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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비지터(The Visitor, 2007)

DidISay 2013. 1. 3. 02:54

1. 삶의 빈틈을 온기로 채워나가기.

 

 

영화 '비지터'는 삶의 밀도가 너무 작아져버린 노교수 월터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그는 피아니스트였던 아내가 죽은 후, 홀로 단조로운 생활을 한 탓에

대인관계 스킬 따위 내던져버린 무뚝뚝한 노인이다.  

매일의 권태에서 벗어나고자 피아노를 배워보려하나, 이것도 나이탓인지 쉽지가 않다.

 

강의 하나를 맡고 있지만 십년 째 같은 강의록에 같은 수업내용을 거듭하며,

이런 강의는 당연히 기계적이고 재미 없는 일상의 반복이 되어버린다.

발표논문 역시 이름만 올린 것일 뿐, 개인적인 성취감은 없다.

 

 

 

 

그런 그가 울며겨자 먹기로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뉴욕에 방문하면서 사건은 발생한다. 

한참동안 비워두었던 뉴욕의 집에, 부동산업자의 농간에 의해 불법체류자 커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오갈데 없는 사람을 야밤에 매정하게 내쫓기가 뭐했던 그는, 이들을 잠시 머물게 해준다.

 

시리아출신의 음악가 타렉과 세네갈 출신의 자이납은

그렇게 월터와 함께 인종도 국적도 모두 다른 동거를 시작한다.

 

 

 

지극히 고립된 생활을 하던 월터는,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안부를 물어주고

타렉에게 '젬베'를 배우는 일상이 점점 좋아진다. 

그리고 이 '젬베 두드리기'는 그의 단조로웠던 일상에 완전히 활력을 불러일으키며,

점점 무표정했던 얼굴에 다채로운 표정이 나타나게 해준다.

 

누군가와 선물을 주고 받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음악을 함께 듣는 행위는

단순히 시간의 일부를 공유하는 것 이상의 힘이 있다.

그것은 돈을 많이 벌고, 명성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채워질 수 없는 정서적인 기쁨을

월터로 하여금 다시 발견하게 했다.

 

 

 

이웃사람의 친절한 말조차 귀찮아 했던 월터는

애초에 휴머니스트도, 이민자들을 위한 봉사자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위해 분노하고,

자신의 재화를 쏟아부으며 돕게 한 원동력은 이 따뜻한 기억에 있었다.

 

 

결국 타렉이 사라진 이후에도, 월터의 곁을 지키는 둥그란 젬베처럼

그의 마음 속에는 훈훈한 온기가 남게 된다.

 

 

 

 

 

 

 

2. 디아스포라.

 

911테러 이후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진 상황에서

타렉이 아무 이유 없이 검문을 당하고 이민국에 잡혀가면서 따뜻했던 분위기는 역전된다.

 

 

이 영화는 지극히 무거운 주제를 비교적 가볍고 담담하게 버무려 놨다.

타렉과 노교수가 연주하는 드럼은 멋지고 유쾌하며, 펠라 쿠티의 음악들은 감각적이다.

또한 영화 끝까지 감정과잉이나 구질구질한 장면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민국에 붙어 있는 자유의 여신상과 포스터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대우를 받는 이주민들의 현실과 명백히 대조된다.

 

같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타렉의 어머니나 자이납은 이민국에 들어갈 수 없으며,

아무 연락 없이 이들을 옮기거나 추방시켜도,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 기간을 거주했고, 모든 삶의 기반이 미국에 있다고 한들

주류층과 같은 그룹에 속하지 않는 이상 이들은 영원한 '방문자'일 뿐이다.

심지어 불법체류자가 아닌 영주권자라고 해도 그들은 결코 '주인'이 될 수 없다.

 

 

대문자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은 본래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자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한다.(세계대백과사전,平凡社,1981) 그러나 그것은 물론 사전상의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유대인뿐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인 등 다양한 '이산의 백성'을 좀더 일반적으로 칭하는 소문자 보통명사 diaspora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

 

  이 글에서 나는 근대의 노예무역, 식민지애, 지역 분쟁 및 세계 전쟁, 시장경제 글로벌리즘 등 몇 가지 외적인 이유에 의해, 대부분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로부터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사용하고자 한다.

