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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예루살렘-기 들릴

DidISay 2013. 1. 5. 03:58

작년에 재밌게 읽었던 만화책 중 하나는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를 위하여' 였다.

연초에 상상마당에서 우연하게 봤던 이 책의 뒷부분이 너무 궁금해서

결국 만화책을 구입해서 마저 보았더랬다.

 

그 이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에 관심이 생겨서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다시 뒤적였고, 아리 폴만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을 챙겨봤다.

결국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에 이어, 오늘 글을 쓰려고 하는 '굿모닝 예루살렘'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각주:1]

 

위의 작품들을 보면서, 예전에 마르얀 스타라피의 '페르세폴리스'를 보면서 궁금했던 것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형상화 돼서 참 좋았다.

 

 

 

 

 

 

'굿모닝 예루살렘'은 기 들릴의 이전 작품들처럼 '국경 없는 의사회-MSF-'에서 일하는 아내를 따라

예루살렘에서 1년간 체류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직장에서 일하는 부인을 내조하면서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만화를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는 작가의 삶이 재밌고 흥미롭다.

(덕분에 만화 속에 주부로서의 애환도 조금씩 묻어나온다.^^)

 

사촌오빠도 MSF를 통해서 해외의료봉사 중이라

현지상황을 보면서 걱정 됐는데 다행히 잘 지내는 것 같다 ㅎ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뭔가 작정하고 쓴 사회고발적 만화에서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이나 피곤함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가 1년동안 생활하면서 느낀 사소한 일화나 아버지로서의 다정한 면모가 보이는 컷이 많았고,

물론 이스라엘 내의 분쟁과 관련된 내용이 아주 많이 나오긴 하지만

이것 역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목격되고 생각하게 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공부하는 느낌'으로 읽는. 그래서 읽고나면 녹초가 되는 만화가 아니라

내가 실제로 예루살렘에 살면서, 이런 피곤한 일들을 겪고

이런 부조리한 모습들을 발견하며 분노하는 듯한 간접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는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의 편도 들어주지 않고,

그저 각지각층의 전문가들을 만나 들은 이야기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목격한 광경들

정착민들과 팔레스타인들, 종교인들과의 대화를 그저 옮겨놓았다.

 

어느정도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소 시니컬한 어조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저 서로 끝도 없이 미워하고 분쟁을 일으키는 이 지역에 답답함을 느끼게 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봤던 책이 세계문학과 관련된 글이었는데,

가라타니 고진의 글을 인용하면서, 세계시민 등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좋긴힌데 너무 이상주의적이란 생각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나 평양 등을 묘사한 만화들을 보고 나면,

현실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져서 갑자기 이런 개념들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비록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 않더라도, 적어도 꿈은 꿀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내가 재밌게 본 장면들.

 

 

 

남자들만 참여하는 결혼식 피로연.

알콜 없이 춤추는 남자들 -_-;;;과 중간에 울려퍼지는 기도 알림 소리;;;

이 기도알림벨은 새마을운동마냥, 매일 아침마다 울려퍼진다. =ㅁ=

 

아 이렇게 금욕적으로 생활하던, 심지어 랍비들 마저도

일년 중 하루. 종교적 축일에는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시는 ㅎㅎ

 

 

 

불법정착민들로 인해 유령시장이 되어버린 팔레스타인의 마을.

이스라엘 군대 역시 정착민들을 옹호하며 테러나 불법점거를 못본체 한다.

 

계속된 분쟁으로 온 나라가 분리벽 투성이라 무슨 휴전선 마냥 코앞 거리를 2시간 넘게 걸려 돌아가야한다.

특히 각지에서 굴러들어온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도록,

돌을 던지는 행위에는 진짜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

아무도 이들을 보호해주지 않아서 결국 이 아이들은 학업을 포기했다.

 

 

 

마치 예전 유태인의 게토를 떠올리게 하는 기괴한 풍경에,

그 정착민들의 집마다 다윗의 별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 입맛이 썼다.

 

과거 자신들이 받았던 차별과 핍박을 종교적 대의를 앞세우면서 

다른 민족들에게 그대로 자행하고 있는 광경에서, 뭐라 말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정착민들도, 팔레스타인들도 서로가 저지른 학살은 무시하며 상대방을 비난하기에 급급하다.

웃긴건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종교관이나 사마리아인 같은 민족의 차이에 따라서

또 첨예한 갈등이 있다는 것인데, 정말 인간은 모이기만 하면 분열을 시작하는건지;;;

 

하긴 우리나라만 해도, 지역감정 때문에 원색적으로 싸우고 난리도 아닌데

자칭 '한민족'이라는 사람들 안에서도 이러니, 종교며 민족이 모두 다른 저 사람들은 하물며 어떨지.

 

읽다보면 종교든, 사상이든 상대진영에 대한 수용 없이,

극단적으로 흐르는 근본주의가 얼마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지 느낄 수 있다.

 

 

 

 

  1. 쉽게 읽을 수 있는 순서를 적자면 (내용의 가벼움이 아닌, 작화 분위기 등을 고려했을 때) 아돌프를 위하여-굿모닝 예루살렘,페르세폴리스-쥐-바시르와 왈츠를-팔레스타인이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