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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웜홀: 나무로 깎은 책벌레이야기展 -세종문화회관 본문

그림과 만나는 시간

상상의 웜홀: 나무로 깎은 책벌레이야기展 -세종문화회관

DidISay 2013. 1. 20. 00:30

 목각인형 전시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볼까 했었는데,

알고보니 전시주체가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를 쓴 김진송씨였다.

 

국문학 전공자. 하지만 인문학만으로는 생계를 보장받을 수 없어 시작한 목수일이

이렇게 관련 책을 내고, 전시회를 열정도가 되었다는 것에 감탄하였다.

 

과연 인문학자가 다듬은 나무들은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고,

예전 동화에서나 보던 목각인형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공식홈페이지는 http://www.bookwormstory.com/

 

 

 

 

일단 결론 먼저 말하자면.

작품에 실려있던 글과 작품전체를 담은 대도록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정도로 좋은 전시였다.

 

작품수도 예상했던 것보다 많았고,

목각제품 외에도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작품들이 있어서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의도에 따라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질감이 변화하는지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사진촬영이 허용되서, 마음껏 작품을 찍을 수 있다.

작품들이 미니어처로 나온다면 꼭 제작해보거나 사고 싶었던 ㅠ

 

 

 

국문학 전공자답게,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포르르포르르 날아다녔다는 

아기장수 우투리 같은 설화를 표현한 소박한 조각들이 있어 반가웠다.

또 석유제국을 은유해서 만든  '페트롤리우무스 신화' 등

자연파괴, 전쟁 등을 비판한 작품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날카로운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은행나무 특유의 부드럽고 동글동글함을 잘 살려서 평화로운 느낌이다.

나무결이 이렇게 아름다운거구나 새삼 감탄했다.

 

 

 

 

 

목재 하나하나를 톱니바퀴처럼 껴맞춰서

움직여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아 굉장히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전시공간이 넓고 자유로운 분위기라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좋은 전시회다.

 

 

 

내가 특히 마음에 들었던 몇 작품들.

작품 하나하나마다 이야기가 깃들여 있어서,

마치 전설이 있는 자연물들을 보는 것처럼 재밌고. 찡했다.

 

 

 

나는 해골이 무서워서 이불속으로 숨지만,

오히려 해골은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무섭다고 말한다.

나 역시 어떤 존재에게는 폭력적이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대상이겠지.

 

저 손잡이를 돌리면 해골과 침대보가 움직인다 :)

 

 

 

책벌레가 별명인 아이.

그리고 어느날, 그 아이의 꿈에 나타난 진짜 책벌레.

책벌레가 모두 책을 먹어버릴까봐, 더 열심히 책을 읽게 된아이 :)

 

 

 

책벌레에게 모두 먹혀, '가!'라는 글자 하나만 남아버린 책.

온 힘을 다해 마지막 한글자 '가!'를 내뱉어 보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벌레는 무심히 자기 할일을 할 뿐이다.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책도. 사람도. 벌레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완벽한 신이 불완전한 우주를 창조해보려 했으나,

별은 자기나름의 궤도를 찾고 법칙을 만들어 버린다.

 

왜 불완전해 지지 않는가. 왜 엉망진창인 상태로 머무르지 않는가 아무리 고민해보지만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신은 완벽한 존재이므로, 불완전한 것은 결코 만들 수 없다는 역설.

 

 

 

 

허무하게 사라진 그녀. 라는 작품

보면서 만 레이의 '파괴할 수 없는 오브제'가 계속 생각났다.

 

내게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던.

그래서 언제나 내 마음을 갈기갈기 꺽이게 만들었던 사랑..

 

이제는 세월이 흘러 그녀의 모습도 희미해져

가만히 애써 생각해야 떠오르는 앙상한 모습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에겐 아름답다.

그것이 너무 낡은 추억이라 관에 든 근골처럼 초라한 모습일지라도..

 

 

 

 

 

오이씨 아이.

 

원래는 저 오이씨가 닫혀있는 모습인데,

손잡이를 돌리면 저렇게 씨가 열리면서 아이가 나타난다.

 

생명탄생의 순간이지만, 톱니바퀴 아래엔 해골이 숨겨져 있다.

죽음이 한번 등장해야 생명이 한번 탄생한다.

우리의 삶의 뒤골목엔 언제나 죽음이 존재한다.

生死의 길은 여기에 있다...

 

 

 

 

 

메뚜기병사.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군대지만,

성격이 급해 제각기 튀는 메뚜기병사들

 

아래 톱니바퀴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나사를 돌리면

제각기 요란하게 튀는데 정말 재밌었다 ㅎ

 

소리가 커서, 한번 움직이면 사람들이 모두 몰려와서 구경했다 :)