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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비버(The Beaver, 2011)

DidISay 2013. 1. 2. 07:52

하루 하루 매일같이 행복한 척 하는 것이 미친겁니다.

미쳤다는 건 비참한 존재가 되어, 반쯤 잠들어 멍하게 돌아다니는 겁니다.

 

하루 또 하루, 매일같이 행복한 척하는 게 미친 겁니다.

다 잘되고 있는 척 하는 건 평생을 그런 척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잠재력과 희망,

모든 기쁨과 감정,

삶의 모든 열정을 빨아먹어버립니다.

 

손을 뻗어 그걸 단단히 잡고, 피를 빨아먹는 것들에게서 다시 빼앗으세요

 

 

집에서 혼자 있을 때와 직장에서의 나의 모습,

친구들을 만날 때와 어른들을 만날 때의 나의 모습은 모두 다르다.  

전자가 자유분방하고 한없이 태평한 모습일 때가 많다면,

후자는 좀더 신중하고 야무진 모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지킬과 하이드처럼 완벽한 이중성까진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진짜 내면의 나'와 '사회적인 모습으로서의 나'를 구분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어느정도 일치한다면 좋겠지만,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나의 모습이

실제 나와 많은 차이가 있을 때 우리는 피곤함을 느끼고 우울한 감정을 갖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출퇴근길이 즐겁고 활기차기 보다는,

고단함의 기색이 역력한 걸지도 모르겠다. 지친 배우들처럼.

 

 

 

영화 '비버'는 멜 깁슨이 연기한, 우울증에 걸린 중년남자.

월터 블랙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잘 나가던 회사는 그가 경영을 맡은 이후 계속 내리막길이고,

그의 큰아들은 아버지와 닮은 점을 발견할 때마다 이를 지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둘째 아들은 학교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왕따이며,

부인은 남편의 우울증을 잊기 위해 워커홀릭이 되어가고 있다.

 

온통 물이 새는 그의 집처럼, 그의 삶 여기저기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문제는 월터가 집도, 본인 자신의 상태도 전혀 고칠 의욕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온갖 운동과 명상프로그램 등을 실천해봤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

몇년동안 집에서 잠만 자는 무기력한 상태로 지낸 결과, 부인과 별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쫓겨난 첫날 모텔에서 자살시도를 하게 되며, 이마저도 실패에 돌아간다.

 

다음날 육중한 티비에 깔려 잠에서 깬 그가 문득 생각한 것은,

망가진 삶을 고치려하지 말고 싸그리 버리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자신을 대리할 존재로 '비버' 손가락 인형을 내세운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을,  연기하듯이 비버에게 대입해 말하게 된다.

 

 

 

주변인들을 설득시키는 과정은 다소 힘들었지만,

사람들은 '비버'로 돌아온 자신감 넘치고 진취적인 그를 좋아한다.

 

월터는 둘째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친구들과 놀게 도와주고,

부인의 애정을 다시 견고히 해나간다.

회사마저 다시 정상궤도로 올라, 매스컴의 관심까지 받게 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는 직장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심지어 혼자 있을 때도

자신이 만들어낸 가공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직접적으로 상처를 이야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더 쉽고 안전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내면의 고통을 숨기고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물이 두명 더 나오는데,

첫째는 월터의 큰 아들 포터이고, 두번째는 포터의 여자친구 노라이다.

 

포터는 복잡한 자신의 가정환경과 아버지에 대한 감정 때문에 자꾸 현실도피적인 경향을 보인다.

때문에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한 글을 쓰기 보다는, 다른친구들의 에세이를 대신 써주며 재능을 허비한다.

그렇게 싫어하는 아버지지만, 아버지와 꼭 닮은 것이 또 자신이라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가 없다.

 

 

노라는 오빠의 죽음 때문에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지만, 이를 그림등을 통해 치유하려는 노력을 멈추고

당장 중요해보이는 공부에 매진한다. 하지만 그녀의 속은 계속 곪아가기만 한다.

그래서 졸업식 때 진정한 자신이 드러나는 연설문을 쓰기 두려워하며, 포터에게 대필을 맡긴다.

 

 

 

 

처음에는 이 영화가 비버라는 인형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하고,

그 과정을 통해 우울증을 치료하는 내용이 아닐까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월터의 부인(감독인 조지 포스터가 연기) 은 남편이 비버라는 인형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이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창조하고 과거의 나와 화해하길 바란다.

 

하지만 월터는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것 같은 현실 속에서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과거는 덮어두고 잊으려고 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며 화를 낸다.

그는 아직 과거와 대면할 용기가 없으며,

사회적으로 내세운 완벽한 모습인 비버는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되어 작용한다.

 

 

 

 

월터도, 포터도, 노라도

그 문제나 상황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새 발을 내딛는다고 해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외적인 배경이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내 마음 속의 고통은 그대로 머물렀으므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우리 개개인이 아무리 힘든 순간이라도

나를 사랑하는 단 한사람이 있다면, 나를 아껴주고 생각해주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겉돌기만 하던 월터와 포터는 마침내 어색한 화해를 하게 된다.

이 둘은 각자는 서로 우울하고 외로운 사람이지만,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외로움을 잊어갈 것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하느님도 새들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린다고 시인은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고독한 산그림자가 마을로 내려올 때,
함께 눈길을 걸어주고 빗길을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내 기다림이 공연한 외침으로 흩어지지 않게 해줄 그 누군가가.

 

 

 

 

안녕하세요 졸업생들. 

죽은 시인들, 화가, 미래의 아인슈타인, 기타 그 사이인 여러분 


전 여러분이 그동안 속아왔음을 알리려고 왔습니다.

그간 부모님이나 선생님 의사들이 거짓말을 해왔습니다

다들 똑같은 여섯 단어 거짓말이죠

 

'앞으로 모두 다 잘 될거야'

 

하지만그렇지 않으면요.

만약 인간의 경험의 일부만 유전받은 것일 뿐이라면요.

곱슬머리나 파란눈처럼

 

고통이 여러분 유전자에 있고, 비극이 타고난 권리라면요

아니면 혹은 가끔은 전혀 예측 못했던 일이 갑자기 일어난다면요

갑자기 일이 생긴다면

 

 (...)

 

거짓이 현실이 되길 기다리며 너무 많은 시간들을 허비하다가,

결국엔 나 대신 진실을 말해달라고 돈을 줬어요

 

전 괜찮지 않아요 전혀

 

사실을 말하자면 제겐 빠진게 있어요

내가 가장 사랑했던 것. 지금 앞줄에 앉아있길 바랐던 그 얼굴이요

 

다시는 돌려받지 못할 제 오빠죠

 

그걸 제가 어떻게 해야 되죠?

우리 중 누구라도 어떻게 해야하죠? 거짓말 말고?

 

전 이렇게 믿어요

지금 이 강당에 여러분과 함께 한 사람들이 있어요

 

기꺼이 여러분을 일으켜 주고, 먼지를 털어주고, 키스해주고 ,용서해주는,

여러분을 참아주고, 데려다려주고, 데려가주고,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

 

모든게 항상 잘 되진 않겠지만, 이게 맞다는건 압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