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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무대

토이 스토리(Toy Story, 1995-1999-2010)

DidISay 2013. 1. 6. 08:28

유치원 꼬맹이 시절 내 모든 일과는 인형들이 함께했다.

 

내가 잠자리에 들면 인형들도 화장지 이불을 덮고 곱게 누었고,

목욕탕에 갈 때는 인형들도 꼭 챙겨서,

엄마가 나를 씻겨주듯이 인형들을 깨끗하게 단장시키곤 했다.

 

내가 노란 원피스를 입은 날엔 미미와 쥬쥬도 노란 드레스로 멋을 부렸고,

내가 구사하는 어휘가 늘어날수록 소꿉놀이의 상황도 점점 다양해졌다.

 

 

 

남동생은 인형일색이던 나보다 훨씬 풍성한 구성을 갖추고 있었는데,

기계음과 붉은 빛이 나오는 로봇들, 칼과 트럭들, 공룡들,레고세트들...이 몇 박스를 가득 메웠다.

특히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커다랗고 미로 같은 철로에 번쩍번쩍 불이 들어오는 기차를

우리가 얼마나 좋아하며 갖고 놀았는지 모른다.

 

동생 덕분에 나 역시 발음하기도 힘든 공룡의 이름을 줄줄 외울 수 있었고,

리모컨으로 자동차를 조종하거나,  트럭과 비행기가 그려진 백과사전을 함께 뒤적이곤 했다.

 

 

 

 

하지만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장난감들은 박스에 넣어져 누군가의 집으로 보내졌고

내 인형들도 종이인형에 대한 열광적인 사랑을 끝으로 잊혀져갔다.

 

내가 가장 사랑하던 인형은 내 침대에 있던 커다란 곰돌이였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해서 안고 잔 덕에 이 인형이 없으면 잠이 안올정도라

많은 이사와 엄마와의 실랑이 끝에도 고등학교 때까지 내 방안에 머물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더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낡아버린 곰인형을 정리하면서

아주 오랜 친구와 헤어지는 느낌에 마음이 참 헛헛했던 기억이 난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어린 시절 아끼는 장난감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대를 느낄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이 애니메이션이 처음 나온 것은 내가 초등학생이던 1995년이다. 그리고 그 다음 시리즈가 나온 것은 1999년. 어느새 난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앤디처럼 나 역시 키가 크고, 손과 발이 조금씩 커지고,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리고 3가 나온 것은 2010 앤디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는 대학을 졸업해 사회인이 된 나이였다.

 

 

 

2010에 토이스토리 3를 보지 못해서 언젠가 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가, 오랜만에 이 시리즈를 볼 생각에 1-3편을 한꺼번에 돌려봤다.

 

유쾌한 기분으로 볼 생각으로 재생한 애니메이션인데, 이상하게 회를 거듭할수록 마음이 뭉클해지더니 3가 끝날 즈음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 이게 무슨 눈물인가 싶기도 했지만

토이스토리는 단순히 인간사회를 인형에 빗댄 우화라거나,

흥미진진한 인형들의 모험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리뷰들을 보니 나 말고도 이 작품들을 보다 울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토이스토리 시리즈가 다 큰 성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아마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우리를 기다려 주는 장난감들의 저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싫증이 나 잊어버린다고 해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봐주고

애정어린 시간을 보내길 원하는 그런 존재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이젠 나 스스로도 가물가물한 유년기를 모두 지켜봐준 존재에 대한 애틋함.

 

이런 감정들이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굉장히 뭉클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이 시리즈를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꼽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대학생이 되서 집을 떠나갈 앤디의 방을 보며 그의 엄마가 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자신이 지나온 유년시절을 앤디와 동일시하며

과거에 대한 향수와 잡을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다.

 

오히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은 이 작품을 보면서 울지 않을 것이다.

픽사의 또 다른 애니메이션 업UP의 초반부를 보면서

지나간. 그리고 다가올 인생들을 떠올리며 훌쩍이는건 오직 어른들뿐이었듯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들에 대한 아릿한 슬픔을 느껴본 사람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이야기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이다.

 

 

 

 

 

 

 

앤디의 인형들은 이제 새 주인을 만나, 앤디의 2층 방이 아닌

작은 꼬마의 잔디밭이 넓은 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나의 인형들도 새로운 집과 주인의 품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을까. 

험하게 굴리지 않고, 낙서하는 일 없이 잘 놀아줬을까.

그 많던 장난감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고백하건데, 사실 내가 버리지 않고 보관 중인 토끼인형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내 책상에 있던 이 인형이 어쩌다가 지금 내 방에까지 머물게 되었다.

강아지 인형과 함께 병원놀이의 주인공이었던 이 장난감이,

지금은 노트북을 두드리는 내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날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의 내 삶이 어떨지,  빨간 리본의 '토순이'가 알려줄 순 없겠지만,

언제나처럼 그렇게 귀를 살짝 구부리고 날 지켜봐줬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늘 그랬듯이.

 

 

 

 

 

 

 

내가 좋아하는 세뇨르 버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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