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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아무르 (Amour, 2012)

DidISay 2012. 12. 30. 02:43

예전에 행복전도사로 유명하시던 분이, 오랜 투병생활 끝에

고통스럽고 일상적인 삶을 포기해야하는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 남편과 동반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그 유서가  너무 충격적이면서도 마음이 아팠는데,

자살이란 이유로 그 기사에 달린 많은 비난 댓글들을 보면서 잠시 멍해졌었다.

 

 

 

 

자살은 예방하고 방지해야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사람마다 아픔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폭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비참한 삶과 목숨을 의미없이 이어가는 것보다,

존엄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을 비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자살은 죄악..지옥불.. 어쩌고 하는 기독교신자들의 말을 정말 싫어한다.

실제로 이 이야기를 나에게 했던 사람한테 오만정이 다 떨어졌을 정도로.

 

그렇게 죽을 힘으로 버티지 왜 포기하고 죽냐고.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쩜 그렇게 쉽게 누군가의 삶을 재단하고 확정지을 수 있는 것일까.

왜 니가 경험한 그 좁디좁은 세계로,  남이 죽도록 고생해서 버텨온 삶을 평가하는거냐.

이 무슨 예의없고 몰상식한 짓인지 모르겠다.

 

자살은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뒤르켐이 말했듯이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자들의 마지막 선택이지.

 

 

오늘 아무르를 보면서, 갑자기 저 기사가 떠올라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한동안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서 내내 저 이야길 했을정도로..

 


 

미하엘 하네케의 신작인 이 영화를 보겠다는 일념 하에,

아침 10시에 상상마당에 가자고 약속을 했다.  

 

상상마당에서는 오늘이 마지막 상영인 것 같아, 주말약속으로는 좀 무리한건데

다행히 나보다 오빠가 먼저 일어나서 나를 전화로 깨워줌 (...)

 

 

 

 

자신과 30여년간 함께 한 아내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해서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는데

그의 전작들에 비해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보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복잡해지던...

 

이 작품은 유명 음악가 부부인 조르주와 안느의 노년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가난에 허덕이지도, 서로에 대한 증오만 남지도 않은 이 부부는

한국의 대부분의 노년을 생각해본다면 감정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매우 축복받은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에게 아직도 깊은 사랑을 느끼며,

딸도 매우 행복하진 않아도 그럭저럭 삶을 꾸려나가고 있고

좀 느릿하고 적막한 하루이긴 하지만,  아직도 음악회와 독서를 즐길만큼 여가생활도 풍요로운 편이다.

때문에 보통 비참한 노년의 삶이 그렇듯, 자식만을 목빼고 기다리지도 않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며,

어지간한 불편함은 가정부나 고용인들의 힘으로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불행은 어느날 갑자기 안느가 뇌졸중으로 인해,

한쪽 팔 외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가 되며 시작된다.

 

 

 

안느는 기본적인 배변활동도, 독서도 침대에 눕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게 된 자신의 처지를 쉽게 받아들이질 못한다.

화장실에서 팬티조차 자신의 힘으로 올릴 수 없어, 다시 남편을 불러야 하는 그 처참함이

너무 마음 아파서 보는 내내 갑갑했다.

 

조르주가 아무리 상냥하게 그녀를 보살피려 해도, 모든 불편함을 해소해주기엔 한계가 있으며

이는 간호사와 의사를 정기적을 고용하고, 가정부가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제자들은, 안느의 처지를 동정하며

빠른 쾌유를 바라는 카드를 보내지만 안느에게 이것은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심지어 딸이나 사위에게조차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으므로.

 

 

 

불친절한 간호사를 해고한 뒤 이들의 삶은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데,

이전 이들 부부의 고요한 삶이 우아하고 평온해 보였다면

안느의 발병 후 카메라의 느린 움직임은 그녀의 장애로 인한 것처럼 인식되며

적막하고 답답한 느낌이 점층적으로 무겁게 더해간다.

 

 

 

시간이 지나 안느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단계까지 증세가 심해지며,

결국 조르주는 안느를 위해서 중대한 결단을 하게 된다.

보는 사람마다 의견차가 있겠지만, 난 그것이 조르주가 부인을 위해 해줄 수 있었던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본 뒤에 나도 같은 처지가 되면,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게 된 첫날 저렇게 해달라고 말했는데

오빠가 대답을 안하고 침묵을 하길래 제발 꼭 저렇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먼저 저렇게 된다면.

그 아픔과 두려움을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언제나. 왈칵. 공포가 밀려온다.

 

 

 

 

이 영화는 갑갑하리만큼 치밀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구멍 같은 것이 군데군데 있다.

예를 들면,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사이의 장면이나

간호사를 해고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 등은 모두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구멍들 때문에 오히려 이들 부부의 생활을 짐작해가면서 공감대가 더 커졌는데,

마지막 이들의 외출장면이 얼마나 마음아팠는지 모른다.

 

아무리 사랑해도. 외적인 조건들이 잘 되어 있어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구나 싶어서...

 

나의 노년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두려워지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