.

 

 

 

 

취업을 하고 하이힐과 차르르 떨어지는 정장이 잘 어울리게 되었을 때,

정작 나의 내면은 낯선 물체를 삼키지도 못한 채 입에 우물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수능날 우르르 몰려가는 학생들 사이를 반대로 지나갈 때

등교길에 더이상 교복이 아닌 나를 바라볼 때

캠퍼스를 걸어가다, 문득 더이상 들어갈 강의실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밀려오는 그 감정들은 지독하게 고독했다.

 

난 이미 청춘의 대명사 같은 학생 신분을 건너서, 사회인으로 넘어왔는데

내 정서나 생각들은 아직도 저 멀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기묘한 느낌은

이미 나보다 먼저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선배들과 이야기를 하며 꼰대냄새를 맡았을 때.

내 주변의 사람들이 찌들고 지친 모습으로 변해갈 때

점점 더 지독한 향을 풍기며 다가왔다. 

 

 

 

 

 

 

대안학교 교사를 꿈꾸던 나는 사교육의 한복판에서 일을 하고 있고,

학교 다닐 때 가장 존경하던 교수님은,

대학원을 거치며 학생들을 착취하는 '흔한 교수'로 기억되어 버렸다.

예술을 좋아하고 우리 중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던 친구는

요즘 일을 하다보면, 신경이 거세된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아직 우리를 '청춘'이라 부를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청춘의 시간은

찢어지고 물에 젖어 축축한. 미적지근한 종이의 맛이다.

턱없이 부족한 물통을 들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횡단하는 느낌.

 

 

 

 

그래. 이렇게 주변이. 내가 변해갈 수록

그 보얗게 빛나던 청춘의 추억들은 그대로 남아있길

혹은 내 이후의 아이들은 계속해서 그 모습을 간직하길 바라면서

'엽기적인 그녀'를 그렇게 아껴왔는지도 모르겠다.

 

 

까르르 숨넘어갈 듯 웃으며 거리를 걷던.

아주 사소한 일에 티격태격 하며 또 금방 화해하던

그때의 감정들은 어느새 나도 못 볼 어깨뒤편으로 사라지고 말았구나.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것도 같은데, 쉬 잡히질 않는다.

 

 

 

 

 

 

 

 

루시드 폴-그대 손으로.

 

 

 

 

 

이장혁. 스무살

 

 

 

내가 알던 형들은 하나 둘 날개를 접고
아니라던 곳으로 조금씩 스며들었지
난 아직 고갤 흔들며 형들이 찾으려했던
그 무언가를 찾아 낯선 길로 나섰어
이해할 수 없었던 세상의 수상한 질서
하지만 난 상관없는 듯


너는 말이 없었고 나는 취해있었어
우리에겐 그런 게 익숙했던 것처럼
귀찮은 숙제같은 그런 나를 보면서
더 이상 어떤 말도 넌 하기 싫었겠지
내가 말한 모든 건 뼈 속의 알콜처럼
널 어지럽게 만들고
밖으로 밖으로 너는 나가버리고
안으로 안으로 나는 혼자 남겨져
밖으로 밖으로 널 잡고 싶었지만
안으로 안으로 나는 취해만 갔어


어둡고 축축한 그 방안 그녀는 옷을 벗었고
차가운 달빛아래 그녀는 하얗게 빛났어
나는 그녀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고
창 밖이 밝아 왔을 때 난 모든 걸 알았지
그녀가 예뻤냐고 그녀의 이름이 뭐냐고
가끔 넌 내게 묻지만
밖으로 밖으로 사람들이 지나고
안으로 안으로 그녀는 잠들어있어
밖으로 밖으로 달아나고 싶었지만
안으로 안으로 우린 벌거벗었어
밖으로 밖으로 눈부신 태양이 뜨고
안으로 안으로 날 비추던 그 햇살
밖으론 밖으론 난 아무렇지 않은 듯
안으론 안으론 하지만 난 울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