 

  조선 사람들 역시 과거 한 세기 동안 식민지배,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재, 군사정권에 의한 정치적 억압 등을 경험해, 상당수에 달하는 사람들이 뿌리의 땅인 한반도로부터 세계 각지로 이산했다.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총수는 현재 대략 600만 명이라고 한다.재일조선인은 그 일부이며 나는 그 중 한 사람이다.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세계 분할과 식민지 쟁탈전 이후, 전 세계에서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태어나 자란 땅을 뒤로 했을까. 더욱이 그들 디아스포라들은 이주한 땅에서도 언제나 '이방인'이며 소수자다. 다수자는 대부분 '조상 대대로 전해내려온 토지, 언어,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라는 견고한 관념에 안주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 안에 있는 한 다수자들에게는 소수자의 진정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그 진정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고정되고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대상도 그것을 보는 편이 불안정하게 움직일 때는 달리 보인다. 다수자들이 고정되고 안정적이라고 믿는 사물이나 관념이 실제로는 유동적이며 불안정한 것이라는 사실이, 소수자의 눈에는 보인다. 

 

 

 

-서경식,<디아스포라 기행:추방당한 자의 시선> 中

 

 

 

 

디아스포라는 어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네 사람들도 식민지배와 2차대전, 6,25와 군사정권을 경험하며 한반도를 떠나 세계 각지로 이산했다. [각주:1]

현재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총수는 대략 600만명 정도라 한다.

 

영화 속 타렉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청소년-청년기를 모두 보냈으나,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마당 하나 없는 이민국 내에서 범죄자취급을 당하며

결국 시리아로 강제추방을 당하게 된다.

 

한국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은 벌어지고 있는데, 2008년엔 20년 가까이 살아온 조선족들을

불법체류라는 이유로 모두 강제추방하는 일까지 있었다.

 

 

 

 

영화에서는 불법체류자와의 인간적인 교류를 너무나 따뜻하고 아름답게 그려놨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이들을 떠올릴 때 실제적으로 머리 속에 나오는 단어들은

온갖 범죄와 슬럼가,내 삶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모습들이다.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공단지역이나 쪽방촌 근처를 떠올리기만 해도 몸이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2010년에야 이들의 자녀들이 중학교까지 교육을 받을 수 있게된 상황은 좀 너무하지 않나 싶다.

아무리 단일민족이니 민족국가니 하는 허구적인 개념을 떠든다 해도,

우리민족의 일부는 디아스포라이며, 이 땅의 많은 이민자들은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 역시 우리의 자녀와 함께 사회의 구성원으로 그것이 음이든 양이든

어느 한 영역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해서, 최소한의 직업선택과 교육의 기회는 제공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들이 모두 잠재적 범죄자나 빈민층의 한 축을 형성하는 것을 바라는게 아니라면 말이다.

 

 

 

 

  1.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기 훨씬 전부터 한국인의 연해주 이주가 시작되어 세계제2차대전이 발발할 무렵에 극동 러시아지역에 3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1904년의 러일전쟁에서 일본에 패배한 적이 있음을 잊지 않고 있던 스탈린은 제2차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러시아에 있는 조선족들이 일본과 내통하면 큰일이라고 생각하고 연해주에 있는 조선족들을 대거 중앙아시아지역으로 이주시켰는데 그 수자가 무렵 20만명이 넘는다. 말이 이주이지 계획적인 이주가 아니었고 추방에 가까운 조치였다. 수송수단도 열악하였고 이주지에서의 정착계획도 엉망이었다. 강제이주로 내몰린 조선족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송 도중에 얼어죽거나 굶어 죽고 정착지에 도착해서도 아사자가 속출하였다. 그렇게 강제이주 당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등, 우크라이나 등지에 정착하게 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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