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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였던 이야기 3. 분명한 것. 본문

스쳐가는 생각

우리였던 이야기 3. 분명한 것.

DidISay 2013. 1. 9. 05:19

 

 

                                                       마르크 샤갈, 비테프스크 위의 누드 Nude over vitebsk,1933

 

 

 

'선생님. 너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어른들은 어떻게 해요' ..라고

어느날 기운 없는 목소리의 학생이 물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비슷한 꿈을 꾸고 있었다.

 

 

 

 

꿈에서 나는 어느 국밥집에 앉아있었다.

좁다랗고 추레한 의자와 나무탁자. 압도될만한 크기의 가마솥.

처음 보는 곳.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여기저기 놓인 가마솥 때문에 사방에서는 엄청난 양의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내 앞에 놓인 커다란 그릇에 내 눈 앞 역시 뿌옇게 가려졌다. 

 

그리고 맞은편 좌석의 남자가 몸을 돌렸을 때,

나는 그 남자가 바로 '그'임을 알아차렸지만

난 일어나서 그를 부를 수도, 뚜렷하게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간신히 숨을 고르며 다시 그쪽을 응시하면,

어느새 장면은 바뀌어 사방이 조여드는 방안에서 나는 거울을 마주하고 있었다.

곧 벽은 무너져내렸고, 고래울음소리와 파도소리가 들리며

온통 물에 흠뻑 잠긴 느낌에 사로잡혀 잠에서 깼다.

 

 

 

 

 

꿈을 꾸면 오히려 더 괴롭던 시기에, 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아무도 없는 새벽의 냉정한 공기를 마주하게 되는

그 순간을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매일의 잠은 악다구니를 쓰는 싸움의 연속 같았다.

 

그 순간 아주 서서히. 나의 속도로 다른 세계로 빠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책이었고 나는 화집을 뒤지거나 그저 활자를 따라가는 느린 읽기를 시작했다.

그 시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

 

 

 

 

가만히 음악을 틀어놓고 그렇게 가만가만 검정과 흰색.

가끔은 연한 노랑과 회색의 빛을 따라가다 보면 내 마음은 가라앉았고

둥글게 등을 말고 무릎에 기대어 나를 보호하는 자세에서

등을 침대에 기대고 옆으로 누워 편하게 쉬는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작은 불빛에 의존해서 책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스르륵 잠이 왔고 그런 날의 아침은 독서용 안경을 그대로 낀채로 일어나곤 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순간일 때.

안경을 낀. 반쯤 감긴 눈을 들어 창밖을 보면 세상이 너무나 또렷하게 보여

멍했던 정신이 반짝 돌아오는 경험을 반복했다.

 

그리고 언제나 만약 꿈에서도 모든 것이 이렇게 뚜렷하게 보인다면

그래서 그 얼굴을 똑바로 다시 마주한다면

내가 덜 괴로울까. 아니면 더 괴로워질까를 생각했다.

괜한 생각이라며 손을 하얀 비누거품에 뽀득뽀득 씻어내면서.

 

 

 

 

 

 

 

난 이제 더이상 그의 꿈을 꾸지 않고, 괴로워하며 잠에서 깨는 일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와 마주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사랑이 컸던만큼, 우리가 서로에게 준 상처 역시 너무나 깊었고,

난 너를 결코 이해할 수 없고, 너에게 이해받은 적도 없었다는 말을 주고 받은 이후

우리의 관계는 영원히 끝이 났다.

 

만약 우리가 좀더 일찍 서로를 분명하게 바라보았다면,

조금은 더 좋은 모습으로 끝을 맺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헤어진 이후에도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분노와 후회로 돌아와서

나를 꽤 오랜 시간동안 괴롭혔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그와 나는 너무 미성숙했고

서로 결코 만나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이 생각이 든 뒤에는, 시간을 그리고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무가치한 대상에게 흘려버리고 낭비했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나는 아직도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올바른 대처방안이나 지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 내가 그의 얼굴을 보았다고 한들 우리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었고,

오히려 내 마음만 더 아팠을거라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또렷하고 답이 있는 말끔한 상태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좀더 아프더라도 고통을 마주하고 바닥을 쳐보는 것이 더 낫다고 느꼈지만,

가끔은 당장 해결되지 않는 감정들은 그대로 두는 것이 어른스러운 방법이다.

아픔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잠시 잊고 그저 시간을 견디는 것만이

내 마음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때 배웠다.

 

가시를 아무리 감싸고 만져도 결코 둥글어지는 법이 없듯이,

상처를 주는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뚜렷하게 기억하려고 해봐도

그것은 내게 붉은 피를 안겨줄 뿐이다.

 

 

 

 

 

 

인생은 길고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그저 세월이 가는대로 질질 목에 끌려 갈 것인지,

내가 앞장서서 걸어갈 것인지는 오직 내 태도가 결정한다.

 

긴 삶의 행로에서 어느부분은 뚜렷하고 선명하게

어느 부분은 희미하고 기억마저 퇴색되어 남을 것이다.

 

그 많은 사건과 하루하루의 드라마에서 굳이 아픈 것을 헤집어

선명하게 기억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은 가만히 마음의 상자 속에 단단히 봉인한 채,

시간에 풍화작용 하도록 놔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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